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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은행, 안전불감증…경비원, “변기 고치느라” 업무 뒷전
▲시중은행의 한 지점에서 무장 강도 발생시 대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모의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을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한 보안시스템 개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 경비원은 관할 지방경찰청으로부터 허가받은 장비(가스분사기·삼단봉 등)를 무장하고, 범죄 발생시 초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가스총 등 호신 장비를 미착용한 상태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보안 업무이외에 고객 안내부터 청소까지 허드렛일을 도맡고 있어, 관련 당국의 관리감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7일 본지가 서울에 위치한 6개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KEB하나, NH농협, IBK기업)의 지점 90곳(국민 16곳, 신한 15곳, 우리 17곳, 하나 15곳, 농협 14곳, 기업 13곳)을 조사한 결과, 13개 지점의 경비원이 가스분사기 등 호신 장비를 휴대하지 않고 근무하고 있었다. 지점 10곳 중 1.4곳이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은행별로 보면 NH농협은행이 14개 지점 중 4곳(28.5%)의 경비원들이 장비를 휴대하지 않았다. KEB하나은행도 15개 지점 중 4곳(26.6%), 우리은행은 15개 지점 중 2곳(13.3%), 신한은행 17곳 중 2곳(11.7%), IBK기업은행 13곳 중 1곳(7.6%)에서 규정 위반이 확인됐다. KB국민은행은 유일하게 조사 대상 17개 지점 모두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은행 경비원들의 호신 장비 착용 여부는 지역별로 편차가 컸다. 서울 여의도 금융가와 기업 본사가 다수 밀집한 종로구, 대표적 부촌인 강남 일대 등의 은행 지점은 비교적 경비원 근무 규정을 준수(45개 지점 중 4곳 위반)했다.

반면 동대문구와 강북구, 성북구 등 상대적으로 유동인구가 적고, 주거지역에 위치한 은행 지점 경비원의 근무 위반(45개 지점 중 9곳) 사례가 두드러졌다.

“변기 고치느라”

현장 조사 결과, 은행 경비원들은 지점 상황에 따라 허드렛일에 동원되거나 경비원 임의로 호신 장비를 해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교대역 인근 NH농협은행의 한 경비원은 “가스분사기와 삼단봉을 착용하고 근무해야 하지만, 허리와 배에 통증이 있어 담당 행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오늘만 착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날 30분가량 자리를 비운 서울 사당동 소재 IBK기업은행 경비원은 부재 이유를 묻자 “오전에 은행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나서 행원으로부터 수리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처리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토로했다.

이밖에 서울 방배동 소재 NH농협은행 경비원은 식품 등 판매 부스에서 고객을 응대했고, 또 다른 은행 경비원들은 비품 구입을 위해 지점 외부로 장시간 나갔다 오거나, 동전 교환기를 열어 동전을 수거하는 모습 등이 포착됐다. 사실상 잡역부 역할을 하는 것.

이는 대부분 지점 쪽에서 경비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경비원들은 은행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 아닌 경비 도급업체를 통한 계약직이라 이런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

경비업법 제7조5항을 보면 ‘경비업자는 허가받은 경비업무 외의 업무에 경비원을 종사하게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경비원이 다른 업무에 치중하면 그만큼 보안공백이 커질 수 있는 이유에서다.

C은행 경비원 이모(27‧남)씨는 “보안 업무를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규정에 어긋나는 서비스를 직접 처리할 때가 많다”며 “행원이 직접 다뤄야하는 자동입출금기기(ATM)의 현금 걸림 수리나 재부팅 등 작업을 요구받기도 하는데 거절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각 은행 지점 입구에는 무장경비원 대기 중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실제로는 경비원이 무장하지 않거나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잦다. 사진=문룡식 기자

“아무나?”

