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은행의 소리만 요란했던 ‘동전없는 사회’…편의점‧소비자 “그게 뭐죠?”
[단독] 한국은행의 소리만 요란했던 ‘동전없는 사회’…편의점‧소비자 “그게 뭐죠?”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8.03.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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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 실시 첫 날인 지난해 4월 19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소공점에서 동전적립카드로 적립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현진(오른쪽)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이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 실시 첫 날인 지난해 4월19일 서울 중구 세븐일레븐 소공점에서 동전적립카드로 적립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한국은행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이 ‘빈 수레만 요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전없는 사회는 한은이 지난해 4월19일부터 국민의 동전 사용 및 휴대에 따른 불편을 줄이고 제조와 유통·관리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도입한 사업이다.

소비자가 현금으로 물건을 구매한 뒤 거스름돈을 동전으로 받는 대신 교통카드나 각종 포인트 등 선불전자 지급수단에 적립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적립한 잔액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적립 가능한 매장은 롯데·이마트 등 대형마트와 세븐일레븐, 이마트24, CU, GS25 편의점 등 전국 3만6500곳에 달한다.

이에 한은은 사회적 비용 절감과 소비자 편의 증대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시행 1년여가 흐르면서 현장(시범사업 참여 유통업체)과 국민들의 무관심에 사업 도입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다.

26일 본지가 한은으로부터 제출 받은 ‘시범사업 시행 이후 월별 잔돈적립 실적’ 자료에 따르면 일평균 잔돈적립 건수는 △지난해 4월(20~30일) 3만3768건 △5월 3만6002건 △6월 3만5464건 △7월 3만5336건 △8월 3만4234건 △9월 3만4345건 △10월 3만4740건 △11월 3만2488건 △12월 3만1643건 △올해 1월 3만910건 등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감소세가 뚜렷하다.

일평균 잔돈 적립 금액 역시 △지난해 4월(20~30일) 630만원 △5월 622만6000원 △6월 630만1000원 △7월 638만4000원 △8월 583만원 △9월 622만7000원 △10월 637만8000원 △11월 599만3000원 △12월 588만8000원 △올해 1월 536만3000원으로 지난해 4월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자료: 한국은행, 건, 천원)
구분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8.1월
건수(일평균) 33,768 36,002 35,464 35,336 34,234 34,345 34,740 32,488 31,643 30,910
금액(일평균) 6,300 6,226 6,301 6,384 5,830 6,227 6,378 5,993 5,888 5,363

동전없는 사회에 대한 현장 체감 기온은 더욱 냉랭하다.

본지가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에 참여한 서울 관악·서초·영등포·중구 소재 편의점(GS25·CU·이마트24) 13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 동전 적립이 이뤄진 점포는 단 3곳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편의점 직원들은 잔돈을 적립해달라는 요청에 “그런 기능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하거나,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며 “그냥 동전으로 받아 가면 안 되겠느냐”고 난색을 표했다.

적립이 가능했던 매장 3곳도 실제 동전 적립을 요청하는 고객은 처음 본다는 반응. 또 이들 점포 근무자는 점장급 이상의 숙련자이거나 점주였다. 베테랑 직원이 아닌 이상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은 동전 적립을 모를 것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서울 관악구 소재 편의점 점장인 A씨(28·여)는 “지난해 동전 적립 기능이 생겼다는 안내가 본사에서 내려와 숙지해두긴 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은 없다. 오늘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해당 기능을 별도로 교육하거나 하지 않는다”며 “만약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할 때 왔으면 적립을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 대상 중에는 한은 고위 임원이 지난해 4월 시범사업 첫 날 시연에 나섰던 세븐일레븐 소공점(서울 중구 소재)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적립이 불가능했다. 직원의 대답이 걸작이다. “여기는 그런 것 안 해요.”

낙제점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은 현장은 물론 국민적 인지도 역시 낙제점 수준이었다.

본지가 20~50대 성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에 대해 알고 있는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혀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이 72명에 달했다. ‘이름은 들어봤다’는 응답은 27명에 불과했고, 단 1명만이 ‘무슨 사업인지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결국 10명 중 9명은 구체적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픽=한지호 기자
그래픽=한지호 기자

이같은 결과는 결국 사업 주체인 한국은행의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은 시범사업 초기에만 반짝 홍보에 나섰고, 이후에는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은은 홍보 효과가 가장 큰 TV광고 등을 집행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홍보용 포스터 제작·배포나 한은 홈페이지 내에 카드뉴스 등의 관련 콘텐츠를 몇 가지 추가한 것이 전부다.

언론 홍보도 부실했다. 시범사업 시행 후 동전없는 사회와 관련해 배포한 보도자료는 3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2건은 시범사업자 모집 및 확대에 대한 내용이다. 국민에게 해당 사업을 알리는 내용은 전무한 것.

이밖에 한국은행 내 동전없는 사회 사업 관련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점도 지적됐다. 현재 이 사업에 전담 배치된 2명이 관리, 통계 산출, 각종 행정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은 이와 관련, “지난해 7월 기준 매장 당 일평균 잔돈 적립 실적은 약 1.4건, 260원에 불과하다. 국민들에게 사업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해 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최상의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매장마다 적립 수단 및 방식 등이 달라 혼선을 빚는 것도 문제다. 이를 통일하는 등 사업의 효과를 증대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매장 점주나 직원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적극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 관계자는 “적립 실적이 많은 우수 직원이나 매장에는 상품을 증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 사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면서 “선불 전자지급수단 적립 뿐 아니라 계좌에 현금으로 적립해주는 방안 등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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