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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잘 날 없는 생보업계’…예치보험금 이자 논란 점화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안창현 기자 = 생명보험업계가 바람 잘 날 없다. 자살보험금 사태가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이번엔 예치보험금 이자 문제가 불거졌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생보사가 고객의 예치 보험금에 대해 약정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미 지난 2015년부터 관련 민원과 분쟁이 제기됐지만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 이에 일각에선 ‘제2의 자살보험금’ 사태로 번지는 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금융소비자네트워크와 금융소비자연맹 등 소비자단체들에 따르면 생명보험사들은 과거 금리가 높을 당시 보험금을 예치하면 ‘예정이율+1%’로 부리해주겠다고 약정했다. 하지만 저금리 상황이 지속되고 보험사 수익성이 악화되자 소멸시효나 내부규정 변경을 내세워 이자 지급을 중단했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생보사들이 고액보험금 수령자를 대상으로 이자를 더 준다며 공공연히 마케팅을 벌여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금리가 점차 하락해 수익을 얻지 못하자 이제 와서 소멸시효 운운하며 이자 지급을 중단하고 줬던 이자를 뺏는 것은 고객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소멸시효?”

국내 생보사들은 IMF 이후 금리가 높아진 시기에 고객들이 보험금을 찾아가지 않고 예치하면 ‘예정이율+1%’로 부리해주는 조항을 약관에 삽입하고 적극적으로 보험금 예치에 나섰다. 

당시 보험상품의 예정이율은 7.5%. 예정이율에 1%를 더한 8.5%가 시중이율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험금이나 중도급부금(가입자가 정한 시점에 기납입보험료의 일부를 일시금으로 받는 대금)을 찾지 않고 보험사에 그대로 예치하는 고객들이 많았다.

H생명보험에 가입한 김모씨(59‧여)도 그런 경우다. 김씨는 2004년 남편이 암으로 사망해 유족연금으로 매년 900여만원을 10회에 걸쳐 받기로 돼 있었다. 첫 해 보험금을 받았지만, 이듬해부턴 수령하지 않고 예치하면 복리이자로 적립된다는 보험사의 설득에 어려운 살림에도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다.

김씨는 2014년 7월 보험사 고객센터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앞으로 1년 더 예치할 수 있다는 말에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이만한 기회가 없겠다 싶어 보험금을 찾지 않았다.

문제는 이듬해 김씨가 보험금을 수령하려고 다시 보험사를 방문했을 때 생겼다. 보험사 측에서 갑자기 올해 규정이 바뀌어 원금에 2년 치 이자만 지급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규정이 바뀌었으면 이후부터 적용해야지 기존 보험에 왜 소급적용을 하느냐?”는 김씨의 항변도 소용이 없었다.

단지 규정이 그렇다는 답변만 들은 김씨는 억울한 마음에 소비자단체에 민원을 제기하게 됐다.

이기욱 금소연 사무처장은 “김씨의 민원을 접수한 뒤 H생명에 계속 문제 제기를 했고 결국 보험사에서 이자를 전액 지급하기로 결정했다”면서 “하지만 김씨가 실제 이자를 지급 받은 것은 2015년까지고, 2016년부터는 다시 부지급하는 것으로 번복됐다”고 지적했다.

2015년 2월 안내문(위)에는 분할보험금 미수령시 약관에 정한 이자를 지급한다고 표기됐으나, 2015년 10월 안내문에서 상법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내용이 추가돼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제공

실제 H생보는 자사 저축성 연금이나 보험금 예치 계약자에게 일괄적으로 “바뀐 상법에 의해 보험금 예치 이자에 대한 청구권 소멸시효가 3년”이라며 “3년이 지난 건에 대해선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니 예치금을 찾아가라”는 안내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 사무처장는 “2015년 3월 상법상 청구건 소멸시효가 2년에서 3년으로 변경됐다. 그러는 사이 생보사들이 그동안 잘 지급해오던 예치보험금 이자를, 갑자기 상법이 바뀌었다고 2년치 밖에 못 주겠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구권 소멸시효가 늘어난 것과 예치된 보험금의 이자를 지급하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청구권 소멸시효를 둔 것은 보험금을 일정 기간 청구하지 않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이나, 예치된 보험금은 이미 계약자가 청구를 해서 보험금을 지급 받고 이를 다시 예치한 상태이기에 소멸시효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생보사들이 무리하게 이자에 대해서 청구권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맹수석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치금은 이미 수령한 보험금을 다시 보험사에 맡긴 것으로, 보험금과 동일할 수 없다”며 “보험금 예치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이후 보험금 지급 청구권이 인정된 시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원 급증 

최근 소비자단체들은 김씨와 같은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며, 지난 3년간 계속된 관련 분쟁이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생보사 예치보험금 이자미지급 소비자분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지난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소비자단체들과 금융감독원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이지경제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융소비자네트워크가 공동 개최한 관련 세미나도 생보사들의 이자 미지급 분쟁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H생명뿐만 아니라 K생명, D생명 등 생보사들에 대한 예치보험금 이자 미지급 민원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 생보사들은 근거 없이 이자에 청구권 소멸시효를 적용해서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또 “약관이 모호한 경우에도 계약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하물며 약관에 수령시점까지 이자를 부리시켜준다고 명시해놓고, 시장 상황이 바뀌었다고 타당하지도 않은 조항을 들어 계약자를 속이는 것은 소비자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기욱 사무처장도 “비난을 감수하고 지급을 거부하는 보험사도 문제지만, 소비자 피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를 눈 감고 있는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도 문제”라며 “당국은 이번 사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하루빨리 생보사들이 약관대로 예치보험금에 대한 이자를 모두 지급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생보사 관계자는 “사실 보험사마다 계약과 약관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뭉뚱그려 언급하긴 힘든 상황”이라며 “아직 업계에서 이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창현 기자  isangahn@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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