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부실-방만경영 극치 Vs 기능 아닌 운용미숙 문제
관리부실-방만경영 극치 Vs 기능 아닌 운용미숙 문제
  • 한상오 기자
  • 승인 2016.06.3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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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한상오 기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거세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서 부실한 자회사 관리와 방만 경영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실기업에 물려 있는 자금이 막대한 만큼 당장 폐지는 어렵다는 의견과 구조조정과 정책금융을 할 수 있는 국책은행의 기능 때문에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앞으로 국책은행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까? 

▲ 최근 대우조선 사태로 국책은행의 관리 부실과 방만 경영의 민낯이 고스란히 들어나자 국책은행 폐지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KDB산업은행 모습.
 
국가주도의 경재개발 시대의 소명은 이미 끝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시대적 소명을 안고 태어난 은행이다. 1954년 설립된 산업은행은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시절 산업자금 공금을 통해 산업 육성과 사회간접자본 건설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1976년 출범한 수출입은행도 수출입과 해외투자 등에 필요한 금융을 기업에 제공한다는 목적을 갖고 태어났다.
 
국책은행의 문제점은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의 필요성이 줄어들면서 정체성이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시작됐다. 설립 취지와 달리 이제는 부실기업의 연명을 도와주는 ‘관치금융’이라는 오명과 함께 구조조정의 걸림돌 취급까지 받고 있다. 이번 대우조선 사태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존폐논쟁까지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산업은행이 지분을 갖고 있는 비금융 출자회사가 627개(지난해 말 기준)에 달한다. 특히 산은이 출자전환해 대주주가 된 기업은 대우조선해양 등 49개(2014년 말 기준)나 된다. 수출입은행도 성동조선해운 등 49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국책은행이 거느린 기업의 숫자만 놓고 보면 웬만한 재벌기업과 견줄만한 하다.
 
산업은행은 앞으로도 자회사가 늘어날 전망이다. 경영을 정상화해 매각한 회사보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더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지분 49.7%를 소유한 대주주이고, 현대상선도 자회사 편입을 앞두고 있다. 한진해운도 용선료 협상이 남아있지만 산업은행 산하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
구조조정과 정책금융이라는 국책은행의 기능을 놓고 보면 두 은행이 거대해진 것이 폐지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 자회사 관리가 도덕적 해이와 방만 경영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 산업은행은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신뢰받는 정책금융기업으로 환골탈퇴하기 위해 구조조정 역량 제고, 중장기 미래 정책금융 비전 추진, 출자회사 관리 강화 등 6대 혁신과제를 설정하고, 'KDB혁신위원회'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사진은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KDB 혁신 추진방안'을 발표 중 고개숙여 인사하는 모습.
 
국책은행 폐지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재벌 대기업의 부실산업을 연명시켜주는 데에 돈을 쓰는 국책은행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양원근 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5일 ‘바람직한 기업 구조조정 지원체계 모색’ 토론회에서 “성장기 대규모 프로젝트에 자금을 몰아주는 역할을 한 국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을 맡으면서 오히려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시중은행의 기업분석 능력 향상과 사모펀드(PEF) 시장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양 전 연구위원은 은행의 산업·기업에 대한 분석·연구 기능이 취약한 데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의사결정 기능이 집중된 것을 현재 기업 구조조정 시장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또 구제금융(bail-out)에 대한 기대도 기업 구조조정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거 고도 성장기에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은 국내 자금을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적으로 몰아주는 것이었지만 저성장기인 지금 필요한 선제적인 구조조정 수요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의 심재철 의원은 29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 앞서,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에 중소 조선사의 구조조정을 맡기는 것은 “무면허업자에게 자동차 수리를 맡기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심 의원은 성동조선해양과 SPP조선해양에 대한 여신평가가 수출입은행과 우리은행이 다르게 나왔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시장이 외면하는 수출입은행의 여신평가를 믿고 구조조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며 “구조조정은 국책은행이 아닌 외부 전문가 집단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4월말 여신평가에서 성동조선해양에 대해 ‘요주의’, SPP조선해양에 대해선 ‘회수 의문’으로 각각 평가했으나 우리은행은 오히려 성동조선 채권단에서는 빠졌으나 SPP조선의 채권단에는 계속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 의원은 수출입은행이 상대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조선업체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면서 채권단 자격을 유지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책은행 폐지의 주 논리는 유망기업을 지원해 산업을 키우는 모델은 이미 시대적인 소명을 다했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이 좀비기업들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며 경제에 부담만 안기지 말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중소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의 겹치는 기능을 정부가 나서 과감히 통폐합하라는 요구다. 수출기업 지원을 놓고 출혈경쟁을 벌인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기업대출 보증이 겹치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조정과 정책금융의 기능 아직 필요하다
 
반면, 국책은행을 존치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산업은행이 없으면 구조조정과 정책금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3일 우리은행 본점에서 예금보험관계 설명회에 참석한 임 위원장은 “산은은 일반 채권은행과 달리 기업 여신을 다룰 때 채권회수 가능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영향까지 생각하는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잘 관리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폐지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자회사 매각이 말처럼 쉽지 않고, 구조조정 수단으로서 국책은행은 ‘필요악’이라는 이유를 든다. 국책은행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관리능력의 부재와 시스템 운용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산업은행 자체가 암 덩어리라기보다는 낙하산 최고경영자를 내려 보내고,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팔을 비트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 지적대로 산업은행장이나 자회사 CEO에 능력이 검증된 인사를 앉혀 책임경영을 할 수 있게 한다면 굳이 폐지까지 논의 하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 유희상 감사원 산업금융 감사국장이 15일 오전 서울 삼청동 감사원 브리핑룸에서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사들의 부실관리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금융공공기관의 출자회사 관리실태를 점검,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 23일 나란히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외부 인력을 활용한 내부 조직 개혁,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낙하산’ 근절 대책 등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또한 구조조정 기능을 줄이는 대신, 관련 인력을 늘려 구조조정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산업은행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 ‘KDB혁신위원회’를 설치해 6대 혁신과제 추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6대 혁신과제는 △구조조정 역량 제고 △중장기 미래 정책금융 비전 추진 △출자회사 관리 강화 △여신심사 및 자산포트폴리오 개선 △성과중심의 인사·조직 제도 개선 △대외소통·변화관리 강화 등이다. 혁신위는 오는 7~8월 조직 진단을 마치고 9월중 혁신로드맵을 도출할 예정이며 앞으로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용된다.
 
수은 역시 크게 ‘필수적인 정책금융 지원 강화’와 ‘엄정한 경영관리 체계 확립’ 등 두 가지 부문으로 나뉜 혁신안을 내놓았다. 세부적으로는 △국내기업의 해외진출 선도 △수출 전략산업 육성 △건전성 선제관리 △책임경영 강화 △조직운영 효율화 등 5개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두 은행이 스스로 강도 높은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아직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야당이 구조조정과 관련한 청문회 추진 뜻을 밝히면서 국책은행의 기능 재편과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최근 “산업은행의 모든 사안에 대해 정확하게 청문회에서 밝히고 산은의 역할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입장이 정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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