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200조’ 기술금융, 덩치 커졌지만 정부 주도 한계…전문가 “민간 주도 생태계 조성해야”
[이지 돋보기] ‘200조’ 기술금융, 덩치 커졌지만 정부 주도 한계…전문가 “민간 주도 생태계 조성해야”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0.02.2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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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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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는 ‘기술금융’의 규모가 5년 만에 2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양적 성장은 충분히 이뤄냈다는 평가다. 다만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에 따른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국책은행이 실적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데다가, 민간은행의 참여를 독려하고자 실적을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주기적으로 공개하는 등 정부 주도적인 성격이 강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기술금융이 더욱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민간 주도의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고, 기술금융 지원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1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누적) 기준 국내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 잔액은 205조4834억원이다. 관련 자료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4년 7월 잔액 2000억원과 비교하면 5년 만에 100배가 넘는 수치다.

전년 동기(163조7688억원)와 비교하면 25.5%(41조7146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출건수 역시 37만9560건에서 48만9084건으로 28.9%(10만9524건) 늘었다.

기술금융은 우수한 기술은 갖고 있지만 자본이 부족해 성장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등에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일반적인 기업대출과는 달리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에 대한 평가 비중이 높다. 여기에 우대금리 제공과 대출한도를 높여줌으로써 원활한 자금조달을 돕는다. 때문에 창업·초기 기업이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같은 특성을 바탕으로 기술금융의 실적은 매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7년 3월 처음으로 잔액이 100조원을 돌파한 뒤 지난해 10월 200조원에 도달하기까지 2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록 이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금융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오면서도 ‘생산적 금융’ 기조와 맞아떨어지면서 성장이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은행별 기술금융대출 잔액을 보면 지난해말 기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이 63조2851억원으로 압도적 선두다. 이어 KB국민은행(30조4581억원), 우리은행(26조7118억원), 신한은행(26조2461억원), 하나은행(24조3098억원) 등의 순이다.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기술금융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6년 15%에서 2017년 19%, 2018년 24%, 지난해 26% 등 점차 상승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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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

문제는 기술금융의 성장이 민간 은행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주기적인 실적 공개와 더불어 평가를 통해 순위 및 등급을 매기고 인센티브나 불이익을 주는 등 적극 개입하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매년 상‧하반기 기술금융 평가를 실시해 대형은행과 소형은행 등 은행그룹별로 나눠 순위를 나누고 있다.

우수 성적을 받은 은행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 출연하는 금액을 감액 받는 인센티브를 얻는다. 반대로 하위 3개 은행은 가산된 출연금을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모든 은행은 은행연합회를 통해 매달 대출 잔액과 건수 등의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

즉,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은행 줄 세우기를 실시함으로써 경쟁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에서는 금융당국의 눈치 탓에 실적 압박을 받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평가 방식과 경쟁 구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실제로 부분적인 개선이 매번 이뤄진다”면서도 “실적 공개나 평가 순위 매기기는 계속돼 다른 점이 체감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또 기술금융이 대출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기술금융 대상 기업은 기술력에 따라 T1에서 T10까지 10단계 등급으로 나뉜다. T1∼T2는 최상위 기술력 기업, T3∼T4는 상위 기술력 기업, T5∼T6은 기술력 보통 기업으로 구분된다. 기술금융 대출은 자금공급이라는 정책 목적으로 인해 보통 T3 등급 이하 기업에 많이 제공된다.

최상위 기술력기업인 T1~T2 등급에 비해 T3 이하 기업은 재무적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들 기업이 부실해지면 자금을 대출한 은행은 건전성에 타격을 입게 된다.

때문에 대출 중심의 성장은 지속성·효율성 측면에서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민간 주도의 생태계로 전환해 투자 중심으로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로 지원 방식을 바꾸게 되면 은행권은 우수 기업을 찾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기술 심사 인력을 투입하고, 우수기술 선별 역량을 강화하는 등 질적인 개선을 이뤄야 한다. 이는 기술금융의 장기적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재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술금융 지원 목적은 우수 기술 보유 기업에 자금이 공급되고 국제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지속적으로 출현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기술금융이 정부 주도의 양적 지원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향후에는 금융회사 등 민간 주도 기술금융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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