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금수저 아니어도 ‘청포자’는 안 돼…부모들 미성년 자녀 ‘청약통장’ 만들기 올인
[이지 돋보기] 금수저 아니어도 ‘청포자’는 안 돼…부모들 미성년 자녀 ‘청약통장’ 만들기 올인
  • 정재훈 기자
  • 승인 2020.06.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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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뉴시스
사진=픽사베이, 뉴시스

[이지경제] 정재훈 기자 = 부모들이 자녀의 내 집 마련을 돕기 위해 청약통장 개설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치솟은 집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게 이유다. 이에 청약을 통해 아파트 분양을 받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청약가점 커트라인이 높아지면서 30~40대 사이에서 ‘청포자(청약 포기자를 일컫는 말)’가 늘어나고 있다. 자녀까지 ‘청포자’로 만들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셈이다.

15일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0세 미만 어린이 청약통장 계좌는 181만개다. 10대 청약 가입자도 약 178만명. 미성년자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총 360만명에 달한다.

청약통장 가입률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10대는 35.5%, 10세 미만 어린이는 42.4%다. 우리나라 미성년자 10명 중 4명이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집값을 근로소득 등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값은 코로나19 여파와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정책에 따라 주춤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간의 추세를 보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서울 아파트값은 오늘이 가장 싸다”라는 웃지 못 할 푸념도 나온다. 시간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 4월 기준 8억3666만원이다. 중위가격은 지역 내 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장 중간에 위치하는 주택의 가격을 의미한다. 최고가와 최저가 아파트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아파트 매매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많이 사용되는 지표다.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반면 근로소득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즉, 저축 등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하기가 요원하다는 것.

실제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은 3382만원이다. 직장에 들어간 뒤 한 푼도 쓰지 않고 25년 이상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청약을 통해 내 집을 마련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됐다. 더욱이 납입금액을 자유롭게 바꾸면서 이자를 챙길 수 있고, 연말정산 소득공제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A씨(34세, 여)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청약통장에 가입했다”며 “정부로부터 육아수당이 나오는데 다른 곳에 쓰지 않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결정을 내리게 됐고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사진=이지경제DB
사진=이지경제DB

심리

문제는 청약 문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및 수도권 청약 경쟁률은 세자릿수는 기본이다. 6월 12일 평균 105.3대 1로 마감한 ‘부평 SK VIEW 해모로’가 대표적이다. 청약 가점 커트라인 역시 높게 형성돼 있다.

높아진 청약 문턱이 미성년 자녀의 청약통장 개설을 촉진하고 있다. 청약통장 가입이 빠르면 빠를수록 청약가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약가점은 무주택기간 32점, 부양가족 수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 17점으로 총 84점 만점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내 집 마련 적령기인 30대에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 수 부문은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다.

무주택기간 만점 32점을 얻으려면 15년간 주택이 없어야 하는데 기준이 30세 때부터다. 46세가 돼야 만점을 채울 수 있다. 더욱이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부양가족 수도 만족시키기 힘들다.

그나마 청약통장 가입기간은 부모가 자녀를 위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청약통장 가입기간에서 17점을 받으려면 가입기간이 15년 이상이어야 해 빠를수록 좋다.

단 미성년자의 가입 기간은 2년만 인정해준다. 예컨대 5살에 청약통장에 가입한다고 20세에 가입기간 만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요즘같이 청약가점 커트라인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청약통장 조기 가입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줄 수 없다.

그러나 미성년자 때부터 청약통장을 만들면 30대 초중반에는 가입 기간 만점은 채울 수 있다. 또한 최소한의 자격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면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고등학생 자녀는 둔 B씨(52세, 남)는 “요즘 세상에서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면 내 집 마련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집 한 채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인데 청약 조건까지 좋지 못해 ‘청포자’로 살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아들에게 청약통장을 만들어 줬다”고 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청약통장이 증여의 수단으로도 인식돼 미성년자 청약통장 개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일정 부분 청약점수를 올리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 무주택 자녀세대에게 청약 기회를 넓혀준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있을 것”이라며 “미성년자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증여할 수 있는 인정 금액이 10년간 2000만원까지다. 청약통장을 통해 합법적으로 증여할 수 있다는 경향도 있어 미성년자의 청약통장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재훈 기자 kkaedol0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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