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저는 마약제조자입니다. 게임업체에 다니거든요”
[기자수첩] “저는 마약제조자입니다. 게임업체에 다니거든요”
  • 이어진
  • 승인 2013.11.0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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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 종사자 스스로 ‘마약쟁이’라 부르는 한국의 자화상


[이지경제=이어진 기자] “저는 마약제조상입니다. 국산은 요즘 양산형 마약 때문에 맛이 좀 떨어지네요”
 
“저는 마약 제작 회사에서 일하는 마약쟁이입니다. 마약의 순도로 얼마나 중독이 가능한지 테스트합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 마약은 맛이 좀 없네요”
 
“외산 하스스톤 마약이 최고인데, 입맛 들리게 하긴 좀 그렇군요. 취향은 타는데 입맛 들리면 지갑이 없어져요” 
 
기자가 게임업체에 다니는 지인들에게 재미있는 국산 게임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그들이 우스갯소리로 건넨 말이다. 게임 중독법 논란에 스스로 ‘마약쟁이’라며 농담하는 것인데, 최근 논란을 보면 그들의 농담이 농담처럼 들리질 않는다. 
 
게임 중독법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4대 중독에 게임을 포함시켜 중독자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이른바 ‘막말’ 발언이 게임업계의 공분을 산 지 2달 만에 게임 중독법이 수면 위로 부각되고 있다.
 
게임 중독법을 발의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중독법 논란에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는 등 게이머와 게임업계 종사자들에게 각인됐다. 다른 의견도 함께 듣는다며 신 의원 주최로 중독법 관련 공청회가 개최됐지만 편파적인 진행으로 파행으로 끝이 났다. 
 
여당 내에서도 중독법 처리와 관련 이견이 나오고는 있지만, 논란 진행 경과를 살펴보면 게임을 ‘악’으로 보는 여당 입장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게임강국’, 게임 산업을 ‘효자 산업’이라 부르는 한국의 자화상이다.
 
4대 중독법의 근본 취지는 중독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예방하고 치료하자는 목적이다.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은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문제는 이 법안에 마약, 알콜, 도박과 더불어 게임을 함께 포함시킨 것.
 
마약과 알콜, 도박 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하자는데 이의를 걸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들 3개 중독물과 게임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화근으로 작용했다. 
 
새누리 황우여 대표의 말에 이어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의 법률 발의로 인해 국내 게이머들, 네티즌들은 벌떼처럼 일어났으며 인터넷 상에서는 각종 패러디물이 양산됐다. 게임 중독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온라인 서명운동도 벌어져 12만명 이상이 서명하는가 하면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구 게임산업협회)는 ‘근조 대한민국 게임산업’이라는 사진을 메인 화면에 걸어놓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G스타에서 드레스코드를 맞추자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국내 게임산업이 ‘죽었기’때문에 상복을 드레스코드로 맞춰 입장하자는 주장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고 있다. 게임산업 뿐 아니라 콘텐츠 업종인 만화산업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는 우려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정부에게 극심한 반감을 표출하는 것은 게임을 중독이라 규정한 ‘몰이해’ 뿐 아니라 여당이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창조경제’의 핵심인 콘텐츠 산업을 규제하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창조경제의 뜻도 모호하고, 일반 국민들에게 잘 와 닿지도 않지만,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핵심 국정 과제로 삼아, 10여개월 간 창조경제 알리기에 나섰다. 거의 만화나, 게임에서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듯 “창조경제 하나면 돼”라는 식이다. 비전 자체만 보면 크고, 뭐든 ‘창조경제’만 믿으면 될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내용이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핵심으로 콘텐츠와 SW를 꼽고 있다. 콘텐츠만 놓고 보자. 전체 콘텐츠 수출의 80~80%를 차지하는 것이 게임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창조경제의 핵심을 ‘콘텐츠’라면 만화, 소설 등의 일반적인 콘텐츠 뿐 아니라 게임도 덩달아 규제 보단 육성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1년차인 올해 새누리당이 내놓은 정책이 ‘규제’ 일변도니 업계에서는 '당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산업 육성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규제만큼은 웬말이라는 반응이다.
 
더욱이 정권이 교체되면서 MB를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게임 산업을 규제하려 한 것도 화근이 되고 있다. 학생들의 게임시간을 규제하는 셧다운제는 지난 정부시절 도입됐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MB정부는 학교 폭력의 근본 이유 중 하나로 게임을 지목, 논란을 야기했다. 
 
업계에서는 조심스럽게 세수가 부족한 박근혜 정부가 게임 산업으로부터 소위 ‘삥’을 뜯기 위해 중독법 등의 규제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신의진 의원은 최근 중독법 논란이 확산되자 “치료를 위한 법률일 뿐 규제를 하기 위한 법은 아니다”라고 부랴부랴 해명했지만 마약, 알콜, 도박과 같은 선상에서 게임을 놓고 보는 것에 대한 반감을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창조경제를 떠나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 등으로 인해 콘텐츠는 중요 산업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 상에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게임이다. 특히 모바일 게임의 경우 간단히 즐길 수 있다는 이점과 카카오톡 효과로 인해 국내 시장 파이가 커지고 있다. 
 
넷마블표 모바일 게임의 경우 전 세계 구글플레이 월매출 기준 5위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파이가 커지자 게임을 개발하려는 벤처들의 수도 증가하고 있으며 투자자들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독자를 문제로 삼아 ‘마약’ ‘알콜’ 등과 같은 눈으로 규제하려 한다면 산업의 성장이 더뎌지며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창조경제를 주구장창 외치고 있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해야할 일은 ‘중독법’ 등의 규제 방안이 아닌 눈과 귀를 열고 중도적인 시각으로 업계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먼저다. 게임 중독자들로 인한 피해들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지, 학술적으로 연구가 얼마나 된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한편, 게임 중독법이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게임 중독법의 통과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달 중순에는 게임업계의 큰 행사인 G스타가 개최된다. 추이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게이머와 게임업계의 비판 여론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계 종사자 스스로 ‘마약쟁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건네는 현실이 아닌 ‘자랑 스런 게임 개발자’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환경이 국내에서 조성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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