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대한민국 금융 118년…이지가 뽑은 7가지 명장면
[창간 기획] 대한민국 금융 118년…이지가 뽑은 7가지 명장면
  • 안창현·문룡식 기자
  • 승인 2017.09.04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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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안창현·문룡식 기자 = ‘쉽고 빠른 경제뉴스’ 이지경제가 창간 7주년을 맞았다. 본지는 지난 7년간 투자와 기업 정보 등 생생한 경제뉴스와 그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지경제는 7주년을 기념해 금융 118년사를 되돌아보는 7가지 명장면을 엄선했다〈편집자주〉.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 본점 광통관의 모습, 현재 우리은행 종로 지점. 사진=우리은행

#1. 대한민국 ‘최초’ 은행?

대한민국 금융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최초 은행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국내에서 첫 번째 은행을 표방하는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의 전신 중 하나인 한국상업은행이 대한제국 시절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다.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고종황제의 명에 의해 황실 내탕금(임금의 개인 재산)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이 은행은 1911년 조선상업은행으로 개명한 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한국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한국상업은행은 외환위기를 넘기며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출범했고, 2002년 지금의 명칭인 우리은행으로 개명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대한천일은행부터 시작한 우리은행의 역사는 118년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을 국내 첫 은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한천일은행이 출범하기 2년 전인 1897년 민간자본으로 한성은행이 먼저 설립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성은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계보를 잇고 있다. 1943년 동일은행과 합병해 ‘조흥은행’으로 재탄생한 것. 조흥은행의 현재 모습은 신한은행이다.

다만 한성은행은 1905년 경영 악화로 인해 경영권이 일본 자본으로 넘어갔다. 이후 일본인과 친일파에 의해 경영된 탓에 순수 민족 은행의 계보를 잇지 못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대조선보험회사’가 발행한 소 보험증권. 사진=서울역사박물관

#2. 국내 1호 보험계약은?

금융업의 또 다른 축은 보험이다.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보험제도가 도입된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이다. 하지만 당시엔 일본 등 외국 보험사들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대리점을 통해 보험을 판매했다. 

그래서 1922년 세워진 ‘조선생명보험회사’가 한국에 본점을 둔 최초의 보험사로 꼽힌다. 당시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씨 등이 주축이 된 첫 민간 생명보험사다.

이듬해 일제강점기 산업 개발을 위한 특수은행이었던 조선식산은행이 주도해 설립한 ‘조선화재해상보험회사’는 최초 손해보험사로 기록돼 있다.

조선생명보험회사는 해방 이후 영업을 이어가지 못하면서 1962년 면허가 취소됐다. 반면 조선화재해상보험회사는 1950년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 2005년 메리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보험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첫 번째’ 타이틀을 두고 논란이 있다.

일각에서 1895년 농업 및 상업, 해운 등을 관장했던 ‘농상공부’란 관청에서 관허 1호로 허가한 ‘대조선보험회사’를 우리나라 첫 보험사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대조선보험회사가 1897년 6월 함경도에서 발행한 소(牛) 보험증권이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보험증권으로 알려졌다.

이 보험증권에는 소의 털 색깔과 뿔 여부, 상태 등이 기록돼 있고 보험료는 소 크기에 상관  없이 한 마리당 엽전 한 냥이었다. 소에 이상이 생기면 소 크기별로 대우는 100냥, 중우는 70냥, 소우는 40냥의 보험금을 책정한다고 적혀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와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3. 한국은행, ‘독립성’ 논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의 오찬 회동 후 “금리문제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라며 “정부 당국자가 금리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1.25% 기준금리가 너무 낮다”며 금리 조정 관련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기준금리 책정 등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독립성 존중을 위해 정부 당국자의 언급이 부적절하다고 꼬집은 것.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은 정부와 별도의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고 있다.

정부는 보통 경기부양과 고용안정에 중점을 두는 탓에 돈을 더 풀어 성장률을 높이려는 성향이 있다. 이때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낮아 정부를 제지할 힘이 없다면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국가 통화의 신용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 정책에 휘둘리지 않는 금융정책을 펼치는 데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은행의 역사는 처참하다. 중앙은행으로서 독립성을 온전히 보장 받은 기간이 20년밖에 안 되는 이유에서다.

한은은 1950년 설립 당시 통화·신용·외환 정책과 함께 은행에 대한 감독과 검사·제재 권한을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은의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 일사 분란한 경제정책 집행을 위해 박정희 정부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의 힘을 한은보다 강화한 것. 대표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 결정에 대한 ‘재무부 장관의 재의요구권’ 보장을 들 수 있다.

당시 재무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 의장까지 겸임해 결국 통화정책은 정부가 결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때 한은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며 정부 정책에 들러리를 서는 형편이었다.

한은은 문민정부 시기인 1997년에 와서야 비로소 독립성을 갖추게 됐다.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직을 맡게 됐으며, 비상근직이던 금통위원들도 상근직으로 바뀌었다. 

기준금리 결정 등 한은의 역할도 강화됐다. 물가 안정 외에도 금융 안정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추가된 것도 당시였다.

대한증권거래소가 1956년 3월 3일 증권시장을 첫 개장하는 모습. 사진=한국거래소

#4. 증권, 한국 경제의 ‘거울’

1956년 당시 재무부 주도로 설립된 ‘대한증권거래소’. 현재 한국거래소의 전신인 이곳에서 한국 증권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전후 복구와 경제 부흥을 위해 투자 재원 마련이 시급했던 정부는 당시 윤인상 재무부 차관을 중심으로 설립준비위원회를 꾸리고 2월 11일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 문을 열었다.

그해 3월 3일 첫 거래가 이뤄졌다. 개장일 상장된 종목은 조흥·저축·산업·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경성전기, 조선운수, 경성방직 등 8개 기업 총 12개 종목에 불과했다. 시가총액은 150억원 수준.

