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일어나 박근혜와 무너지나
박정희와 일어나 박근혜와 무너지나
  • 곽호성 기자
  • 승인 2016.06.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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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롯데 바벨탑’이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검찰의 칼날 앞에 롯데그룹의 비리와 특혜 의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여론이 롯데그룹을 주시하고 있다.

▲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검찰이 롯데그룹 전체를 수사 타겟으로 잡게 된 배경에는 ‘정운호 로비 의혹 사건’이 있다.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사장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면세점 입점을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일자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때 신영자 이사장 측이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고 검찰이 판단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한국 롯데가 창립된 이후 50여년 동안 검찰의 파상공세를 당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50여년 간 거의 양지에만 있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 롯데의 출발은 1967년 4월 설립된 롯데제과다. 지난 약 50여년 간 롯데그룹은 승승장구해왔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화려한 발전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었다.

신격호와 역대 대통령들

롯데그룹을 일으켜 세운 인물은 신격호 총괄회장이지만 롯데그룹의 초기 성장을 도운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신 총괄회장은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고등공업학교(現 와세다대)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난 다음 1948년 일본 롯데를 세웠다.

껌을 팔아 성공한 그는 1967년 한국에 들어와 롯데제과를 세우고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하게 된다. 이때 박 전 대통령의 도움으로 호텔롯데를 세우게 된다.

신 총괄회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도움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롯데월드 건설에 지원을 해줬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 시대에는 혼맥과 친분으로 문제를 풀었다. 한때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김영삼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현철 씨는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의 사위였다. 또 박철언 전 회고록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까운 관계였다고 한다.

김영삼 대통령 등장에 결정적 공헌을 한 3당 합당에 영향을 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있던 신 총괄회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자 1998년 160억원의 개인재산을 출자하며 김대중 대통령의 재벌개혁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발 빠른 움직임에 힘입어 롯데그룹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에도 특별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간절히 원했던 제2롯데월드 건설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명박과 신격호

롯데그룹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엄청나게 달라졌다. 롯데그룹의 역사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와 이전으로 나눠서 볼 수도 있을 정도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정책본부장으로 재임하게 된 2004년 이후 지난해 5월까지 매듭지은 인수합병(M&A)은 35건이다. 이 가운데 26건은 이 대통령 재임기에 진행된 사안이다. 26건 중 10건이 해외에서 이뤄졌고 16건은 국내 인수합병이었다.

롯데그룹은 국내에서 두산주류, AK면세점, GS리테일 백화점·마트부문, 하이마트 등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웠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 재임기에 롯데그룹의 자산 규모는 40조원대에서 2배 이상인 84조원이 됐고 계열사도 46개에서 79개로 늘어났다.

롯데그룹이 이렇게 욱일승천하면서 신 총괄회장이 원했던 제2롯데월드 건립도 이뤄졌다. 2009년 3월 제2롯데월드 건축이 허용되면서 롯데그룹은 신속하게 공사를 진행해 올해 말 제2롯데월드 타워가 완공될 예정이다.

박근혜와 신격호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롯데그룹은 한동안 별 탈이 없었다. 그러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생기면서 롯데그룹은 차츰 여론의 차가운 시선을 받게 됐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그룹의 국적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지나치게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재벌 개혁의 당위성을 뒷받침해주는 대표 기업이 되어 버렸다.

롯데그룹의 핵심 사업인 유통업에서는 갑질 논란에 휩싸이면서 민심이 등을 돌리게 했다. 또 롯데홈쇼핑 재승인 과정에서의 부정사건이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롯데마트가 연관이 된 것도 국민들의 반감을 더욱 끌어 올렸다.

이런 상황에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정운호 게이트 연루 의혹은 여론을 폭발하게 만든 기폭제가 됐고 검찰은 빗발치는 민심의 요구에 따라 칼날을 롯데의 심장부에 꽂을 수 밖에 없게 됐다.

업계 인사들은 롯데그룹이 작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겸손한 자세로 사과하고 충분한 배상을 했다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손영배)는 롯데건설·롯데케미칼 등 계열사 10여곳을 포함해 모두 15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롯데그룹을 둘러 싼 의혹들

현재 검찰이 주의 깊게 보고 있는 대목은 롯데그룹의 비자금 의혹이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매년 300억원대의 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파악했다.

이외에 롯데그룹이 의심의 시선을 받고 있는 사안은 △ 제2롯데월드 건설 비리 의혹 △ 롯데그룹의 조직적 증거인멸 의혹 △ 롯데그룹 역외 탈세 의혹 등이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번 롯데그룹 수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고 보고 있다. 법원 압수수색영장이 별다른 마찰 없이 잘 나온 점을 보면 검찰의 수사준비가 치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검찰이 홍만표·최유정·진경준 3인 사건을 덮기 위해 롯데그룹 수사에 엄청난 힘을 투입했다는 의문은 여전히 제기된다. 롯데그룹의 경우 전체 사업 중 내수산업 비중이 커서 수사를 해도 어려운 경제에 해를 끼친다는 비난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 경영권 분쟁과 일본으로의 국부유출 논란 등으로 인해 이미지가 많이 손상돼 강력한 수사를 해도 여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검찰이 치밀하게 계산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학계에서는 롯데그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크게 변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재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형제의 난에 어느 쪽 편을 들 수는 없으나 일단 한국과 일본에 산재한 지배구조를 단순하고 투명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수많은 해외의 이상한 계열사들 모두 정리하고 롯데백화점의 갑질을 중단시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롯데그룹 문제는 우리 재벌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의 축소판 같다”며 “60년대 이후 이어진 정부 주도적 체제, 재벌 중심 체제의 문제점이 한꺼번에 다 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벌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지경제=곽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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