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역세권이 아니라도 괜찮아
[기자수첩] 역세권이 아니라도 괜찮아
  • 이한림 기자
  • 승인 2017.10.24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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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이한림 기자 = “내 집 마련은 바라지도 않는데 청년들을 사회취약계층으로 싸잡는 분위기가 불편하다.”

서울 시내 원룸에 거주중인 30대 청년은 이같이 토로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서울시가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돕고자 내놓은 ‘역세권2030청년주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해당 사업은 가슴 벅찬 사업명과는 달리 난항을 겪고 있다. 취지는 좋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청년층의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보기 좋은 형태로 꾸려진다.

문제는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다는 점이다. 서울시가 지난 6월 집계한 역세권2030청년주택 사업추진 현황에 따르면 청년주택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1만6851가구 중 민간 비중이 무려 80%를 넘어가지만 사업인가가 완료된 곳은 단 3곳에 불과했다.

주체 간의 갈등이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시의 보여주기 급급한 행보, 임대 주택이 들어서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님비 현상, 부동산 시장이 만들어낸 이기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시는 해당 사업이 결국 건설사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세권2030청년주택의 주거 기간은 최대 8년. 8년 간 임대 수익을 올린 건설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단순 사업성을 고려했을 때 역세권에 위치한 이 임대주택을 분양으로 전환하는 데 망설일 이유가 없다. 동시에 건설사가 비난 여론을 받으면서까지 사업에 참여해야하는 이유가 부족한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임대주택과 집값 하락의 상관관계를 우려한 일부 주민들의 반발로 이어지는 갈등과 연결된다. 시가 민간건설사를 선정하지 못하고 있다면, 시와 주민 간의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길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갈등은 거쳐야할 하나의 단계로 느껴진다.

단계를 넘지 못하면 비난의 화살은 종종 휘어진다. 임대주택을 공급받을 수요자들이 갈등 제공의 원인이라는 언사다. 시의 역세권2030청년주택 사업으로 비춰보자면 수요자는 청년이다. 청년들이 지역에 많이 몰린다면 동네가 시끄러워지며 유흥가가 가득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주택 시장 논리로 보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세입자다.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한 청년들은 학교, 직장 등을 따라 거주지를 이동한다. 어떤 청년들은 이에 분개해 뜻을 모아 같이 살아갈 공간을 구축하고, 어떤 청년들은 필연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노마드(Nomad)‘라 칭하고 있다.

행복한 상상은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노마드라고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게 아니다. 이왕 청년들에게 행복한 상상을 꾸게 하기로 했다면 공공과 민간, 주민이 하루빨리 뜻을 모으길 바란다. 안타깝지만 주거 난을 겪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미 행복한 상상을 해본 지 오래다. 역세권이 아니라도 괜찮다.


이한림 기자 lhl@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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