이들 주식도 대부분 정부가 보유하고 있어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거래는 미미했고, 개장 첫해 실적은 3억9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현재 상장기업 수 2000여개, 시가총액 약 1500조원에 이르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시장이 됐다. 한국거래소는 세계 거래소 중 상장기업수 9위, 시가총액 15위, 거래대금 8위 규모로 성장했다.

증시는 실물경제는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주식시장에서 시기별 주도주를 보면 한국 경제의 발전상을 엿볼 수 있다. 70년대가 개발경제 속에 건설주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이끌었다면, 80년대는 일명 트로이카주(건설, 무역, 금융업종)가 수출 위주 경제에서 부상했다.

그리고 90년대 반도체주에 이어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2000년대 초반 IT·벤처주가 주도주 대열에 합류하는 흐름을 보였다. 현재는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글로벌 경쟁력을 검증 받은 대형주들이 주식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 서울 종로구 SC제일은행 본점 제막식. 사진=뉴시스

#5. 시대를 풍미한 ‘조상제한서’

대한민국 금융계를 풍미했던 시중은행들이 있었다.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개 은행이다. 이들 은행의 앞 글자를 딴 ‘조상제한서’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될 정도로 그 위상은 대단했다.

현재 ‘조상제한서’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경영이 악화되면서 인수·합병을 거듭한 끝에 하나둘씩 역사 속에 사라진 탓이다.

조상제한서 중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춘 곳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다. 두 은행은 1999년 1월 4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출범, 현재 우리은행의 토대가 됐다.

서울은행은 2001년 12월 하나은행에 합병됐다. 이후 하나은행이 2015년 외환은행과 또다시 합쳐져 KEB하나은행이 되면서 5대 은행 중 유일하게 법인마저 사라졌다. 조흥은행은 2006년 4월 신한은행과 합병하며 명칭을 잃었다.

유일하게 이름을 지킨 곳은 제일은행. 2005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인수돼 SC제일은행으로 남아 현재까지 영업 중이다.

비록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조상제한서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다. 시중 은행장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자리 순서 배치가 그 흔적 중 하나다.

현재 은행장 회의에서는 신한은행이 시중 은행장 중 가장 상석에 앉는다. 조상제한서의 첫 번째인 조흥은행을 인수한 이유에서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을 합병한 우리은행장은 그 다음 자리다.

은행 규모만 놓고 보면 어림도 없지만 과거 제일은행의 자리였기 때문에 세 번째 자리는 SC제일은행장 차지다. 서울은행을 인수한 KEB하나은행이 그 다음, 신한은행과 리딩 뱅크를 놓고 다투는 KB국민은행은 가장 말석에 자리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3월 바레인과 국가건강보험시스템 개혁을 위한 협력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건강보험심사평가원

#6. 건강보험 40주년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된 지 40주년을 맞았다. 뜻 깊은 일도 있었다. 우리 건강보험 관리 시스템이 외국에 수출된 것. 지난 3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바레인 정부와 ‘바레인 국가건강보험 시스템’을 구축하는 계약을 맺은 것.

심사평가원은 2019년까지 바레인의 국가건강보험제도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국가의약품관리, 국가건강보험정보, 국가의료정보활용 시스템 등 우리의 주요 건강보험 제도를 현지에 맞게 구축할 예정이다.

손명세 심사평가원장은 “바레인 프로젝트는 우리 건강보험제도가 1977년 도입된 이래 외국에 수출하는 첫 사례”라면서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한국 건강보험에 뜻 깊은 기회이자 도전”이라고 언급했다.

나아가 이번 수출을 통해 한·중동 간 보건의료 협력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고, 우리 건강보험 시스템이 중동, 나아가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볼만 하다. 그만큼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한국은 의료서비스를 국민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로 보고 의료보험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고, 70년대까지 여러 시범사업을 통해 의료보험제도 운용 경험을 쌓았다.

그런 노력 끝에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도입된 지 12년 만이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단기간 내 얻은 성과로 평가받는다.

전체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는 데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은 100여년의 시간이 걸렸고, 가까운 일본도 30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새 정부 들어 건강보험의 의료보장 수준을 높이고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재정 건정성을 높이는 등 관련 제도 개선에 더욱 힘을 내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보편적 건강보험’의 모범 사례로 한국이 주목 받고 있는 이유다.

금융과 기술이 결합한 ‘핀테크’는 많은 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7. 금융업과 4차 산업혁명

이제 우리는 로봇이 직접 금융상품을 추천해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 로봇은 고객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적당한 금융상품을 소개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이 주식시장의 현 상황을 진단하기도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들이 제조업, 서비스업 등 산업분야뿐만 아니라 금융업에서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국내 주요 은행은 독자적인 모바일뱅크 브랜드를 보유하고 서비스를 확대하면서 마케팅부터 고객관리, 신용평가까지 다양한 분야에 신기술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보험업계도 웨어러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같은 혁신기술이 적용되면서 ‘인슈어테크(InsurTech)’가 향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몇몇 국내 보험사는 이미 인공지능과 메신저를 결합한 ‘챗봇’을 활용해 보험 상담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증권사나 자산운용회사들도 빅데이터, 인공지능에 투자전략을 결합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들을 경쟁적으로 출시했다.

서은숙 상명대학교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이같은 금융 서비스들이 금융업계 내에 확산되면서 금융 소비자들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편리함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우후죽순 선보이는 첨단 기술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들의 부작용들도 있다. 예를 들어 결제 시스템의 단순화로 발생할 수 있는 정보 보안 리스크의 확대, 불완전한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따르는 신뢰성 저하 등이 그렇다”고 지적했다.


안창현·문룡식 기자 isangahn@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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