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IFRS17’ 비상…배당 줄이고, 구조조정까지
보험업계, ‘IFRS17’ 비상…배당 줄이고, 구조조정까지
  • 안창현 기자
  • 승인 2017.05.2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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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생명보험 교육문화센터에서 민·관 합동 보험권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준비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안창현 기자 = 보험업계가 오는 2021년 도입이 확정된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앞두고 자본 확충에 비상이 걸렸다.

IFRS17의 가장 큰 틀은 부채를 산정하는 방식이 원가에서 시가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이에 과거 고금리시절에 판매했던 보험 상품의 부채를 현재의 저금리로 시가 평가할 경우, 부채 규모가 늘어나게 돼 준비금을 더 쌓아야 한다. 

보험업계가 추정하는 자본 확충 규모는 최소 23조에서 최대 33조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각 보험사는 IFRS17을 대비하기 위해 배당금을 줄이고,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는 등 자본 확충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인력 감축과 지점 축소 등 구조조정 움직임을 보이면서 노사 갈등이 심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먼저 새 회계기준에서 가장 큰 변화는 보험부채를 산정하는 방식이 원가 평가에서 시가 평가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원가 평가는 최초 보험계약을 맺은 시점에서 보험상품의 설계대로 보험부채를 계산한다면, 시가 평가는 매 결산 시기에 당시 시장금리와 위험률을 통해 보험부채를 계산한다.

강승건 대신증권 연구원은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으로 국내 보험사들의 부담이 예상된다. 고금리 시절 팔았던 보험상품의 부채를 현재의 저금리로 시가 평가하면 부채 규모가 늘어나 그만큼 준비금을 더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보험사는 단기적인 외형 성장 전략을 취해 2000년대 중반까지도 5%대의 금리 확정형 보험상품을 많이 팔았다. 현재 저금리 기조를 반영할 경우, 자본 확충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제 한국은행은 IFRS17이 도입되면 보험사, 특히 국내 생명보험사의 보험부채가 23조, 많게는 33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향후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지급여력(RBC)비율’이 있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이 얼마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25개 생보사의 RBC비율은 2015년 말 541.46%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말 341.94%로 200% 가량 떨어진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각 생보사의 RBC비율을 보면 국내 빅3 생보사인 삼성생명(350%), 한화생명(288.4%), 교보생명(263.8%)과 PCA생명(352.6%), ING생명(319.2%), 라이나생명(316.0%) 등 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반면 금감원 권고치인 150%에 미치지 못한 KDB생명(125.7%), 흥국생명(145.4%) 등은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장 이들 보험사의 방카슈랑스 상품 판매가 일부 은행에서 제한됐다.

강승건 연구원은 “KB국민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등은 RBC비율이 150% 이하인 흥국생명과 KDB생명, MG손보의 보험상품 판매를 제한했고, 우리은행도 해당 보험상품의 판매 중단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건전성

자본 확충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일부 보험사는 새 회계기준에 대비해 주주 배당금을 줄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 자료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총 배당규모가 지난해 3328억원에서 올해 2155억원으로 1173억원 감소했다. 한화생명 역시 지난해 1352억원에서 601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농협생명은 지난해 850억원을 배당했지만 올해는 아예 배당하지 않았다. 자본을 확충해 RBC비율을 관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권를 발행하는 보험사도 적지 않다.

금감원은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들은 지난달까지 565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과 626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권을 발행했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가진 금융상품이다. 채권처럼 금리가 있지만, 만기가 없어 상환부담이 없다. 재무제표상 자본으로 인정돼 자본을 늘리고 RBC비율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쓰인다.

후순위채권은 말 그대로 파산 때 다른 채권에 비해 나중에 변제받는 채권이다. 현재 자기자본의 50%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보험사별로 보면 한화생명은 지난달 초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자본 확충으로 한화생명의 RBC비율이 10%가량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DGB생명은 후순위채권으로 150억원을 모았고, 하나생명도 후순위채권 300억원을 발행한 데 이어 2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하기로 했다. 농협생명은 2분기 중 후순위채권 3000억원을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실질적인 구조조정으로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움직임도 있다.

RBC비율이 업계 최하위인 KDB생명과 흥국생명 등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IFRS17 도입과 재무 건정성 규제 강화 등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입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험업계의 오랜 갈등이 다시 격화되지 않을지 우려도 나온다. 

특히 선제적으로 지점 축소, 인력 재편을 준비 중인 흥국생명과 노동조합의 갈등은 이미 수면 위로 올라섰다.

흥국생명은 지점 효율화 전략으로 전속채널 140개 지점을 80개로 축소 재편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노조는 인적 구조조정이 시작됐다고 반발하고 있다.

흥국생명 노조 관계자는 “노동조합과 사전에 어떤 협의도 없이 지점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통폐합 과정에서 권고사직을 강요받고 있다”면서 “조합 차원에서 부당 노동 행위에 대해 고용부에 진정을 넣은 상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흥국생명의 노사 갈등이 비단 이번 일만으로 불거진 것이 아니라 보험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이 그간 양적 성장에 치중해 재무 건전성에 취약한 상태로 방치됐고, 문제가 되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구조조정을 통해 책임 전가에 급급했다”면서 “새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바빠진 국내 보험사들의 발걸음이 과거를 답습하는 형태로 변질 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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