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외환위기 20년…한보‧대우 ‘낙마’, 삼성‧현대차 ‘위풍당당’
[창간 기획] 외환위기 20년…한보‧대우 ‘낙마’, 삼성‧현대차 ‘위풍당당’
  • 이민섭 기자
  • 승인 2017.09.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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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이지경제] 이민섭 이한림 기자 = ‘쉽고 빠른 경제뉴스’ 이지경제가 창간 7주년을 맞았다. 본지는 지난 7년간 투자와 기업 정보 등 생생한 경제뉴스와 그 이면에 감춰진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지경제는 창간 7주년을 기념해 반면교사가 될 흥망성쇠 비운의 기업을 살펴봤다〈편집자주〉.

대한민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가파른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반세기만에 최빈국에서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지만 부작용은 심각했다. 빈부격차와 재벌 중심의 사회 구조가 대표적이다.

질주를 계속했던 우리 경제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라는 절제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6.25 한국전쟁이후 최대의 국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쌓여온 문제(수입 의존, 기술 개발 소홀, 국가 경쟁력 악화 등)가 한 순간에 곪아 터졌다. 또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인해 IMF(국제통회기금)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경제 위기는 성장 가도를 달렸던 굴지의 기업들에게 치명타가 됐다. 1997년 당시 재계 서열 30위 안에 들었던 기업 중 16곳이 순위 밖으로 밀려나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JTBC (출처 :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한보그룹=IMF 신호탄

한보그룹. 1974년 설립 후 1997년 당시 재계 서열 14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방만 경영은 IMF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다.

한보그룹은 1974년 한보상사로 출발해 폐광 인수 후 한보건설과 한보철강 등을 연이어 설립해 급격하게 몸집을 불렸다.

한보건설은 1970년대 불어 닥친 강남 개발 열풍에 편승해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수주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포항제철의 내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철강업에 집착한 것이 문제였다. 재무구조가 열악한 상황에서 당진제철소 건설을 밀어 붙이면서 회사채 남발과 차입, 어음, 부동산 매각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에 은행권이 1997년 1월 23일 추가 지원을 거절하면서 도산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한보그룹의 부도 후폭풍은 상당했다. 권력형 금융 부정과 특혜 대출 비리가 들어났다. 또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을 받고,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은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과 김기섭 국가안전기획부(전 국가정보원) 운영차장이 연루돼 구속되는 등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기록됐다.

사진=삼립식품

삼립식품=아우 덕분에

삼립식품은 1945년 설립한 ‘상미당’이 전신이다. 창업자는 고(故) 허창성 회장이며 서울 을지로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정부의 분식장려정책과 맞물려 삼립식품의 판매량이 늘었으며, 주한미군에 빵을 납품하는 등 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1960년대 후반 국내에는 고려당, 뉴욕제과 등 베이커리 업체들이 등장했다. 삼립식품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72년 한국인터네셔날식품(전 샤니)을 설립했다.

삼립식품은 이후 1983년 허창성 회장의 장남 허영선 회장이 맡았으며, 차남 허영인 회장은 샤니를 물려받아 업계 1, 2위를 다투며 치열하게 경쟁했다.

형제기업인 샤니는 비알코리아, 파리크라상을 설립하며 던킨도너츠, 파리바게트, 배스킨라빈스 등의 브랜드를 잇달아 출시해 업계 1위에 올랐다.

반면 삼립식품은 1997년 5월 3억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가 났으며 이듬해인 1998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샤니와 파리크라상은 컨소시엄을 결성해 모태기업인 삼립식품을 인수했다. 파리크라상과 삼립식품은 합병했고 부채비율을 59%까지 낮추며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사진=뉴시스

대우그룹=대마불사의 끝

대우그룹은 1970년대 동유럽‧베트남‧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해외사업 확장에 나서며 성과를 올렸다. 특히 대우그룹의 주력사업인 대우자동차는 폴란드‧루마니아‧우크라이나‧인도‧중국 등 사업을 확장해 세계 10대 자동차업체 중 하나로 성장했다.

IMF 당시에도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인수 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고, 현금 확보를 위해 총 100억 달러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1999년 3월 그룹의 부채비율이 400% 증가, 자기자본비율은 50% 이하로 감소했다.

대우의 경영부실의 직접적인 원인은 IMF 사태로 인한 고금리. 차입금 의존도가 높았던 대우 입장에서 연 20%가 넘는 고금리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결국 1999년 워크아웃이 진행돼 대마불사 신화의 끝을 알렸다.

이밖에도 삼미그룹(26위)이 부도를 맞았고, 기아자동차(8위)는 법정관리 후 현대자동차에 매각됐다. 해태그룹(24위)과 뉴코아(25위) 역시 부도를 피하지 못했고, 아남과 거평그룹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뉴시스

삼성‧현대차 등 건재 과시

IMF 사태 후 대기업들은 중복, 과잉투자업종을 정리하기 위한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재무구조 개선 및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삼성그룹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백색가전 등을 앞세운 삼성전자를 배경으로 확고한 재계 1위 기업의 면모를 다졌다.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글로벌 메이커로 발돋움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SK그룹은 하이닉스 반도체와 SK텔레콤 등 통신 종목에서 우위를 점유하며 성장 가도를 달렸고, LG그룹 역시 LS와 GS그룹을 각각 출범시킨 후 가전과 화학업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며 볼륨을 키웠다.

최성범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90년대 당시 수많은 기업이 덩치를 키우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IMF 사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면서 “핵심 역량에 집중적인 투자와 여유자금 확보, 고정비의 축소를 유지하는 것이 미래 경쟁력 확보에 용이하다”고 피력했다.


이민섭 기자 minseob0402@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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