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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보험사 손실은 소비자 몫?

[이지경제] 안창현 기자 =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생명보험사들은 금리가 높은 저축성보험이나 연금보험을 판매하며 외적 성장을 꾀했다. IMF 이후 금리가 급등하자 운용자산을 늘려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인데, 이게 이제 보험사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소비자분쟁 세미나에 참석한 한 패널의 지적이다. 과거 판매에 열을 올렸던 고금리 확정 상품들이 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보험사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생보사들의 이자 미지급 분쟁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생보사들은 과거 예정이율보다 높은 이자를 약속하고 고객들의 보험금 예치에 열을 올렸다. 이 보험금을 다시 보험사 운용자산으로 이용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다.

당시 대부분의 생보사는 예정이율 7.5%에 1%를 더한 이자 지급을 약속하며 보험금을 예치하도록 고객을 설득했다. 보험사의 운용자산수익율이 10%를 상회하던 때였다. 보험사 입장에선 ‘예정이율+1%’가 큰 무리라고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현재 국내 기준금리는 연 1.25%로 13개월째 동결 상태다. 지난해 기준 생보사들의 운용자산수익율은 4%를 밑돌며 최저치를 찍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액 보험금에 매년 8.5%씩 이자 적립을 해주는 것이 보험사 입장에서 어려운 일이 됐다.

90년대 팔린 고금리 상품들도 부담이 되긴 마찬가지다. 다른 금융상품과 달리 보험은 만기가 20~30년에 달하는 장기 상품이 많아 고금리 상품의 여파는 지금까지 여전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확정 금리로 판매한 상품이 대략 201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금리가 연 4% 미만인 상품은 14조1700억원 규모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187조300억원 가량의 상품은 4% 이상의 확정 금리 상품이 되는 셈이다. 더구나 7%대 이상의 확정 금리를 보장한 상품도 79조3499억원으로 나타났다.

변동 금리 상품이라면 공시이율을 낮춰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도 있겠지만, 확정 금리 상품은 보험사가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생보사들이 과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취했던 조치들이, 반대로 역마진 손실을 걱정해야 할 일들로 바뀐 셈이다. 역마진 손실은 고객에게 지급해야 할 이자가 고객의 보험금을 굴려 올리는 수익보다 높아서 발생하는 손실이다.

4% 이상의 확정 금리를 보장한 보험상품이나 최근 문제 되고 있는 예치보험금의 예정이율+1% 약정 등은 생보사 입장에서 최근 운용자산수익율을 감안했을 때 모두 역마진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역마진 가능성이 커진 만큼 이를 타개할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보험사들이 내놓는 대책이란 것들이 소비자 입장에서 납득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남양주에 사는 윤모씨는 13년전 교통사고로 하반식 마비가 돼 장해보험금 1억700만원을 받았다. 보험사는 보험금을 예치하면 시중보다 높은 금리로 이자를 계산해주겠다고 했다. 앞서 보험금 예치를 위해 보험사들이 취했던 바 그대로다.

그렇게 12년간 보험사에 돈을 맡겼다. 그런데 최근 윤씨는 규정이 바뀌었다며 원금과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인 2년치 이자만 주겠다는 보험사 통보를 받았다. 보험사 말을 믿고 어려운 살림에도 보험금을 수령하지 않았는데,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익이 날 때면 어김없이 보험사 쪽으로 흐르던 돈이, 손실을 나면 반대로 소비자를 향한다. 예치보험금에 대한 이자 미지급 건은 바로 보험사 손실이 소비자 몫이 되는 전형적인 경우다.

안창현 기자  isangahn@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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