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아파트 BI(상호), 한글 실종사건…세종대왕이 묻습니다 “이대로 좋은가요?”
[이지 돋보기] 아파트 BI(상호), 한글 실종사건…세종대왕이 묻습니다 “이대로 좋은가요?”
  • 정재훈 기자
  • 승인 2020.01.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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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포스코건설, 한화건설
사진=포스코건설, 한화건설

[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한글. 전 세계 6000여 언어 중 13번째로 많이 쓰인다. 방탄소년단과 싸이를 필두로 한류 열풍이 거세지면서 세계 각국은 지금 한글 공부 삼매경이다.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글. 딱 여기까지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거리 곳곳이 영어 등 각종 외국어 천지다. 의류와 식음료, 가전 등 각종 상표에서도 한글 찾기가 만만치 않다. 세종대왕이 울컥할 상황이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아파트 BI(상호)에서 한글이 사라졌다. 건설사들은 아파트의 품질과 고급감을 표현하기 위해 영어 등 외국어를 포함한 합성어를 선호한다. 아파트 외벽과 단지 문주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대. 영어 등 외국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이 외면 받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이지경제가 50대(2019년 시공능력평가기준) 건설사 중 주택사업을 벌이고 있는 45개사의 아파트 BI(상호)를 조사한 결과, ▲한글은 3개사에 불과했다. 이밖에 ▲한글‧영어 혼합은 12개사. 반면 ▲영어 등 외국어는 30개사(한글, 외국어 상호로 나뉜 16개사 포함)다.

조사 대상 건설사 아파트 상호 중 한글로 표기가 된 곳은 알파벳 e와 합성어인 e편한세상(대림산업) 등을 제외하면 같은 BI를 사용 중인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이상 힐스테이트), 부영(사랑으로) 등 3곳에 그친다. 현대건설의 경우 지난해 3월 영문(Hillstate)에서 아예 한글(힐스테이트)로 바꿨다. 현대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시인성을 더 높이기 위해서다.

주요 건설사가 최근 들어 아파트 이름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가독성을 높이고, 핵심 주거시설이라는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다만 개선 작업에서도 한글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 13일 아파트 브랜드 ‘더샵’ 로고를 11년 만에 리뉴얼 했다. 기존 더샵 영어 대문자와 소문자를 혼용했던 로고(The Sharp)는 모두 대문자(THE SHARP)로 변경해 가독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번에도 한글은 병기되지 않았다.

한화건설은 지난해 8월 꿈에그린에서 포레나(FORENA)로 브랜드명을 교체했다. 포레나는 스웨덴어로 ‘연결’을 의미한다. 사람과 공간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한글 상호에서 외국어로 변신을 꾀했다.

이밖에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롯데건설의 롯데캐슬, SK건설의 SK뷰, 호반건설의 호반써밋, 베르디움, 태영건설의 데시앙 등 대부분의 아파트 상호에 한글 표기가 없다.

GS건설의 자이(Xi)와 삼성물산의 래미안(來美安) 등은 한글 표기를 병행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프리미엄 단지 등을 비롯해 한글 표기를 꺼리는 추세다.

건설업계가 한글을 꺼리는 것은 간결함과 소비자들의 거부감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익명을 원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BI는 간결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데 한글과 병기하게 된다면 복잡해질 수 있다“면서 ”한글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깔끔함을 추구하는 세계적 디자인 추세도 영향을 준 것 같다. 또 소비자들의 거부감도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정재훈 기자, 현대건설
사진=정재훈 기자, 현대건설

외면

아파트 외벽이나 단지 문주에서도 한글 표기는 보기 어렵다. 아파트 외벽이나 문주만 보면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 서울숲 푸르지오 외관에는 영문명 서울숲 ‘PRUGIO’만 있고 서울숲 ‘푸르지오’는 표기되지 않았다. 이밖에 아이파크(IPARK)나 SK뷰(VIEW) 등 대부분의 아파트 외벽과 문주에도 한글 로고가 따로 없다. 해당 BI들의 경우 과거부터 명시되지 않았다. 보통 BI를 외벽이나 문주에 그대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과거 BI와 마찬가지로 건물 외벽에 ‘來美安’과 ‘래미안’을 병행했으나 최근 한글 표기가 빠졌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래미안 첼리투스가 대표적이다. 경기도 의정부의 호반 베르디움 아파트 출입구에도 BERTIUM이라는 영문명만 자리하고 있다.

GS건설이 그나마 한글 표기를 병행 해왔다. GS건설 반포자이아파트 외벽에 Xi와 자이가 나란히 써 있다. 2017년 내놓은 보문파크뷰자이와 곧 준공될 신촌그랑자이 문주 등에 역시 한글명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GS건설도 최근 들어 한글 표기를 빼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더욱이 힐스테이트를 한글 표기했던 현대건설은 자사 프리미엄 브랜드 개포 디에이치아너힐스 등을 영문으로만 표기하고 있다. 디에이치 광고에서도 한글 없이 ‘THE H’만 나온다.

최근에 건설사들이 내놓은 조감도를 잘 살펴봐도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당진 아이파크 외벽에는 줄곧 해왔던 대로 HDC IPARK로만 표기됐다. 한남하이츠 수주전에서 맞붙은 현대건설(한남 디에이치 그라비체)과 GS건설(한남자이 더 리버)도 한글을 뺀 채 영문명만 내놨다. 상당수의 다른 아파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GS건설, 현대건설
사진=GS건설, 현대건설

학계 등 전문가 집단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큰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익명을 원한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한글은 전 세계에서 (소수 민족 포함) 6000여 언어 중 13번째로 많이 쓰는 언어이며 최근 들어 싸이, 방탄소년단, 한국 드라마를 통해 접근성이 좋아졌고 동남아, 중앙아를 비롯해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한글이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이제라도 아파트 브랜드 로고와 함께 외벽과 문주에 한글이 표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인이나 어린이 등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파트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푸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아파트는 에듀포레, 센트럴 등 펫네임까지 붙어 이런 심각성이 더 크게 대두되고 있다.

더욱이 행정 업무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어 표기법만 사용하다 보면 한글로 옮기는 방식이 제각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영어만으로 된 아파트 이름으로 인해 시부모님을 못 오게 했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한글이 병기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공부상에서 상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예를 들어 THE SHARP의 경우 ‘더샵’인지 ‘더샾’인지, 혹은 아이파크로 쓸 것인지 IPARK로 쓸 것인지 등의 헷갈리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BI나 외벽에 한글을 같이 써서 정해준다면 이런 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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