[이지 돋보기] 갈 곳 잃은 수백조 뭉칫돈, 은행 금고서 ‘쿨쿨’…경기 불확실성에 ‘돈맥경화’ 심각
[이지 돋보기] 갈 곳 잃은 수백조 뭉칫돈, 은행 금고서 ‘쿨쿨’…경기 불확실성에 ‘돈맥경화’ 심각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0.07.0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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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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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10억원 이상 현금을 보유한 자산가들이 경기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곳간에 돈을 쌓아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가들이 이른바 투자 보이콧에 나서면서 은행 금고에서 잠자고 있는 뭉칫돈 규모가 600조원이 넘는다.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당장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에 시중에 돈이 돌 수 있도록 정책의 유연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은행에서 계좌당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저축성 예금의 총 잔액은 617조9610억원이다. 이는 전년 말(565조7940억원) 대비 9.2%(52조1670조원) 늘어난 규모다. 잔액이 증가한 만큼 고액 예금의 계좌수도 늘었다. 10억원이 넘는 예금 계좌는 총 7만3000좌로 전년 말(6만7000좌) 보다 6000계좌가 증가했다.

10억원 초과 고액예금은 예금 전체나 1억원 이하, 1억~5억원 등 상대적으로 소액 예금들과 비교해도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잔액이 1억원 이하인 예금은 지난해 말 기준 458조3620억원으로 전년 말(430조9860억원) 보다 6.4%(273조76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잔액 1억~5억원 예금은 145조2910억원에서 158조3180억원으로 8.9%(130조2700억원) 늘었다.

아울러 전체 은행 저축성예금 잔액은 1290조9720억원으로 전년 말(1192조5930억원) 대비 8.2%(98조3790억원) 증가했다. 모두 10억원 초과 예금 증가율(9.2%)에 못 미친다.

한편 저축성예금은 금융기관의 정기예금이나 적금, 저축예금 등의 금융상품을 말한다. 수시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자유입출금통장)과는 달리 일정 기간 동안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예치해두는 돈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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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고액 계좌는 통상 기업이나 자산가의 예금이다. 이들의 돈이 은행 금고에 잠들어 있다는 것은 투자 불확실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은행의 예금금리는 고액 자산가들을 만족시킬 만큼 높지 않다. 지난해 말 신규 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저축성수신금리는 연 1.6%로 전년 말(2.05%) 대비 0.45%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잔액 기준 총 수신금리는 연 1.4%에서 1.23%로 0.17%포인트 빠졌다.

이는 국내 경기가 부진하고 저물가 장기화가 이어지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수차례 내린 영향이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해 7월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10월 1.25%로 0.25%포인트씩 하향 조정했다.

올해 들어서도 금리인하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3월 1.25%에서 0.75%로 0.5%포인트 내리는 '빅 컷(큰 폭의 금리인하)과 5월 추가 인하를 통해 연 0.50%인 제로금리 수준으로 주저앉은 상태다.

자산가 등이 곳간을 걸어 잠근 것은 대내외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분쟁, 문재인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정책 영향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자산 손실 위험이 낮은 은행 예금으로 자연스럽게 돈이 몰리고 있는 것.

더욱이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태 등 각종 금융투자 상품이 원금손실과 불완전판매 등으로 논란을 야기하면서 자산가들의 안전투자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침체되고 불확실성이 클 때 자산가들이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은행 예금을 찾는다”면서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생활비나 투자 목적으로 예금을 깨는 소액 예금자와 달리, 고액 자산가들이 예금 등 안전자산을 찾는 발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돈맥경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당장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세계 경제를 예측 불가능한 공황 상태에 빠트렸다. 당장 경기 회복의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면서 “기업과 가계의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는 제도적 장치의 합리적인 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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