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의 촌철살인]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주동헌의 촌철살인] 당신은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 주동헌 한양대 교수
  • 승인 2017.05.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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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교수

[이지경제] 선거의 계절이다 보니 정치적 성향이 보수네 진보네 따지는 일이 잦다. 이건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어떤 성향에 따라 구분하는 일인데 그 가치관 또는 세계관이 적용되는 분야도 사회, 문화, 경제, 안보로 다양하다 보니 사실 어떤 사람을 일의적으로 보수다, 진보다, 구분하는 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고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일이 아주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선 후보들을 일정하게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구분함으로써 우리는 표를 던지는 데 일정한 기준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가끔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심정적으로는 약자의 편을 들고 싶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착한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해서 그런 방향으로 얘기를 하게 돼 그런지는 몰라도, 어떤 분들은 나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해 주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내가 실은 경제적 가치관에 있어 꽤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사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고 그 논리에 대강 수긍하는 사람이라면 진보적이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생각에 경제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보수적 이론이 분배이론이다. 흔히 주류 경제학에는 분배이론이 없다고 오해되기도 하는데 깊게 논의되지 않을 뿐이지 명확하게 분배이론이 있다. 다소 거칠게 단순화하면 임금은 노동의 한계생산성이며 이자는 자본의 한계생산성이고 한 경제의 생산은 이에 따라 노동과 자본에 모두 배분된다는 것이 주류 경제학의 주장이다. 

수학 좋아하는 경제학자들은 이 주장에 ‘오일러 정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나는 이 주장을 꽤 좋아했는데, 이 주장이 경제적 효율성을 담보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정의롭게 보였기 때문이다. 생산요소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분배 받도록 시장이 정확하게 그렇게 작동한다니 시장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므로 생산요소 시장에는 인위적인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 배분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가격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고 믿는 것이 보수적인 것이라면 나는 보수주의자인 셈이다.

문제는 이렇게 효율적이면서도 정의로운 분배이론을 현실이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라면 언제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소득의 양극화이다. 

시장에 분배를 맡겨 두었더니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 지고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됐다는 주장이다. 아니,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시장에 의한 분배가 소득 불균등의 확대라면 이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성장을 위해 평등이 어느 정도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 아닌가 말이다. 이런 좌파들이라니.

우선,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시장의 분배가 소득불평등을 확대시킨 원인을 먼저 물어야 할 것 같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몇 년 전 ‘가장 많이 팔렸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쓴 피케티가 주었다. 거칠게 그의 주장을 요약해 보자. 분배에서 노동의 몫은 임금 곱하기 노동이다. 자본의 몫은 이자 곱하기 자본이다. 노동은 축적되지 않는데 자본은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된다. 자본이 증가하면서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감소하지만, 즉 이자가 감소하지만 이자의 감소 속도가 경제성장률 둔화 속도보다 늦다면 생산에서 자본이 가져가는 몫은 점점 커진다. 자본의 소유가 소수에게 집중돼 있으므로 소득 불평등은 확대된다. 여기에다 우리는 정체 모를 4차 산업 혁명이 노동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위협까지 받고 있다. 아, 나는 보수적인 주류 경제학의 논리를 믿고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어떤 기회에 나는 쿠웨이트의 노동시장을 분석하는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쿠웨이트가 석유 부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쿠웨이트의 노동시장 현황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쿠웨이트의 1인당 소득은 대략 4만 불 정도인데 여기서 인구는 4백만 명이다. 그러나 이중 외국인이 3백만 명이고 동남아시아 등에서 들어온 단순 노동자인 이들의 소득은 매우 낮은 수준이고 쿠웨이티라고 불리는 내국인은 백만 명이었다. 이들 내국인의 90%를 공공부문이 고용하고 있다. 역시 쿠웨이트는 복 받은 나라였다!

쿠웨이트를 언급하는 이유는, 우리도 분배문제에 있어 이제는 주류 경제학의 정의롭고 효율적인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 좀 진보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제한되기 시작하면서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녹음기처럼 대책을 반복해 온 것이 20년이 넘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이 음식, 숙박업 중심의 저부가가치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양극화에 기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이 석유와 같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자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이를 재원으로 해 공공부문에서 일자리 창출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이제는 주류 경제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공공부문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은, 직접 고용일 수도 있고, 중소기업 지원을 통한 간접 고용일 수도 있겠다.

오일러 정리에 따르면, 효율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이 이론을 부정할 때는 현실이 틀렸다고 강변할 것이 아니라 이론이 고려하고 있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아는가.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라는 이론을 오일러 정리 비슷하게 유도해 냄으로써,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지.

Who is?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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