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으로 세계 울린, 신춘호 농심 창업주 별세
‘신라면’으로 세계 울린, 신춘호 농심 창업주 별세
  • 김보람 기자
  • 승인 2021.03.29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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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2세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
故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
故 신춘호 농심 회장. 사진=농심

[이지경제=김보람 기자]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영면에 들었다.

29일 농심에 따르면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 중 셋째 아들로, 1930년 12월 1일 울산에서 태어났다.

고 신 회장은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부인) 3남 2녀를 뒀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 사업을 모색했다.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1965년 농심을 창업했다.

그는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해 선보였으며, 이중 신라면은 현재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농심 창업 당시 고 신 회장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면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여기에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스스로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뒀다. 당시 라면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며 제품 개발이 수월했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안성공장 설립 때에도 신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 회장은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아울러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 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돼 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 회장은 해외 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 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라는 것이다.

신라면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은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영면에 들었다. 사진=김보람 기자
신라면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은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영면에 들었다. 사진=김보람 기자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고급의 이미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데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 신라면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 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 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신 회장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라면과 스낵으로 만들어냈다.

신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신 회장의 농심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와 함께 영면에 든 故 신춘호 회장이 유족에게는 ‘가족 간에 우애하라’, 임직원에게는 ‘거짓 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 속의 농심을 키워라’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농심에 따르면 품질 제일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조해온 신 회장은 마지막 업무지시로 50여년간 강조해온 품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짚으면서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체계적인 전략을 가지고 세계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신 회장은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라는 철학 아래 창립 초기부터 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로 제품을 개발해 왔다.

특히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것을 강조해왔다. 농심은 이렇게 쌓아온 품질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신제품을 선보였고 식품의 맛과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며 한국의 식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이와 함께 신춘호 회장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며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 제2공장과 중국 청도 신공장 설립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해 가동을 시작하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아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회사와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아갈 것을 주문했다.

한편, 농심 창업주 고(故) 신춘호 회장의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송용덕 롯데지주 부회장, 신준호 푸르밀 회장과 조카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황각규 전 롯데지주 부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빈소에 들러 고인을 추모했다.

일본에 체류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조화로 애도의 뜻을 대신했다. 구속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 부회장도 조화로 애도를 표했다.

장례는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기 위해 4일간 농심그룹 회사장으로 치른다. 고인의 발인은 30일 오전 5시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 들른 뒤 농심 본사에서 영결식을 할 예정이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김보람 기자 qhfka7187@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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