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Car] 스쿠프부터 제네시스쿠페까지 한국형 스포츠카 29년사…진화 그리고 뚜렷한 한계
[이지 Car] 스쿠프부터 제네시스쿠페까지 한국형 스포츠카 29년사…진화 그리고 뚜렷한 한계
  • 정재훈 기자
  • 승인 2019.03.25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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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대차, 쌍용차
사진=현대차, 쌍용차

[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오렌지족의 상징이었던 스쿠프부터 제네시스쿠페까지. 한국형 스포츠카(쿠페)는 29년의 시간 동안 꾸준히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뚜렷한 한계에 부딪혔다.

스포츠카는 남자들의 로망이다. 멋 좀 내고 싶어 하는 일부는 방구석에서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더라도 스포츠카 오너 대열에 기어이 합류하고야 만다.

부가티와 페라리, 포르쉐, 벤츠 AMG GT까지. 수입 스포츠카는 대당 수억원을 호가한다. 한정 모델은 수십억원 이상이다.

한국형 스포츠카는 현실적 대안이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수입차에 준할 정도로 올라섰다.

여담이지만 기자는 약 5년 전 제네시스쿠페를 몰았고 그 성능에 만족감을 느꼈다. 심지어 기자와 결혼은 앞두고 있는 예비신부는 한동안 제네시스쿠페가 외제차인 줄 알았다고. 그만큼 디자인과 성능까지 세계적인 수준에 근접했다.

다만 아직은 세계 정상과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로 승부하지 않으면 독일 3사를 비롯한 세계적인 스포츠카의 벽은 여전히 높다. 솔직히 현실이다.

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계보

한국형 스포츠카의 첫 테이프는 1991년 태어난 현대차 스쿠프가 끊었다. 경제 성장이 절정으로 치닫던 1990년대 당시 젊은이들은 남들과는 다른 새로운 멋을 찾았고 때마침 스쿠프가 그들의 욕구를 삼켰다.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당시 스쿠프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출시 가격은 695만원. 같은 해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31평이 2억원 수준에서 현재 17억원 정도로 뛰었으니 현재 시세로 치면 5000만원 수준의 최고급 쿠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성능은 뛰어나지 않았다.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이 10.5초, 최고속도 170㎞/h였고 최대출력 84마력, 최대토크는 12.2㎏.m에 그쳤다. 스포츠카라고 불리기엔 민망한 실력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세련된 디자인까지 갖춰 큰 사랑을 받았다. 더욱이 PC통신 문화의 시작과 함께 동호회가 생기기도 했다.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스포츠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바통은 기아차의 엘란이 이어받았다. 세기말 1999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엘란은 2인승 오픈형 스포츠카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 내놓아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외모를 자랑한다.

성능은 스쿠프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최고 속도 220㎞/h와 최대출력 151마력, 최대토크 19.0㎏.m으로 스포츠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몇 안 되는 국산 컨버터블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가끔 길에서 우연히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질긴 생명력도 자랑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1997년 말 터진 IMF만 아니었으면 엘란은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바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뜩 든다.

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21세기로 넘어간 2001년 현대차의 티뷰론 터뷸런스가 등장하며 스포츠카의 계보를 이어갔다. 1996년 티뷰론을 시작으로 주가를 높이던 현대차가 티뷰론 터뷸런스를 출시하며 정점을 찍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과하지 않으면서 신세대 감각을 뽐낼 수 있는 티뷰론 터뷸런스에 매료됐다.

성능은 엘란과 비슷한 수준. 대중적인 이미지와 출중한 달리기 능력, 거기에 가격도 엘란의 절반 수준이었다. 대중적인 사랑이 당연한 이유다.

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이렇게 인기가 많던 티뷰론 터뷸런스를 시장에서 퇴출시킨 장본인은 현대차가 야심차게 내놓은 투스카니다. 투스카니는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앞세워 2000년대 중반 스포츠카 시장을 점령했다.

성능의 발전은 비교적 더뎠지만 당시에는 파격적인 컬러옷을 입혔고 한층 세련되고 날카로운 외모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막을 강타하는 강렬한 배기음으로 국산 스포츠카의 존재감을 내뿜었다.

무엇보다 경제 성장 대비 가격이 크게 뛰지 않아 ‘금수저’가 아닌 2030 젊은이들도 투스카니의 오너가 되곤 했다. 당시 뚜벅이 대학생이던 기자의 친구 2명이나 투스카니를 몰았을 정도.

사진=현대차
사진=현대차

약 20년 가까이 디자인의 진화에 머물던 한국형 스포츠카는 2008년 현대차의 제네시스쿠페가 나오면서 디지인과 성능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드디어 독일을 비롯한 세계 정점에 있는 스포츠카와 견줄 수 있게 된 것.

강인하면서도 날렵한 외모는 웬만한 수입차보다 근사했고 이전 대비 크게 좋아진 성능으로 운전자에게 만족감을 선사했다. 특히 국내 최초의 후륜구동 스포츠카라는 기록을 썼다.

투스카니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발전. 제네시스쿠페는 3.8버전 기준 최대출력이 무려 303마력을 자랑했고 최대토크도 36.8㎏.m이나 됐다. 밟으면 나간다라는 말이 잘 어울릴 정도. 독일 3사의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제네시스쿠페의 매력에 빠진 기자도 돼지저금통까지 털어 제네시스쿠페 오너 대열에 합류했다. 덕분에 배는 좀 고팠지만 세련된 도시의 남자가 된 기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이후 제네시스쿠페는 몇 차례의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현재는 단종됐다.

제네시스쿠페를 끝으로 국산 스포츠카의 계보가 사실상 끊긴 상황. 최근 기아차의 스팅어와 제네시스 G70이 국산 스포츠카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스포츠카의 개념보다는 스포츠세단에 가깝다. 오는 2020년경에 출시되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쿠페차량도 스포츠세단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패

자동차등록증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세상에서 사라진 스포츠카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쌍용차의 칼리스타와 한국지엠의 G2X 그리고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떨어졌다는 공통적인 이유에서다.

사진=쌍용차
사진=쌍용차

칼리스타는 1990년대 초반 드라마 야인시대로 시간여행을 한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고전적인 느낌의 스포츠카로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스쿠프와 경쟁도 해보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춰야만 했다. 당시 최고급 플래그십 세단이었던 기아 엔터프라이즈(3000만원 이상)와 비슷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몸값에 소비자들이 등을 돌린 것.

사진=한국지엠
사진=한국지엠

G2X도 높은 가격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2008년 나온 G2X는 2인승 스포츠오픈카로 큰 주목을 받았다. 깔끔하고 도시적인 디자인은 인정받았으나 500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가격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제네시스쿠페와의 경쟁력에서 밀려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졌다.

단순 스포츠카를 넘어 슈퍼카 도전에 나섰던 어울림모터스의 스피라는 큰 실패로 끝났다. 최상위 등급 스피라EX는 제로백 3.5초, 최고 315㎞/h의 슈퍼 성능을 자랑했지만 속된 말로 같은 가격이면 독일이나 이탈리아 슈퍼카를 사겠다는 수요층이 대부분이었다. 2억원 가까이 주고 검증되지 않는 슈퍼카를 사기에는 부담이 됐을 것이란 개인적인 판단이다.

이렇듯 국산 스포츠카는 점진적으로 발전을 이뤘지만 여전히 정상 문턱은 버겁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비싼 돈을 주고 살 정도로 신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한계를 깨부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게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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