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체크] 은행권, ‘속빈 강정’에 울상…덩치 키운 개인형 퇴직연금, 실속은 ‘글쎄요’
[이슈 체크] 은행권, ‘속빈 강정’에 울상…덩치 키운 개인형 퇴직연금, 실속은 ‘글쎄요’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8.01.26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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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권이 ‘속 빈 강정’ 때문에 답답한 심정이다.

세액공제 등을 내세운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이른바 대세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며 덩치를 키우고 있지만 정작 수익률은 정기예금 이자 수익에도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당 경쟁에 따른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지는 등 이래저래 속만 태우고 있다.

26일 전국은행연합회에 공시된 6개(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주요 은행의 IRP 적립금 및 수익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현재 IRP 적립금은 9조5140억원으로 전년(7조5641억원) 대비 25.8%(1조9499억원) 늘었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의 적립금이 2조8129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2조2595억원), 우리(1조6734억원), KEB하나(1조2870억원), IBK기업(7741억원), NH농협(7071억원) 순이다.

IRP는 기존의 개인퇴직계좌(IRA)를 대체하는 퇴직연금으로 지난 2012년 7월 처음 도입됐다. 근로자가 이직·퇴직할 때 받은 퇴직 급여를 본인 명의 계좌에 적립해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찾아 쓸 수 있는 상품이다.

또 근로자 본인이 연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데다 최대 700만원까지 세액공제도 받을 수 있다. 기존에는 퇴직연금제도(DB, DC)에 가입한 근로자만 가입 가능했지만 지난해 7월부터 자영업자, 공무원 등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되면서 하반기부터 적립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은행권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대책 등으로 대출을 통한 기대 수익이 줄어들자 비이자 이익으로 눈을 돌리면서 확대된 측면도 크다는 게 중론이다.

수익률 바닥

덩치는 2조원 가까이 늘은 반면 실속은 신통찮았다. 지난해 원리금 보장과 비보장 상품을 모두 포함한 IRP의 단순 평균 수익률은 1.38%로 전년(1.33%)보다 고작 0.05%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이는 지난해 은행권의 저축성 예금 평균 금리인 1.79%(11월 기준)와 비교했을 때 0.41%포인트나 낮은 수익률이다. 또 지난해 물가상승률 1.9%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분기별로 보면 지난해 4분기 평균 수익률은 전년 동기(1.08%) 대비 0.62%포인트 상승한 1.7%를 기록해 최근 2년(2016년 1분기~2017년 4분기) 중 가장 높았다. 그럼에도 예금금리와 물가상승률보다 수익성이 낮았다.

또 IRP는 한번 가입하면 중도 해지가 쉽지 않다. 세액공제 혜택을 받은 후 IRP를 중도 해지할 경우 ‘세제혜택을 받은 납입금액+운용수익’에 대해 16.5% 세율을 적용한 기타소득세(지방소득세 포함)를 부담해야하기 때문.

IRP를 운용하는 다른 금융업권과 비교해도 처참했다. 증권사의 지난해 4분기 IRP 평균 수익률은 3.49%로 같은 기간 은행(1.7%)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생명보험사(2.7%)와 손해보험사(2%)도 은행보다 0.3~1%포인트 수익률이 높았다.

은행별 지난해 평균 수익률을 보면 신한은행이 1.79%로 가장 높았고 이어 NH농협(1.39%), KEB하나(1.33%), KB국민(1.32%), 우리(1.29%), IBK기업(1.15%) 순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IRP 적립금을 다른 금융업권에 비해 보수적으로 운용한다. 펀드같이 리스크가 많은 곳보다는 정기예금 등 안정적인 분야에서 돈을 굴리기 때문에 그만큼 수익률도 낮은 편”이라며 “IRP는 원리금보장상품과 비보장상품이 같이 있는데 비보장상품의 수익률이 훨씬 높다. 그러나 은행 거래 고객들이 안정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더라도 보장상품을 훨씬 많이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과당 경쟁

은행권은 이처럼 저조한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IRP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으로서는 장기 상품인 IRP가 오랫동안 고객을 비이자 수익원으로 붙잡아 둘 수 있는 탓에 수수료 감면, 이벤트 등으로 고객 확보에 집중하고 있는 것.

실제로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 IRP의 가입대상이 확대되자 IRP 자기부담금 수수료를 기존 0.4%에서 0.29%로 인하했다. 또 IRP 신규 고객에게 편의점 기프트 쿠폰을 제공하는 등 고객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리은행도 같은 해 5월부터 IRP 예약판매를 실시한데다 비대면으로 신규 가입한 고객에게는 운용 수수료 50%를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했다.

은행권의 이같은 과당 경쟁은 불완전판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이 IRP 상품 판매 실적을 은행원의 성과에 반영하거나 판매 할당량을 지정하면서 직원 부담을 늘리는 것. 이로 인해 IRP가 불필요한 고객에게도 가입을 유도하는 등 불완전판매가 성행하는 모습도 나온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제출한 ‘IRP 계좌 개설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IRP계좌 264만3525개 가운데 적립금이 한 푼도 없는 ‘깡통 계좌’는 147만3861개로 55.8%에 달했다. 계좌 10개 중 5개 이상은 개설만 해놓고 사용하지 않은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IRP로 인한 과당경쟁의 폐해는 금융노동자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며 “노동자는 실적 압박 등 추가 노동에 시달리고, 고객은 불완전판매의 피해를 받는다. 은행의 이윤 말고는 그 어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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