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들의 맺힌 가슴 누가 어루만질 것인가
피해자들의 맺힌 가슴 누가 어루만질 것인가
  • 김창권 기자
  • 승인 2016.04.2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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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최근에서야 이를 판매한 기업들의 사과문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 가족들은 이를 두고 사과가 아닌 입장발표 수준으로 인식하는 모양세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검찰이 집중 수사에 나서자 지난 5년간 침묵하던 기업들이 너나할 것 없이 사과문과 피해보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의 사과에 대한 피해자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검찰 수사가 착수되자 원하지 않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은 2011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급성 폐질환으로 입원한 환자들이 연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비롯됐. 이후 같은 원인으로 영유아 및 임산부 등이 사망하는 일이 이어지자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대대적인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것이라는 추정 결과가 발표됐다.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 구아니딘) 성분이 호흡기로 흡입되면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 보건당국은 동물흡입 독성실험 등을 통해 인과성을 확인하고 가습기 살균제를 시중에서 회수하고 유통을 중지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가 확인된 시점에도 정작 기업들에게 지어진 책임은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 제조 및 유통사에게 과징금 5200만원을 부과한 게 전부였다.

그러자 같은 해 유족들은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의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유통사 10곳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이 마저도 검찰은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에서 시한부 기소중지해 수사가 지연돼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족들과 화경보건시민센터 등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들을 추가로 고소하며 수사 촉구를 요구해왔다. 이에 검찰은 지난 1월에서야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검사 6명을 배정하고 제조 및 유통사들의 과실 여부, 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 등에 대해 수사에 나선 상태다.

검찰이 폐 손상 유발 물질이 포함됐다고 결론 내린 제품은 옥시의 ‘옥시싹싹 뉴가습기 당번’을 포함해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버터플라이이펙트 ‘세퓨 가습기 살균제’ 등 4개다.

문제는 검찰이 수사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사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만 530명이고, 확인된 사망자만 약 143명에 달하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 강화, 제조 및 유통사 자발적 사과 나서

검찰은 지난 1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3개월 동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공식 피해자 221명에 대한 전수 실태 조사에 나섰고 지난 19일부터는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유통사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 중이다.

 ▲ 공식 사과하는 롯데마트 김종인 대표

검찰의 수사가 강화되자 가장 먼저 롯데마트가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롯데마트 김종인 대표는 지난 1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폐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롯데마트는 검찰 수사가 종결되기 전까지 △피해보상 전담 조직 설치 △피해 보상 대상자 및 피해보상 기준 검토 △피해 보상 재원 마련 등에 나서기로 했다.

롯데마트 김종인 대표이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 원인 규명 등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가 미진한 부분을 인정하고, 조속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의 기자회견이 발표되자 홈플러스도 보상을 약속했다. 홈플러스 측은 “지금까지 민사 소송 4건에 대해 고객과 합의를 하는 등 해결 노력을 하고 있었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고, 인과관계가 나오면 보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침묵으로 일관하던 업체들이 사건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나서야 피해보상을 마련한다고 밝히자 피해자 가족들과 시민단체는 수사가 진행되니 보여주기식 사과에 나선 것이라며 지탄하고 나섰다.

사망자 가장 많은 옥시, 증거 인멸 등 의혹 넘쳐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업체인 영국계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떠밀려서 하는 사과와 그간의 행태가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옥시는 ‘옥시싹싹 가습기 당번’을 판매하면서 피해자 530명 중 403명이, 사망자 143명 중 103명이 발생하는 등 최대 가해업체로 꼽히고 있다. 각각 22명 및 15명의 사망자를 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사과문을 발표했을 때도 옥시는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옥시는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다 지난 21일 처음으로 성명발표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안과 관련해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통감한다”며 “환경부 및 환경보전협회(KEPA)와 협의해 조성한 50억원의 인도적 기금 외에 50억원을 더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입장문에는 “오랫동안 제품의 안전 관리 수칙을 준수했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제품의 안전 관리는커녕 이를 뒤집는 증거를 사실상 인멸했다는 정황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검찰이 옥시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옥시 측이 문제가 된 성분 제조사인 SK케미칼이 제공한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일괄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옥시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와 반대되는 결과를 낸 서울대와 호서대 자료를 조작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의 보고서를 작성한 서울대와 호서대 교수에게 연구용역비 명목의 뒷돈 수천만원을 건넨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하고 있다. 또한 옥시가 책임회피를 위해 법인성격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바꾼 것인지도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 가습기 살균제 가해기업 규탄하는 피해자 가족들

이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롯데마트와 옥시 등의 사과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아니고 검찰에게 사과한 것”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이들은 “옥시의 경우 검찰 수사를 통해 온갖 부정의 정황들이 드러나고 있는 시점에도 자신들의 입장만 밝히고 피해자에 대한 진정성 없는 사과로 모면하고 있다”며 “이들의 가짜 사과는 받지 않을 것이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가해기업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총회를 열고 집단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논의하고 소송인단을 꾸릴 계획이다.

한편 옥시의 이 같은 태도에 소비자들의 불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가하면 한국에서 이들 제품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면서 사태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지경제 = 김창권 기자]


김창권 기자 fiance26@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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