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건설사·노조, 포괄임금제 폐지 ‘동상이몽’…“탁상행정” vs “악습 철폐”
[이지 돋보기] 건설사·노조, 포괄임금제 폐지 ‘동상이몽’…“탁상행정” vs “악습 철폐”
  • 정재훈 기자
  • 승인 2019.06.18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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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뉴시스
사진=픽사베이, 뉴시스

[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건설사와 노조가 이르면 이달 중 정부가 발표할 포괄임금제 폐지를 앞두고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건설업계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건설노조는 근로시간이 일정치 않아 각종 수당 등이 포괄 적용됐던 관행을 이번 기회에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건설업계 등의 혼란은 정부가 부추긴 셈이라는 불만의 소리도 높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7년 10월 포괄임금제 지도 지침 발표를 예고한 후 노사 의견을 수렴한 초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약 1년 8개월 동안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했다.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18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올 상반기 중 포괄임금제 폐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기업과 근로자 간의 분쟁이 계속 발생하자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후 현재 진행 중이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연장·야간 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임금 제도를 뜻한다. 건설업계가 대표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적용한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2017년 10월 포괄임금제 지도지침 발표를 예고하고 노사 의견을 수렴한 초안을 마련했다. ‘포괄임금제 사업장 지도지침’에 임금과 근로시간은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핵심적 제도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반드시 준수돼야 한다고 작성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으면 명시적 합의가 있어도 무효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특히 ▲계산상 편의나 직원의 근무의욕 고취 목적으로 활용하는 경우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당연히 예상되는 경우 ▲일반 사무직에 대해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등이 해당된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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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

위메프와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 등 유통 및 게임업체들은 지난해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한라와 삼부토건이 합세했다.

다만 대부분의 건설사는 신중한 모양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포괄임금제 폐지가 올바른 방향일 수 있지만 시기상조라는 것. 건설업계 특성을 감안하지 않으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포괄임금이 폐지된 후 각기 계산돼야 할 수당(연장·야간·휴일) 산정 기준인 통상임금이 건설사마다 복잡해서 직원들의 임금 삭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건설 노동자는 사무직과 현장직으로 나뉘고 현장직의 경우에는 국내와 해외로 구분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의 경우, 셈법이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 현장은 적정 공기 내에서 계획을 세우고 공정에 들어가는데 한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면 현장이 멈출 수 있다. 때문에 야근을 피할 수 없고 이를 미리 예상할 수가 없다.

해외 현장은 더욱 난감해진다. 국가마다 휴일도 다르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이 천차만별인 경우도 있다. 또한 중동, 아프리카 등은 날씨 문제로 인해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공사를 진행하기가 어려워 작업이 늘어질 변수가 많아 근로시간 산정이 쉽지 않다는 것.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사무직이면 몰라도 건설 현장은 경우의 수가 다양해 포괄임금제가 폐지되면 난감해질 것”이라며 “예컨대 콘크리트 공사의 경우 레미콘이 교통지체 등으로 늦게 오면 모든 작업이 미뤄지고 야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해외 현장은 더 복잡하고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산업에서는 포괄임금제 폐지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지만 건설사는 예외라고 볼 수 있다”며 “회사 차원에서 이와 관련 대책 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노조는 강경하다. 건설사가 근무시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일한 만큼의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대법원은 2016년 건설노동자의 근로시간 산정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포괄임금제를 적용해선 안 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김승환 민주노총 수도권남부지역본부 사무국장은 “현재 임금제도는 일을 더해도, 덜 해도 정해진 만큼 돈을 받게 되는 것인데 이건 불합리하다”며 “건설사는 포괄임금제를 없애면 추가적으로 돈이 더 나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돈을 더 받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일을 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정확한 금액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혼란

노사의 팽팽한 줄다리기 형국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더 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안 마련 이후 1년 8개월 동안 이렇다 할 진척이 없어서다.

고용부는 지난해 6월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를 예정했으나 이를 연기했고 8월에 한 차례 더 미뤘다. 12월에는 관련 연구용역이 마무리단계라고 밝혔고 올 상반기 내 발표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에 혼란만 가중되는 형국이다.

김 사무국장은 “정부는 말로만 방침을 정할 뿐 전혀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다”며 “정부가 지지부진하니 노조가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라며 “수년 전부터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하루빨리 이 부분이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한편 정부는 포괄임금제 폐지와 관련, 산업의 전반적인 입장을 고려하기 위해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고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건설사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적인 입장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며 “노조측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은 오랫동안 포괄임금제 폐지를 요구했기 때문에 기업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정책 도입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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