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리조작’ 은행까지 감싸주는 금융당국의 따뜻한(?) ‘포용적 금융’
[기자수첩] ‘금리조작’ 은행까지 감싸주는 금융당국의 따뜻한(?) ‘포용적 금융’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8.07.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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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들이 대출 이자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융권이 들썩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1일 9개 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SC제일·한국씨티·부산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은행 가운데 KEB하나‧씨티‧경남은행이 고객에게 대출을 취급할 때 부당하게 금리를 책정하거나 인상해온 것으로 적발됐다.

이들 은행은 경기 변동에 따라 달라지는 신용 프리미엄을 수년간 동일한 고정값으로 적용하거나 경기 불황기를 반영해 정하는 등 불합리하게 산정했다.

소득이 있는 고객을 소득이 없거나 적은 것처럼 입력해 높은 이자를 매기기도 했다. 연소득을 낮게 입력해 부채비율을 훨씬 높게 만들어 이자를 받아낸 것이다. 또 고객이 담보를 제공했음에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전산 입력해 가산금리를 높게 부과한 은행도 있었다.

이밖에 금리인하요구권을 신청한 차주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기존 적용되던 우대금리를 줄여 실제로는 금리가 인하되지 않게 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 과정에서 우대금리 적용·변경에 대해 별도로 설명하는 절차도 없었던 것은 덤이다.

은행의 이같은 기만행위에 고객들은 자신의 소득이나 신용등급, 담보보다 높은 이자를 갚아야 했다.

은행은 일반 기업과는 달리, 고객이 믿고 맡긴 재산을 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이다. 때문에 준공공기관급으로 인식되며 보다 높은 도덕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러한 것들을 스스로 갉아먹는 모양새다. 거래 고객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과 다름없는 행태인 탓이다. 최근까지 이어져 온 ‘채용비리 논란’과 더불어 이번 사태로 인해 은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은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태도는 소비자들의 분노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금감원은 조사 결과 발표에서 일부 은행의 대출금리 부당 산정이 있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이런 사례가 전반적으로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체계의 신뢰성을 저하하는 수준으로는 볼 수 없다”다고 선을 그었다. 은행 전체의 문제가 아닌 ‘일부 영업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같은 이유와 내부 규정을 들어 금리조작이 일어난 은행의 실명을 밝히는 것도 거부했다.

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감원 발표 다음날인 지난달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은행 차원에서 한 일이 아니고 개별적 대출 창구에서 일어난 문제라 기관 징계까지 가지 않을 것 같다"며 "고의적으로 조작한 은행 직원에 대해서는 제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규를 위반한 것이라 제재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번 금리조작 사태가 단순 개별 직원의 일탈행위라고 금융수장이 나서서 해명을 해 준 셈이다.

그러나 최 위원장과 금감원의 주장처럼 ‘일부 영업점’ 문제라기에는 규모가 꽤나 크다. 경남은행은 최근 5년간 취급된 가계자금대출 중 약 1만2000건의 이자가 과다 청구됐다. 금액은 최대 25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KEB하나은행은 이에 못 미치지만 252건이 부당 청구돼 1억5800만원을 더 수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씨티은행은 27건, 금액은 1100만원 수준이다.

1~2건이면 몰라도 2만건이 넘는데다 금액 규모도 ‘억’소리가 남에도 불구하고 ‘일부 영업점‧직원’ 문제라는 금융당국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은 최근 ‘포용적 금융’을 표방하고 있다. 서민층에 원활한 금융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게 유도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한다는 가치다. 실제로 금융위와 금감원은 최근 들어 유난히 소비자 보호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자 금융당국은 구제보다 먼저 ‘은행 감싸기’에 열중했다. 금리조작을 일삼은 은행마저 ‘포용’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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