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식품업계, 추억의 맛 ‘재출시’ 바람…“고객이 원해서” vs “빈곤한 연구개발”
[이지 돋보기] 식품업계, 추억의 맛 ‘재출시’ 바람…“고객이 원해서” vs “빈곤한 연구개발”
  • 김보람 기자
  • 승인 2019.03.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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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김보람 기자 = 식품업계가 추억팔이에 나섰다. 과거 인기를 끌었던 상품을 앞다퉈 재출시하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

식품업계의 재출시 바람은 산업 특유의 소비 습관과 홍보 대비 판매 효과 등을 감안한 결과로 풀이된다.

과자와 음료 등은 익숙한 브랜드에 손이 가는 관성구매가 주류다. 제조사별로 출시 10년이 넘은 장수 상품이 판매 상위권을 점유하고 있는 것도 바로 관성구매 효과다.

신제품 출시에 따른 홍보도 적잖은 부담이다. 과거 광고 수단은 TV와 인쇄 매체 등에 국한됐다. ‘일정 비용=00억원’ 판매라는 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유튜브 등 커뮤니케이션 창구가 늘어나면서 광고 대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신제품이 인기라도 끌면 쏟아져 나오는 미투 상품도 문제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연구개발 노력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주요 식품업체의 연구개발 비용은 매출액 대비 1% 미만이다. 노력은 배제하고 추억에 기댄 후진적 마케팅 기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지난 2월 ‘치킨팝’을 재출시했다. 치킨팝은 3년 전 경기도 이천공장 화재로 생산라인이 소실되며 생산이 중단됐다. 치킨팝은 생산 중단 전까지 매월 1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던 효자 상품 중 하나다.

오리온에 따르면 공식 홈페이지와 SNS, 고객센터 등에 20만건이 넘는 치킨팝 재출시 요구가 잇따랐다.

앞서 오리온은 지난해 4월 ‘태양의 맛 썬’을 재출시했다. 이 제품도 이천공장 화재로 생산이 중단됐다. 태양의 맛 썬 역시 매월 2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던 인기 상품이었다.

롯데제과는 지난해 4월 ‘치토스 화이트’를 ‘치토스 콘스프 맛’으로 재탄생 시켰다. 해당 제품은 미국 프리토레이와 오리온 합작회사에서 제조, 판매됐지만 국내 제휴사가 롯데제과로 바뀌면서 단종됐다.

롯데제과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 ‘치토스 콘스프 맛’은 뉴트로 열풍에 발맞춰 포장 디자인도 1990년 출시 당시 복고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어린 시절 수집했던 딱지도 함께 넣어 추억을 배가시켰다.

기존 바베큐 맛, 매콤달콤 맛 등 전체 치토스 브랜드의 연간 매출액은 2017년 약 320억원이었다. 지난해 4월 콘스프 맛을 출시해 3종 체제 돌입 후 지난해 연간 매출액은 약 350억원으로 30억원 증가했다.

삼양식품은 포장 패키지 변화로 재출시 대열에 합류했다. ‘별뽀빠이’는 1972년 첫 출시 후 현재까지 판매 중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3월 ‘별뽀빠이’ 출시 47주년을 기념해 초창기 삼양식품 로고와 서체를 그대로 적용한 ‘레트로 뽀빠이’를 선보였다. 효과도 나쁘지 않다. 리뉴얼 전 매월 4억원 수준이었던 매출이 5억원으로 늘었다.

이밖에 롯데푸드는 2011년 단종된 ‘별난바’를, SPC삼립은 1980년대 출시됐다가 단종된 ‘우카빵’과 ‘떡방아빵’을 최근 재출시했다.

라면 업계도 빠지지 않는다. 농심은 1990년대 단종된 ‘해피라면’을 지난달 재출시했다. 30여년 만이다. 봉지 디자인도 4050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출시 당시 모습 그대로 적용했다.

한국야쿠르트 팔도는 인기 제품인 ‘팔도비빔면’ 출시 35주년을 맞아 ‘괄도네넴띤’을 한정판으로 판매했다. 이 제품은 SNS상에서 유행한 신조어로 일명 ‘야민정음’을 적용한 이름이다. 맛은 기존의 라면과 달리 매운맛을 강조했고, 패키지는 뉴트로 감성에 맞도록 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재출시는 소비자 니즈를 다양한 시선에 충족한다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라며 “출시 제품 모두 스테디셀러가 될 수 없지만 다양한 맛을 제공한다는 서비스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입맛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식품업계가 재출시에 나선 이유도 그렇다. 주요 업체의 상위 브랜드 모두 2000년 이전에 탄생했다.

상위 브랜드별 출시연도를 살펴보면 새우깡 1971년, 죠리퐁 1972년, 오징어땅콩 1976년, 홈런볼 1981년, 빼빼로 1983년, 꼬깔콘 1983년, 쿠크다스 1986년, 마가렛트 1987년, 초코파이 1988년, C콘칩 1988년, 포카칩 1988년, 카스타드 1989년, 하임 1991년, 몽쉘 1991년, 칙촉 1995년 등이다.

2000년대 이후 출시돼 재미를 본 제품은 ▲허니버터칩(2014년) ▲꼬북칩(2017년) 정도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지지부진한 연구개발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지경제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제출된 주요 식품업체의 감사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2017년 기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롯데제과 0.73%(29억3600만원), 해태제과 0.4%(35억3900만원), 삼양식품 0.31%(14억2100만원), 롯데푸드 0.98%(178억7000만원), PSC삼립 0.23%(48억1329만원), 농심 1.1%(249억900만원) 등이다.

지난해 6월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된 오리온의 경우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0.99%(39억3900만원)로 2017년 6월부터 12월31일까지, 7개월간의 수치다.

학계 등에 따르면 식품업계의 신제품 출시 고민은 유통채널 다변화, 비용 부담 등의 영향이라는 진단이다.

먼저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신제품 기획에 따른 인력과 프로세서, 생산라인 구축 등을 위해서는 잘 팔리고 있는 제품의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공장에 대한 인센티브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편의점·대형마트 등 유통채널이 다양해지면서 판매촉진비도 만만치 않다. 홍보도 쉽지 않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유튜브, SNS 등 제품을 접하는 광고 매체가 다양해져 과거 TV 광고를 활용한 도달률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심혈을 기울여 신제품이 출시됐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미투 제품’이다. 미투는 제과업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계에서도 관행처럼 이어져 오고 있다.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신제품을 출시해도 한 달 안에 비슷한 제품이 쏟아진다.

원조 제품의 유명세로 이미 형성된 수요층을 흡수해 원조 제품보다 판매량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품귀현상까지 불러일으킨 허니버터칩이 경우 ‘허니’가 표기된 관련 미투 제품은 40여개에 달한다. 그것도 현재는 시들해졌다. 오리온의 경우 롯데 쵸코파이에 대한 상표등록 취소 소송을 벌였다가 패소하기도 했다.

김상철 유한대학교 경영학과 유통물류 전공 교수는 “식품은 소비자 변화와 주기 변화가 드문, 익숙한 브랜드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관성구매의 주된 시장”이라며 “기업이 내·외적인 부담과 변화된 유통 산업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신제품을 개발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고 피력했다.


김보람 기자 qhfka718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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