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폐 절제 노동자의 '울분', 더 듣지 않으려던 의원들
[기자수첩] 폐 절제 노동자의 '울분', 더 듣지 않으려던 의원들
  • 이어진
  • 승인 2013.07.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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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것 없다’는데 ‘자그마한 성과’, 국민 목소리 귀 기울여야


[이지경제=이어진 기자]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폐 한쪽의 절반을 절제해야만 했던 한 IT노동자 양모씨의 말이다. 5일 양씨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IT 3대 막장이라 불리는, 그리고 과도한 노동에 시달렸던 농협정보시스템에 방문했다. 양씨는 증언자로 나섰다. 양씨는 방문이 끝난 뒤 바뀐 것은 없다고 허탈해 했다. 하지만 의원들은 자그마한 성과가 있다고 말한다. 
 
8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5일 농협정보시스템을 방문했던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의원들의 방문에서는 고용노동부가 5월24일 진행한 농협정보시스템의 근로 실태 조사 결과도 보고됐다. 의원들은 5일 방문 당시 많은 논의와 설명, 질문들이 이어졌다며, 당시 자그마한 성과로 농협정보통신이 부당한 추가 근로에 대한 임금보상 문제를 성실하게 협의하겠다는 것을 들었다.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번 실시된 노동부의 조사에서도 아주 미약하지만 장시간 노동 사례가 적발됐으며, 이 이전에도 상당히 많이 있었음을 회사 대표이사가 인정했다”며 “추가로 근무한 시간에 대해 노사간 협의에 의해 임금보상해줄 것을 촉구했으며 이에 대해 회사가 성실하게 협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방문에서 협의하겠다는 업체 측의 말이 성과라 말한다. 그런데 ‘협의하겠다’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시 분위기는 의원들의 독촉,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마지못해’ 협의하겠다는 식이었다. 처음 소송에 대해서 의원들이 묻자, 회사 측은 “법원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회사 측은 “양씨가 억울함도 있고 몸을 다쳤기 때문에 양씨와 앞으로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사실 황당하다. 소송을 취하하는 것도 아니며, 추가 노동에 대한 밀린 임금을 지불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협의다. 
 
협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양모씨가 혼자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주요 언론들에 이슈화 된 적도 여러 번이다. 협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양모씨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내가 죽나 농협정보시스템이 죽나 둘 중 하나다. 내가 죽을 순 없으니 싸우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협의가 아닌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양모씨가 회사와 합의를 보길 원했다면, 진작 했고도 남았을 터다. 회사 측이 좋은 조건을 들고 온 적도 몇 번 있다고 했다. 그가 ‘협의하겠다’는 단순 입장을 바랬다면, 힘겨운 싸움을 지속하진 않았을 터다. 
 
정치권의 외면도 문제다. 양모씨에 대한 정치권의 외면은 하루 이틀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양씨에게 관심을 가지고 연락을 취한 국회의원은 단 두 명이다. 한명은 노회찬 전의원이며, 다른 한명은 이번 IT노동실태 문제를 들고 나온 장하나 의원이다. 장하나 의원은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인물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것은 지난 정부시절이다. 당시 양씨 사건이 IT업계에서 큰 논란이 됐었지만, 실태가 어떤지, 무엇이 문젠지, 여당도, 야당도 당시 국회에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단 소리다. 
 
방문 당시 국회의원의 태도도 사실 문제다. 방문 당시 양씨는 회사측의 이야기, 특히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듣고 분을 이기지 못했다. 양씨는 고작 10여분 간 자신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발언 시간 이후 양씨는 정확하게 조사했다는 노동부 측의 이야기를 듣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 의원은 “잠깐 나가 있어라. 피해자 진술 듣는 자리가 아니다”라고 제지했다. 양모씨는 회사측의 이야기, 고용노동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며 계속 분만 삭혀야 했다. 
 
국회가 진정 ‘민의의 전당’이며, 농협정보시스템을 왜 조사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생각해 봤다면 먼저 양씨의 일을 알아봤을 것이며, 분개하지 않을 제도적, 법적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진심이 있었다면, 겉으로 회사 측에 ‘결과’를 내놓으라는 말만 급급해 하지 말고, 피해자의 말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 줬을 것이다. 
 
이제서라도 국회의원들이 IT노동실태, 특히 양씨 사건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더 낮은 자세로, 국민의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들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런 모습들은 다소 아쉽기만 하다. 

이어진 bluebloodm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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