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의 몰락, 그 진단과 전망
SVB의 몰락, 그 진단과 전망
  • 여지훈 기자
  • 승인 2023.03.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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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런으로 이틀만에 파산, 미 당국은 진화 나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으로 파산했다. 사진=뉴시스/AP

[이지경제=여지훈 기자] 뱅크런. 다른 말로는 대량 예금인출사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 뱅크런으로 파산했다. 파산한 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2090억달러(275조원)의 실리콘밸리은행(SVB). SVB가 파산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이틀로, 이는 큰 놀라움과 더불어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진다.

뱅크런은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이를 충당할 자금이 부족해진 은행이 지급 불능 상태에 처한 경우를 나타내는 말이다. 전쟁이나 금융위기 등 재난적 상황 외에도 은행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는 경우 발생한다.

이번에 뱅크런으로 파산한 SVB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본격화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었다. 단 1년 만에 4%포인트(p)가 넘는 금리 인상은 기업 모두에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가중했지만, 특히 SVB에 돈을 예치한 고객들에 더욱 그랬다. 이는 이들의 상당수가 성장형 사업에 집중된 테크 기업 이나 벤처캐피탈(VC)이었기 때문이다.

테크 업황이 악화하며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자 이들은 예금 회수에 들어갔다. 그 결과 SVB의 예금 잔액은 지난해 한 해에만 160억달러 줄었고, 올해 1월과 2월 80억달러가 추가로 감소했다. 재원인 예금이 급감하자 SVB는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이달 8일, 보유 중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210억달러 규모의 매도가능증권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매각하기로 한 매도가능증권의 예상 손실액이 18억달러로 추정되면서 은행 고객과 투자자들에 불안의 불씨를 지폈다는 점이다. 특히 SVB 자산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만기보유증권까지 고려하면 잠재적 손실은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됐다.

보통 만기까지 보유하는 증권으로 분류된 경우 회계상 시장가 대신 장부가로 처리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평소 어떤 증권으로 분류했든 당장의 현금 확보가 우선이므로 은행으로서는 만기보유증권을 매각할 수밖에 없고, 이때 증권의 장부가격은 큰 의미가 없게 된다. 저금리 시기에 발행된 채권의 가치가 고금리 시기에 급락하는 것은 자명한 일. 결국 시장에 나온 증권의 실질 가치는 장부가에 한참이나 미달할 수밖에 없었다.

SVB의 자산 중 만기보유증권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대출자산의 환금성도 좋지 못했다. SVB의 주요 대출 고객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로서, 이들은 견실한 재무구조를 갖추지 못한 사업체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단기 회수가 어렵다는 대출자산 본연의 특성에 더해 그 등급도 낮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SVB가 18억달러의 채권 매각 손실을 메우고자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보통주·전환우선주 발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불길은 삽시간에 번졌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SVB 모기업인 SVB파이낸셜 그룹의 주가는 9일 단 하루 만에 60.4% 폭락했고, 다음날까지 은행 전체 예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420억달러 규모의 예금 인출 시도가 있었다. 뱅크런이었다. 결국 충분한 유동성 확보에 실패한 SVB는 마이너스 10억달러의 현금 잔고를 기록하며 고객의 인출 요청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후 SVB가 투자자 확보에도 실패하면서 캘리포니아주는 10일 SVB의 폐쇄를 결정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법정 관리인으로 지정했다. FDIC는 산타클라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을 설립해 SVB의 모든 보유자산을 이관하고 예금보험 한도(25만달러) 내의 예금을 13일 오전까지 모두 돌려주기로 했다. 다만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향후 SVB 자산 매각 절차가 이뤄지면 순차적으로 지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SVB의 예금계좌 중 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예금계좌가 전체의 9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 확산과 스타트업의 줄도산 우려가 커졌고, 여기에 은행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2차, 3차 뱅크런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결국 미국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재무부와 연준, FDIC는 1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 정부는 주주와 일부 채권자의 자산까지 보전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도덕적 해이 논란을 일으켰던 구제금융과는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SVB 파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규모 구제금융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12일 밝혔다. 사진=뉴시스/AP

SVB 사태는 자산과 부채가 특정 섹터에 편중됐다는 점, 둘의 만기구조가 불일치했다는 점, 급격한 금리 인상기에 되려 채권 비중을 늘려 금리 리스크를 자초했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자산과 부채의 특정 섹터로의 편중은 은행을 해당 섹터의 업황에 취약하게 만들었고, 둘의 만기 불일치는 유사시를 맞아 유동성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스마트 기기와 SNS의 발전은 은행에 대한 소문을 급속도로 퍼뜨림으로써 군중 효과를 가속했다.

다만 이번 사태의 진행 속도와 피해 규모가 크긴 하나, 미국 당국이 신속히 진화에 나선 만큼 금융 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자산·부채의 매칭 구조가 취약하고, 특정 섹터의 부침에 자본 변동성이 큰 소형 은행의 경우 뱅크런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도 “대형 은행의 경우 건전성과 유동성이 금융위기 당시보다 훨씬 견고한 상태며, 단기자금 시장 역시 매우 안정적이므로 금융 시스템 위기로 번지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 보유 부채 상환을 위한 자금 재조달(리파이낸싱) 위험, 자산의 장부가격 평가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므로 지금은 은행 위기에만 집중할 때가 아니다”며 “이번 사태로 은행들의 대출 행태가 더 보수적으로 변함에 따라 기업의 리파이낸싱 등 자금조달 여건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SVB 파산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 또한 크지 않을 것이란 평이다. SVB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국내 저축은행의 유동성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오를 수는 있지만, 국내 저축은행의 유동성비율은 현재 상당히 양호한 상태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유동성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68%다. 유동성비율은 3개월 내 갚아야 하는 부채 대비 3개월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의 비율로서, 상호저축은행업 감독규정에 고시된 의무 준수 기준은 100%다.

다만 유동성비율이 100% 미만인 한국투자저축은행을 비롯해 유동성비율이 100% 초반대에 불과한 저축은행(하나·키움예스·키움·오에스비·애큐온·신한·머스트삼일)도 여럿 있어 자칫 시장 불안이 심화할 경우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이들 은행을 중심으로 일부 은행은 유동성비율의 빠른 감소세가 감지됐으며,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가 조명받은 게 불과 수개월 전임을 고려하면 안일한 시각은 지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마다 자산 포트폴리오가 크게 다르므로 유동성비율 하나만으로 일괄적으로 판단하긴 어렵다”면서 “특정 섹터에 편중된 대출과 무리한 채권 투자로 위험을 키운 SVB와 달리 국내 저축은행은 자산 비중을 좀 더 고르게 분산했다”고 밝혔다. 다른 저축은행 관계자도 “SVB와 국내 저축은행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본다”면서 “일부 저축은행에서 관찰되는 낮은 유동성비율도 일시적인 것일 뿐 큰 무리는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여지훈 기자 news@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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