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놈의 ‘값싸고 질좋은’ 타령
[기자수첩] 그놈의 ‘값싸고 질좋은’ 타령
  • 서영욱
  • 승인 2013.12.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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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경쟁체제 도입…과연 ‘경쟁상대’는 누구인가?



[이지경제=서영욱 기자] 지난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동을 겪었을 때 정부가 내세웠던 주장 중에 하나가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청문회 때 한 국회의원이 “싸고 질 좋은 소고기가 있으면 어디 한 번 가지고 와보라”고 호통쳐 두고두고 회자됐던 사례도 있다.

  

소고기 수입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정부가 공기업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나 민영화로 변경시키려 할 때 항상 내세우는 논리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도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수서발KTX 법인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코레일과의 경쟁으로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 11일 서승환 국토부장관도 담화문을 통해 “철도경쟁체제의 도입은 국민에게 ‘값싸고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독점으로 인한 공기업의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난달 27일,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GPA) 개정의정서와 관련해 철도민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 “운영주체가 누구든 간에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공급한다면 그만큼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을 텐데 이것이 왜 민영화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방침에 대해서 철도노조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가격경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냐’는 불신에서 비롯된다. 

  

4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정유업계를 들여다보면, 금일(13일) 정유3사는 경유값 담합으로 법원에게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정유업계는 이미 가격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은 주유소마다 다른 기름값을 보고 결정을 하지, 절대로 'SK에너지냐, GS칼텍스냐' 회사를 보지 않는다. 

  

주유업계 뿐만 아니라 가격담합 의혹은 너무나도 많다. 통신3사가 59, 69 등 동일한 요금제를 내놓고 있고, 최근에는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의 커피값 담합, 농심 등 식품업계의 라면값 담합, 대한한공과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값 담합, 하다못해 동네 치킨 가격까지 경쟁사들끼리 가격경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징후 등 관련사례는 손꼽을 수 없을 만큼 포착됐다. 

  

심지어 정부는 서로 경쟁을 하라는 대상을 잘못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코레일은 수서발KTX와 경쟁을 벌여 가격을 낮추라고 하는데, 코레일 이사회를 통과한 수서발KTX의 코레일 지분은 41%, 영업흑자를 달성했을 경우에는 지분을 늘려 계열사로 확정지을 수 있다고 한다. 체질 개선을 위해 수백억원을 투자해 자회사를 만들고 그 자회사와 경쟁하라는 꼴인데, 철도노조는 그것이 과연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는 정부와 공기관, 지자체 등을 제외하고 어떤 민간에게도 지분을 팔지 않겠다고 한다. 결국 또 하나의 공기업이라는 소린데, 코레일이 수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이고, 정부가 최근 적자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까지 한 상황에서 공기업을 하나 더 만들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힘들다. 

  

철도산업 특성상 경쟁자체가 불가능하리라는 점도 있다. 고속버스라면 가능하다. 동부고속과 중앙고속이 서울~부산간 요금을 놓고 경쟁을 벌일 수는 있다. 하지만 코레일이 누군가와 경쟁을 벌여야 한다면 서울~부산간 노선을 새로 깔던가, 현재 KTX노선에 다른 업체가 들어와야 경쟁이 가능하다. 코레일과 수서발KTX는 이미 시종착역이 달라 경쟁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고 노조는 누누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국민들이 받을 수 있다는 ‘싸고 질 좋은’ 서비스는 또 다른 업체가 들어와야 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하지 말고 ‘누구와 경쟁을 벌여 어떻게 값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의혹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서영욱 syu@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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