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와 맞선기업, LG GS 교보 동화약품 유한양행
일제와 맞선기업, LG GS 교보 동화약품 유한양행
  • 곽호성 기자
  • 승인 2016.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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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8일 오전 경기 수원 세류중학교에서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직접 손도장을 찍으며 그린 태극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지경제] 곽호성 기자 = 광복절 제71주년을 앞두고 일제 강점기에 반일(反日)에 앞장섰던 기업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어려운 환경에서 기업 활동을 하면서도 민족의 독립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 정신을 되새기자는 뜻이 모아지고 있다. 

기록을 찾아보면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한 사례들이 나온다. 동화약품, 유한양행을 비롯해 교보생명, LG그룹, LS그룹이 대표적이다.

일제 강점기에 기업을 한다는 것은 공개적으로 일본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국내 기업들 상당수를 친일기업으로 보는 시각은 일제 강점기에 기업을 토대를 세우거나 경영활동을 하면서 일본의 정책에 동조했다는 의심이다.

경제계에서는 과거 일제 강점기에는 한국과 일본이 하나의 나라가 된 상황이었고 현실적으로 일본인들과 타협하지 않으면 기업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시에는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지원했기 때문에 광복이후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어느 기업인이 어떻게 지원했는지 확인하는 게 어렵다. 일제 강점기부터 운영된 기업이라 해서 ‘친일’이란 멍에를 씌울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 친일 행적 의심받는 기업들 =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사업을 영위했던 기업들이 친일기업으로 의심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1936년 협동정미소를 창업했다. 이어 1938년에는 삼성상회를 세웠고 1939년에는 조선양조를 인수하면서 재산을 늘리게 된다.

이 회장이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조선양조 인수다. 이 회장은 삼성상회에서 벌어들인 돈을 양조업에 투자했다. 당시 집에서 술을 빚을 수 없었고 양조장을 자유롭게 만들 수도 없었다. 많은 이들은 이 회장이 이렇게 좋은 사업을 인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인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에서 삼성을 친일기업으로 지적하지만 삼성은 국내에서 찾기 힘든 ‘극일기업’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대기업 가운데 일본의 주요 경쟁기업을 뛰어넘은 것은 삼성전자 정도이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도 아직 일본 도요타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친일 논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고(故)정주영 창업주가 젊었을 때에는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사업이 극히 어려웠다. 정리하면 일제강점기에 운영됐던 기업들은 대부분 친일 논란을 피해가기 어려운 처지다.

 

◇ 반일 운동한 기업들 = 반면 어려운 여건에도 반일 운동을 했다고 인정받는 기업들도 있다.

LG그룹의 경우 구인회 창업주가 1942년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1만원(당시 금액)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43년에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한 백산 안희제 선생 유가족을 백범 김구 선생이 만났을 때 나온 이야기다.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할아버지인 허만정 LG그룹 공동창업주도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증언이 있다. 안희제 선생과 백산상회를 같이 꾸려나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허만정 창업주와 이병철 회장이 서로 친분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허만정 창업주와 이 회장이 친하게 지냈다는 얘기는 이 회장을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이 정당한가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본래 사람은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몇몇 기업인들이 독립운동에 자금을 지원했다는 근거는 주로 당시 사람들의 증언이다. 따라서 당시 기업 활동을 벌인 다른 기업인들이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계에서 일제강점기 사업을 벌였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융기업 중에는 반일기업으로 교보생명을 꼽는다. 교보생명을 세운 대산(大山) 신용호(愼鏞虎)의 부친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차례 감옥에 갔고, 큰형 신용국도 반일운동을 벌였다. 셋째형 신용원은 일본 도쿄음대를 졸업한 음악가였지만 유학시절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신용호는 20세의 나이에 중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가 24살이던 1940년에 북경에서 곡물회사인 ‘북일공사’를 경영했다. 그는 이때 민족시인 이육사를 만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신 창업자는 이병철 회장과도 친분이 깊었다고 전해진다.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2003년 신 창업자가 타계했을 때 100인분의 김밥을 신 창업자 빈소에 보내기도 했다.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은 반일운동 전력이 뚜렷하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9길에 있는 동화약품 본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 연통부’가 있던 곳이다.

서울 연통부의 행정 책임자는 동화약품(동화약방) 사장이었던 민강 선생이었다. 그는 국내외 연락과 정보활동 등을 맡았다. 서울 연통부는 광복 50주년(1995년)에 항일 의거 유적지로 선정됐고 이듬해 광복절에 기념비가 건립됐다.

동화약품은 역대 최고경영자(CEO)가운데 3명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강 선생, 5대 사장 보당 윤창식(조선산직장려계, 신간회, 보린회 활동), 윤광열 명예회장(주호지대 광복군 5중대 중대장)이 독립운동에 나섰다.

유한양행도 반일운동과 연관이 깊다. 유한양행 창업주인 고(故) 유일한 박사는 독립운동가였다. 9세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자신의 기업을 경영하던 유 박사는 1926년 귀국해 유한양행을 세웠지만 1938년 미국에 가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42년부터는 미(美)육군전략처(OSS)에서 한국 담당 고문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45년 OSS의 비밀 한국 침투작전인 냅코작전에 공작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이 작전은 한국인을 한국 내로 투입해 정보 수집, 목표 시설 폭파, 게릴라전 등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곽호성 기자 grape@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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