경비원에 대한 은행의 인식은 채용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취업포털사이트 등을 보면 은행 경비원을 ‘로비 매니저’로 지칭해 채용하고 있다. 주요 업무도 ‘고객 서비스 제공’, ‘고객대응관리’, ‘관리자의 지시 업무’ 등 경비·보안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은행 경비원의 채용절차는 ‘경비 도급업체의 채용공고 → 지원자가 경비 도급업체에 지원 → 합격 후 배정될 은행 지점 면접 → 근무 투입’의 순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근무 투입이 확정되면 1주일가량 경비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 받지만 전문성을 기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경비원 지원 자격요건에는 무술 단증 등도 요구하지 않아 사실상 아무나 지원이 가능하다. 이는 경비업법에서 시설경비업체는 자본금 1억원과 경비지도사, 경비인력 20명만을 규정할 뿐 유단자를 딱히 명시해놓지 않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이날 경비원 5명을 조사한 결과, 무술 단증 보유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경비업체 자체적인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규정상 경비업체 소속의 경비지도사가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지점을 돌면서 경비원들을 점검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해야하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

C은행 경비원 이씨는 “경비지도사의 정기점검은 회사규정상 한 달에 한 번이지만 실제로는 두 달, 혹은 세 달에 한 번씩 와서 근무일지 확인 등만 한다”고 주장했다.

“악순환”

전문성이 부족한 경비원들에 대해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 측의 잡무를 처리하는 등, 처우가 열악하다보니 근무기간도 보통 3개월~6개월로 길지 않다. 기존 경비원이 업무에 익숙해지고 전문성을 기를 때 쯤 그만 두고 그 공백을 다시 새로운 초보 경비원이 투입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은행들은 본사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경비원의 업무 범위에 대해 설명하는 공문을 발송하고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NH농협은행의 한 관계자는 “경비원 업무와 금지 업무, 위반 시 제재사항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각 지점에 공문을 보내 안내하고 있다”며 “행원을 포함해 지점장까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경비원 업무에 대한 내용을 공유하고 불법 운용 예방을 위한 점검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면서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은 시중의 돈이 몰리는 대표적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보안 인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며 “보안·경비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것이 금융 사고를 예방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은행, 강력 범죄 무방비 노출

은행의 허술한 경비를 뚫고, 돈을 탈취해 가는 강력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경산의 자인농협 하남지점에서 총기강도 사건이 발생해 1563만원이 털렸다.

총기강도 사건의 범인인 김모(43)씨는 사건 발생 55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180초만에 1563만원을 턴 뒤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달아났다.

김씨는 지난 4월20일 오전 11시56분께 실탄이 든 미국산 권총을 들고 농협에 침입해 농협 직원 3명(남자 1명·여자 2명)을 위협 후 돈을 뺏었다. 김씨는 사건 당일 남자직원이 김씨를 제지하려하자 총을 한 발 발사하기도 했다.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폐쇄회로(CCTV)영상 분석과 통신 수사 등을 통해 사건발생 55시간 만인 22일 오후 6시47분께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서 김씨를 붙잡아 구속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은행 현급지급기에서 30대가 강도행각을 벌인 바 있다. 강모(32)씨는 지난해 12월 5일 오후 6시25분께 전북 익산시 남중동 한 은행 현금지급기에서 김모(66)씨를 밀치고 힘으로 제압한 뒤 690만원이 들어있는 김씨의 통장을 빼앗아 달아났다. 강씨는 또 이날 빼앗은 김씨의 통장에서 현금 100만원을 인출해 사용했다.

조사결과 강씨는 김씨가 현금지급기를 이용하는 동안, 뒤에서 지켜보며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통장을 빼앗아 현금을 인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가스총을 이용한 은행 강도도 발생했다. 2015년 7월20일 오후 12시30분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 새마을금고에 강도가 침입해 2400만원의 현금을 털어 달아난 것.

경찰에 따르면 3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새마을금고에 들어와 가스총으로 보이는 물건으로 은행 직원을 위협했다. 이 범인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창구에 앉아 있던 50대 남성 손님을 인질로 삼고 은행 직원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이 들어온 직후 창구 직원이 비상버튼을 눌렀지만 범인은 경찰이 도착하기 직전에 100cc 스쿠터를 타고 도주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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