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창조’부터 ‘포용적’ 금융까지 정부 주도형 은행 상품, 집권 초 ‘반짝’하다 실적 곤두박질
[이지 돋보기] ‘창조’부터 ‘포용적’ 금융까지 정부 주도형 은행 상품, 집권 초 ‘반짝’하다 실적 곤두박질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9.10.1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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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권이 문재인 정부의 ‘생산적·포용적’ 금융 정책에 딴청을 피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정치색이라는 표현을 쓴다. 은행권은 그동안 새 정부 출범에 맞춘 금융 정책·상품들을 내놨다가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 양상을 보여 왔다.

문 정부 들어서도 ‘동산담보대출’과 ‘중금리대출’의 활성화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들자 시들해진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자율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6개(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주요 은행의 올 상반기 말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5009억2800만원으로 전년 동기(1365억7100만원) 대비 266.8%(3643억5700만원) 급증했다. 강한 추진력으로 1년 새 2.5배 넘게 늘어났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전략’을 발표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 결과다. 인프라와 법‧제도 개선을 통해 동산가치평가의 정확성, 활용도를 높이고 사물인터넷(IoT)과 빅데이터 등 신기술을 활용해 은행의 담보관리 부담을 완화한 새로운 동산금융을 내놓은 것.

은행권도 이에 호응해 관련 상품을 앞 다퉈 내놨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부터 KB국민과 신한 등 주요 은행이 적극 동참하며 동산금융 활성화를 천명하고 나섰다.

하지만 동산금융 실적을 자세히 뜯어보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늘어난 동산담보대출 잔액은 대부분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끌어올린 모양새인 탓이다.

실제로 상반기 동산담보대출 잔액 5009억2800만원 가운데 IBK기업은행(3538억3300만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0.6%에 달한다. 반면 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의 비중은 29.4%(1470억9500만원)에 불과하다.

이는 1년 전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지난해 상반기 동산담보대출 비중을 살펴보면 전체 잔액 1365억7100만원 가운데 시중은행이 710억9000만원(52.1%)으로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당시 기업은행 비중은 47.9%(654억8100만원)이었다.

역전 현상은 기업은행 홀로 고군분투한 까닭이다. 기업은행은 동산담보대출 잔액을 1365억7100만원에서 3538억3300만원으로 1년 만에 무려 440.4%(2883억5200만원)나 키웠다.

반면 시중은행들은 100억~300억원 수준으로 늘리는데 머물렀다. 우리은행처럼 되레 대출 규모가 줄어든 사례도 있다. 결국 구색만 맞추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은행장들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동산금융 활성화 1주년 계기, 은행권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과 김태영 전국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은행장들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 중회의실에서 열린 동산금융 활성화 1주년 계기, 은행권 간담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금리

정부와 금융당국이 ‘포용적 금융’ 일환으로 추진한 중금리 대출 활성화 역시 반짝 하다가 시들어진 경우다. 중금리 대출은 연 5% 이하 저금리와 20% 이상 고금리 대출 사이에 있는 중간 금리 대출 상품이다. 보통 연 6~10%대의 금리 수준을 보인다. 지금까지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주로 취급했다.

그러나 금융위가 지난해 1월 중금리 대출 활성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은행권도 비대면 채널을 통해 중금리 대출 상품을 적극 취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은행권의 신용대출에서 중금리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주요 은행의 올해 8월 기준 연 6~10% 미만 금리 신용대출 취급비중은 모두 연초에 비해 큰 폭으로 내려갔다.

은행별로 보면 KEB하나은행의 경우 올해 1월 중금리 대출 비중이 24.2%였으나 8월 12%로 반 토막 났다. KB국민은행 역시 11.9%에서 6.5%로 절반 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신한은행 8.3%→5.7% ▲우리은행 12.2%→8.2% ▲NH농협은행 2.5%→0.6% 등 모든 은행에서 중금리 대출 비중이 낮아졌다.

이같은 현상은 정권마다 되풀이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출범과 함께 ‘녹색금융’, ‘창조금융’ 등의 금융 정책방향을 제시하자 이에 발맞춰 관련 상품을 대거 출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현재 판매 중인 상품은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문 정부의 생산적‧포용적 금융 역시 정권 말기나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축소‧폐기 될 가능성이 있다. 역설적으로 은행권은 그동안 동산담보와 중금리 대출의 경우 리스크 등의 이유로 꺼려왔던 상품이다.

이에 은행권은 금융 여건과 역할 차이에 따른 현상일 뿐, 추진 동력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동산금융은 기업 대상 상품이라 국책은행인데다가 애당초 기업금융을 전문적으로 해 왔단 기업은행이 규모가 큰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시중은행들도 정책 활성화 이후에는 기존 잔액보다 2~3배 가까이 늘리는 등 적극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금융 정책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급한 마음에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하려고 하면 시장 기능이 망가질 수 있다”며 “정부는 방향 제시와 시장 실패 영역에 마중물 역할만 수행하고, 시장의 자율기능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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