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내내 두꺼운 양말·장갑 착용 ‘한랭응집소병’
사계절 내내 두꺼운 양말·장갑 착용 ‘한랭응집소병’
  • 강현민 기자
  • 승인 2023.03.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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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보다 낮으면 적혈구 파괴로 중증빈혈
국내 치료코드 없어 환자들 사각지대 노출

몇 년 전 어느날부터 몸이 춥고 숨이 가빠지는 증상을 겪었던 64세 여성 A씨. 동네 의원에서 원인 미상의 빈혈로 진단받지만 별다른 관리도 못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더 악화됐다. 어지럽고 숨이 차 일상 생활이 어렵고 심할 땐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올랐다. 찬 기운에 매우 민감해지면서 사계절 내내 두꺼운 양말과 장갑을 착용하고 다녔다. 신경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모두 찾아 갔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 한 지방 대학병원에서 '한랭응집소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이른바 ‘온도 감옥’에 갇힌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이야기다. 인구 100만 명 당 약 1명에게 발생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질병은 일반인에게도 여느 의사에게도 생소할 정도로 극희귀질환이다.

그렇다보니 주위에선 “예민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겪기도 해 환자들의 심리적 고통 또한 가중되고 있다.

워낙 생소한 병이라 환자 수 집계조차 힘든 상황인데, 국내에선 이 병에 대한 질병코드가 없어 환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8일 열린 사노피 한랭응집소병 미디어 세미나에서_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가 한랭응집소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현민 기자
8일 열린 사노피 한랭응집소병 미디어 세미나에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가 한랭응집소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현민 기자

이런 환자들을 위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국가 차원의 지원을 이끌자는 취지의 ‘한랭응집소병 미디어 세미나’가 8일 열렸다. 사노피-아벤티스 코리아 주최로 열린 이 행사는 서울 삼성동 오크우드 프리미어 호텔에서 진행됐다.

“이 병은 암도 아니면서 진단 5년 내 40%의 사망률을 보인다. 만약 약을 투여하면 일반의 삶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 약이 매우 비싸다. 여러분 심정은 어떻겠나”

이날 연단에 선 서울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국내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심정을 대변하며 반문했다.

한랭응집소병이란?

체내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적혈구의 파괴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한랭응집소병(Cold agglutinin disease, CAD)은 극희귀 자가면역 혈액 질환이다.

적혈구 파괴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장준호 교수는 “면역체계 일부인 ‘보체’가 자신의 신체에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상 체온(약 37도) 아래에서 보체가 활성화하면 자가 항체의 일종인 한랭응집소가 체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파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추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주요 증상은 적혈구가 모자랄 때 발생하는 빈혈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이와 함께 극심한 피로와 호흡곤란, 체중 감소, 혈색소뇨증, 한랭에 의한 말단 청색증, 망상피반 등 다양한 증상이 발현한다.

한랭응집소병 환자, 피로감 암 환자 만큼 열악

이 질병이 환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이다. 체온보다 조금만 온도가 낮아도 피로 및 신체적, 심리적 고통이 수반돼 일상 생활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름철 에어컨, 특히 겨울은 이들에겐 큰 고통이다.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다. 정 교수가 제시한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피로감 점수(FACIT-Fatigue score)는 32.5점이다. 진행성 암 환자의 피로감 점수가 28~39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삶의 질은 열악한 수준이다.

일반인과 견줘 사망률 또한 높다. 1999년에서 2013년 덴마크 국립 환자 등록부에 등록된 인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한랭응집소병 환자와 비 한랭응집소병 진단 인구 간 사망률 비교 연구 결과가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1년 및 5년 사망률은 각각 17%와 39%로 비교군의 3%와 18% 대비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장준호 교수는 “파악은 안 되지만, 국내 한랭응집소병 환자는 약 100명 정도 될 것으로 본다”고 추산했다.

사노피 한랭응집소병 미디어 세미나에서_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왼쪽) 교수와 사노피 스페셜티케어 의학부 신정원 실장이 질의응답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강현민 기자
사노피 한랭응집소병 미디어 세미나에서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장준호(왼쪽) 교수와 사노피 스페셜티케어 의학부 신정원 실장이 질의응답을 주고 받고 있다. 사진=강현민 기자

치료는 ‘추위와 냉기를 피하라?’

삶의 질,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치료가 시급하다. 그러나 국내에 허가된 치료법은 없다.

현재는 대증적 치료를 사용하고 있지만, ‘추위와 냉기 피하기’ 수준으로 치료라고 보기에도 민망하다. 이 외에도 엽산 복용과 반복적 수혈, 급성 용혈 시 혈장 교환술 등이 있으나 일시적 효과만 볼 수 있다.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인 혈전색전증을 막기 위해 항응고제를 쓸 수 있으나 이는 미봉책일 뿐 혈전색전증을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장 교수는 “물론 개발된 약은 존재하지만 질병코드가 없어, 국내의 전반적 상황이 집계가 안 되기 때문에 심사평가원에서도 심사를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적 인식도 낮고, 마땅한 치료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장준호 교수는 “한랭응집소병과같은 희귀질환에 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희귀질환의 조직적 관리를 위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고 국가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현민 기자 news@ezy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