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도대체 소멸시효가 뭔가요?”
[기자수첩] “도대체 소멸시효가 뭔가요?”
  • 안창현 기자
  • 승인 2017.12.0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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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안창현 기자 = #1. 올해 72세 금씨 할머니는 폐지를 모으며 생활하고 있다. 남편은 당뇨와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슬하에 자식도 없어 할머니 혼자 폐지를 모으며 5만원 안팎의 수입으로 생활했다. 다행이 기초수급자로 생계금여 84만원을 받지만 남편 약값에 방세 등을 제외하면 생활비는 늘 빠듯하다.

하지만 금씨 할머니 근심은 이뿐만이 아니다. 15년 전 남편이 길거리 장사라도 해보겠다며 할머니 이름으로 대출 받았던 850만원과 그간 쌓인 연체이자 3500만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가끔 국민행복기금이란 곳에서 빚을 최대 90% 감면해주고 10년간 나눠 갚게 해주겠다는 연락이 오지만 금씨 할머니는 무슨 소리인지 잘 알지 못했다.

#2.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정씨(42세·남)는 20살부터 모은 돈으로 작은 일식집을 차려 운영했다. 그러다 6년 전 아버지의 암 진단으로 목돈이 필요하게 됐고, 급한 대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운영하던 가게마저 어려워져 폐업하고 4000만원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정씨는 가게를 정리한 뒤 일식집 주방장으로 취직해 열심히 일했지만, 월급 200만원에 아버지 병원비, 네 가족 생활비를 보태면 불어나는 연체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정씨는 자신의 채무가 국민행복기금으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채무조정을 해보려 했지만 원금의 60%를 감면받더라도 빠듯한 월급에 빚을 갚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3.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집을 나갔던 강씨(58세·여)의 딸은 12년 만에 손녀를 안고 돌아왔다. 하지만 곧 강씨 딸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가출했고, 강씨는 손녀딸과 단 둘이 살게 됐다. 이웃 주민의 도움으로 인근 주민센터의 복지 지원을 받아 생계급여 84만원을 받으려 근근이 살았다.

어느날 강씨는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통지를 받았다. 5년 전 손녀딸이 아파 병원비를 마련하고자 급하게 카드사에서 빌렸던 200만원에 대한 것이었다. 강씨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 걱정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이 일하는 식당 주인에게서 우연히 법원에서 온 통지가 소멸시효를 연장하라는 것이었단 얘기를 들었다.

소멸시효가 뭔지 몰랐던 강씨는 빚을 갚고 싶어도 갚지 못하는 처지에 앞으로 10년 동안 더 추심에 시달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만 답답했다. 만일 소멸시효 연장기준이 개선된다면 강씨 같이 상환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채무자에 대해선 채권자가 시효연장을 위한 지급명령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최근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지난해 말 기준 1000만원 이하 빚을 10년 이상 연체한 장기소액연체자의 채무 원리금 전액을 탕감해주기로 했다.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고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이 99만원 수준을 밑돌면 스스로 빚을 상환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같은 장기소액연체자는 정부 추정으로 대략 159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 금씨 할머니나 정씨, 강씨 등이 모두 여기 포함될 것이다. 정부에서 발표한 정책 자료를 읽다 금씨 할머니와 같은 장기소액연체자의 사연을 발견했다. 자료집에는 이례적으로 이들 연체자의 처지가 세세히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정부의 부채 탕감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는 논란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였다.

정책 발표 이후, 아니나 다를까 세간에 다양한 얘기가 오가는 것 같다. 유례없는 경제적 사면으로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의견부터 예산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그래서 더욱 위 사연들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159만명이란 숫자에서 느껴지지 않는, 우리 주변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 말이다. 이번 지원 대책에 관한 다양한 주의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출발점은 우리 이웃의 삶일 것이기 때문이다.


안창현 기자 isangahn@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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