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금연정책 실패사례 간과하지 말아야
WHO 금연정책 실패사례 간과하지 말아야
  • 강경식 기자
  • 승인 2016.05.31 17: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금연의 날을 맞이해 보건복지부(장관 정진엽)는 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9회 세계 금연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2016년 금연캠페인 주제와 6월 초부터 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인 2016년 금연광고 시안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새로운 금연광고는 기존의 것에 비해 더욱 직설적이고 사실성을 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가 선택한 사례는 ‘후두암에 걸린 남편을 간병하는 아내’와 ‘폐암환자를 간병하는 노모’의 모습이다. 해당 광고는 다음 달 첫 주부터 TV를 통해 방송된다.

또한 WHO(세계보건기구)는 홈페이지를 통해 국제적으로 금연정책에 기여한 개인이나 기관에 수여하는 '세계 금연의 날 수상자(World No Tobacco Day Award)'로 한국정부(보건복지부)를 선정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금연구역 확대, 담배가격 인상, 경고그림 도입 등 한국정부의 담배규제정책을 위한 노력을 높이 평가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금연운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WHO의 금연정책이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WHO의 권고를 따르는 국내 금연정책의 문제점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실효성 떨어지고, 밀거래 부추기나?
2012년 호주 보건부(Department of Health)는 WHO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담배 브랜딩 금지법(Tobacco Plain Packaging Act)’을 도입했다. 이후 호주에서 판매되는 모든 담배는 무늬가 없는 올리브색의 동일한 상자로 출시되고 있다. 특정 담배 브랜드의 표시도 제한되고 광고성 문구나 이미지를 넣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커다란 글씨로 경고문구와 흡연관련 질병의 사진만 담을 수 있다.

호주에 이어 2014년에는 프랑스가 담배 포장을 통일했다. 젊은이들에게 담배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초 영국에서도 같은 내용의 법안이 추진됐다. 담배업체의 직접 홍보를 제한하는 금연정책은 선진국들의 고려대상으로 자리매김 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담배 브랜딩 금지법을 도입했던 호주 내부에서도 해당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주정부는 예정보다 8개월이나 뒤늦게 발표한 브랜딩 금지법안의 시행 후 평가 자료에서 “(금지 법안의 도입이) 효과를 내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추측을 발표했다.

호주 보건부가 브랜딩 금지법의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해 2015년 3월부터 1년에 가까운 시간을 쏟아 부었음에도 효과를 입증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한 자료를 내놓자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난이 잇따르는 것이다.

오는 12월 경고그림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정부로서는 호주의 사례를 눈여겨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또한 정책에 의해 같은 모양으로 통일된 하나의 포장을 모든 담배업체가 사용함으로 인해 담배 사업의 유통질서가 어지럽혀 진다는 문제 제기도 계속됐다. 브랜딩 금지법 이전에 비해 불법담배와 위조담배의 밀거래가 쉬워졌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14년 7월에는 100만 개비 이상의 한국산 담배를 밀수하다 적발된 한국인 2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파악된 바로는 호주의 불법 담배 유통 규모는 매년 약 2400톤이 이상이다.

이에 대해 호주 정부는 지난 3일(현지시간) 2016-17(2016·7~2017·6)회계연도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담배 밀수가 크게 늘고 있다”며 “향후 2년 동안 770만 호주달러(67억원)를 투입해 밀수를 근절 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호주정부는 건강 증진을 목표로 내년 9월부터 4년간 담배 소비세를 매년 12.5%씩 올리겠다는 담배세 인상안도 함께 발표했다. 현재 25개비 담배 한 갑 가격은 25 호주달러(2만2천원)정도다. 4년 후면 가격이 약 40 호주달러 정도가 되며 담뱃값의 75%를 세금이 차지하게 된다.

