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Car-그 때 그 시절] 격동의 70년대 ‘포니’부터 90년대 주름잡은 ‘다이너스티’까지
[이지 Car-그 때 그 시절] 격동의 70년대 ‘포니’부터 90년대 주름잡은 ‘다이너스티’까지
  • 정재훈 기자
  • 승인 2019.07.0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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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HMG저널
포니, 포니2픽업, 브리사. 사진=HMG저널

[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국내 자동차 산업은 60여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세계 5대 자동차 생산 국가로 위상을 높였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역사는 끊겼지만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자동차들이 있다.

승용차의 시초 포니와 영화 택시운전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브리사. 1990년대를 대표한 대형 세단 다이너스티, 엔터프라이즈 등은 한때 도로를 누비던 아버지, 삼촌들의 애마였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자동차들이 전 세계적인 레트로 열풍을 타고 되살아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는 전기차로 부활할 예정이다. 또 대표적 중형 세단인 스텔라 타고 세계일주를 준비하는 도전자도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를 대표한 차를 시대별로 살펴봤다.

70년대

국내 승용차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포니는 격동의 1970년대를 상징하는 차다. 당시 포니는 현대차 최초의 독자 모델로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으로 내수 시장을 장악했다. 특히 ‘자가용’의 개념은 포니와 함께 성립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에는 웨건, 해치백 모델 등이 출시되기도 했다. 국내 생산 첫 수출차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포니는 국가 정상 간 회담에도 깜짝 등장했다.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의 경제 개발은 자동차 ‘포니’를 생산하면서 시작됐다"고 말해 눈길을 끈 것.

한국 경제의 상징적 존재가 조만간 우리 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오는 2021년 포니 전기차 탄생이 예고됐다.

포니의 라이벌은 기아차의 브리사였다. 포니가 리오넬 메시라면 브리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특히 브리사는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타는 차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촌스러운 느낌이 강하지만 당시에는 최고급 자동차로 부유층이 주로 타는 차였다.

브리사는 포니보다 1년 먼저 시장에 나왔지만 이내 경쟁에서 밀려 점점 하락세를 탔고 결국 먼저 사라졌다. 특히 1981년 전두환 정부가 자동차 시장의 경쟁 체제를 억지로 개편하면서 생산이 중단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택시운전사’에서 봤듯(조금 과장해서)대한민국 민주화 역사를 바꾼 자동차다.

사진=HMG저널
포니엑셀. 사진=HMG저널

80년대

스텔라. 걸그룹 이름으로 친숙하지만 과거에는 자동차 이름으로 유명했다. 1983년 등장한 스텔라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국산 중형 세단. 포니의 뒤를 잇는 명차였다. 클래식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고 쏘나타 출시 전까지 최고의 인기 모델로 활약했다.

특히 포니, 브리사보다 넓은 실내공간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밀려드는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사실상 쏘나타와 아반떼가 존재할 수 있게 했던 시금석과 같은 차다. 최근에는 1989년식 스텔라를 타고 세계일주를 계획하는 도전자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엑셀을 빼놓고 80년대 명차를 논하기는 어렵다. 1985년 포니엑셀로 시작해 1989년까지 약 5년 동안 짧고 굵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1989년 선보인 엑셀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디자인과 성능으로 명성을 날렸다. 출시와 동시에 베스트셀링카로 등극했고 1994년까지 수출을 포함해 총 144만대가 판매됐다. 엘란트라, 스쿠프 등과 패밀리룩의 시초가 됐다는 평가다.

콩코드도 80년대 인기차 대열에 합류했다. 봉고와 프라이드의 성장을 이어가기 위한 기아차의 야심작. 후륜구동과 전자제어식 연료분사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특히 전문직 등 고소득 종사자들의 세단으로 사랑을 받았다. 다만 쏘나타와 대우의 로얄 시리즈보다 작다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한 것이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80년대 최고급 세단은 대우의 로얄살롱으로 통일됐다. 특히 로얄살롱은 관용차로 지정되는 등 ‘장관이 타는 차’라는 고급차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당시 기자 아버지 친구도 이 차를 탔는데 어린 나이였음에도 상당히 부러웠다.

콩코드, 엘란트라. 사진=HMG저널
콩코드, 엘란트라. 사진=HMG저널

90년대

준중형이라는 단어의 주인공 엘란트라는 점차 어려지는 첫차 구매 고객들의 입문차로 사랑받았다. 특히 포르쉐 911과 주행 경쟁을 하는 광고로도 유명했다. 광고에서 포르쉐 911 운전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던 모습이 인상적이다. 당시에는 포르쉐 911 운전자가 “나 1단으로 달리고 있다”라는 의미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에스페로 역시 90년대를 대표하는 자동차다. 쏘나타(Y2)의 대항마로 나선 대우차의 첫 독자 모델로서 큰 의미가 있었다. 파격적인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마니아층의 사랑을 받았다.

다만 차체가 경쟁차인 쏘나타보다 작아 중형차로서의 입지가 애매해졌고 너무 급진적인 디자인이 역효과를 거두는 등 정점을 찍지 못하고 내리막에 들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에스페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준)중형차로 군림했다.

90년대부터는 본격적인 대형 세단 경쟁이 치열해진다. 80년대만 해도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했지만 90년대로 넘어가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변했기 때문.

엔터프라이즈, 다이너스티. 사진=HMG저널
엔터프라이즈, 다이너스티. 사진=HMG저널

가장 대표적으로 사랑받은 자동차는 현대차의 1996년생 다이너스티다. 출시 당시 국내에서 개발된 차량 중 가장 큰 3500cc급 최고가 모델로 등장해 고급미를 물씬 풍겼다. 고소득 연봉자, 사장, 임원 등의 의전용 차량이라는 확실한 콘셉트가 시장에 제대로 먹혔다.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끌어 소비자들의 독촉 전화로 인해 애를 먹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특히 최고급 세단답게 승차감을 비롯해 주행성능, 당시 최고사양의 안전성까지 갖춰 오랫동안 고급 세단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기름은 많이 먹지만 꿀리지 않는(?) 디자인으로 종종 볼 수 있었다.

다이너스티와 왕좌를 대결했던 차는 기아차의 엔터프라이즈. 다이너스티보다 1년 늦은 1997년 출시된 엔터프라이즈는 기아차가 포텐샤를 넘어설 모델로 내놓은 작품이었다.

또한 쌍용차의 체어맨도 빼놓을 수 없는 역작. 스포츠유틸리티차량의 강자 쌍용차가 메르세데스-벤츠와의 제휴를 통해 벤츠 E클래스를 연상시키는 듯 한 고급스러운 외모의 체어맨을 내놓았고 고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무쏘, 레간자, 티코, 스쿠프, 엘란, 포텐샤 등도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스텔라. 사진=HMG저널
스텔라. 사진=HMG저널

택시

택시를 보면 그 시대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을 알 수 있다. 성능은 물론 연비, 오랫동안 운전하는 운전자, 탑승객을 위한 넓은 공간 등이 모두 뒷받침 돼야하기 때문이다.

70년대에는 포니와 브리사가 택시 운행을 도맡았다. 당시에는 중형, 대형 등 차종이 다양하지 않았다.

이후 스텔라가 국민 차량으로 불리면서 수많은 승객의 발이 됐다. 특히 1986 아시안게임,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택시의 중형화 정책으로 인해 큰 비중을 차지했다.

1990년대에는 에스페로와 프린스 등이 쏘나타(Y2)와 함께 택시계를 평정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년대 후반에는 모범택시가 등장하면서 다이너스티 등 고급 세단도 업계에 뛰어들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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