이후 일각에서는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담배가격은 현재의 불법 담배 유통량을 높이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며 모조가 쉬운 단순한 디자인은 불법 담배의 유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가장 쉬운 조건’”이라며 담배 소비세 추가 인상을 추진중인 호주정부의 금연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담배 밀거래로 피해를 입고 있는 글로벌 담배 업체들도 호주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난했다. 미히엘 리링크(Michiel Reerink) JTI 규제전략 담당 부사장은 “각국 정부는 WHO가 내는 잡음을 차단하고, 대신 공식 데이터를 참조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며, “호주에서의 브랜딩 금지정책은 합법적인 기업의 권리를 박탈하고 불법담배와 위조담배를 밀매하는 범죄자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으나, 공중보건 정책으로서는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실패 사례 모방하나?
한편 지난 3월 방한한 페카 푸스카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영향평가 전문가그룹 의장은 “유럽 최저 담배소비율을 기록한 핀란드에서는 1978년부터 담배 광고 및 판촉을 전면 금지해 왔다”며 “한국에서도 젊은이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담배 광고는 전면 금지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담배를 가장 적게 피운다는 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대마초를 많이 피우는 나라로 지목받았다. 핀란드에서는 대마초가 합법화된 네델란드 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비율로 대마초를 흡연하고 있다.

유엔마약통제프로그램(UNODC)의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의 대마초 흡연율은 14.6%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마약으로 인한 핀란드의 문제는 국제사회의 경계를 받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해 말 마약·알코올 등 중독 치료를 위한 온라인 컨설팅업체인 리커버리 브랜즈(www.recoverybrands.com)는 핀란드 인구 100만명당 81.1명이 마약 오남용으로 숨지고 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학계 일각에서는 핀란드의 금연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있다. 담배와 마찬가지로 광고와 판촉이 전혀 없음에도 높게 나타나는 대마초의 흡연율 때문이다. 판촉과 금연의 상관관계가 WHO에 의해서 과장되고 있다는 지적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담배와 대마초의 위해성과 중독성, 사회문제에 따른 비용을 고려할 때 핀란드의 금연정책에 대해 ‘완벽한 실패’라는 비판적 여론도 이미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금연을 유도했던 중국의 금연정책도 실패사례로 꼽힌다. 중국은 올해 초 각종 형식의 담배광고 및 판촉·협찬 행위를 금지했다. 앞서 2009년 5월과 지난해 5월 중국 재정부와 국가세무총국은 담배 소비세율을 5%에서 11%로 올렸다.

그러나 올해 초 관영 <중국망(中國網)>은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가 15세 이상 전국의 1만5000여 명을 대상으로 작년도에 실시한 흡연실태 조사자료를 인용해 “15세 이상 중국인 흡연율은 27.7%이며 흡연인구는 3억1600만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2012년 2월 '담배통제계획'에서 "향후 3년 내 성인 흡연율을 25% 이하로 낮추겠다"던 중국 정부의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오히려 흡연율은 2010년 조사 당시의 27.4%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흡연인구도 2010년 당시보다 1천500만명 늘었고 하루 평균 흡연량도 14개비에서 15개비로 증가했다.

국내에 맞는 해법 찾아야
전문가들은 실패한 해외 사례를 모방하기 보다는 국내 정서에 맞는 금연방안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또 세금인상과 담뱃값 인상, 자율 경쟁을 방해하는 판촉 규제 등 통제를 통한 해법보다는 금연교육과 의료지원 확대 방안 마련에도 힘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연운동단체의 관계자는 “WHO의 금연정책에 휘둘리는 한 실패한 금연정책의 답습만 반복할 것”이라며 “복지부는 국내 흡연자의 성별과 나이만 조사할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담배 종류에 따른 흡연유형을 빅데이터화 해 새로운 금연정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에서 필수로 정해진 금연교육 시간을 늘리고, 흡연자의 세수를 간접흡연자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에 충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세계적인 추세에 맞춰 시행했던 담뱃값 인상이 기대보다 금연 효과가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관할 부서에서 현재 타국의 사례를 기반으로 새로운 방안의 추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이지경제=강경식 기자]


강경식 기자 liebend@ezyeconomy.com

  •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 88, 4F(방배동, 부운빌딩)
  • 대표전화 : 02-596-7733
  • 팩스 : 02-522-7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이
  • ISSN 2636-0039
  • 제호 : 이지경제
  • 신문사 : 이지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237
  • 등록일 : 2010-05-13
  • 발행일 : 2010-05-13
  • 대표이사·발행인 : 이용범
  • 편집인 : 이용범, 최민이
  • 편집국장 : 김성수
  • 이지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지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ezyeconomy.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