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폭, ‘41년만’ 최대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폭, ‘41년만’ 최대
  • 여지훈 기자
  • 승인 2023.03.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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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이후 역전폭 계속 커져

 

3월 FOMC 회의를 앞두고 연방준비제도의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다. 사진=픽사베이

[이지경제=여지훈 기자] ‘장단기 금리 역전.’

일반적으로 경제 침체의 전조로 해석되는 현상이다. 한 번이라도 예금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장기 금융상품에 적용되는 금리가 단기 금융상품에 적용되는 금리보다 높은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미국 국채 시장에서 그런 상식이 깨진 지 이미 오래다.

미국 2년물 국채 금리가 10년물 국채 금리를 넘어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8개월째 지속 중이다. 단순히 지속하는 게 아니라 역전폭이 점차 확대되는 중이다. 지난해 7월 5일(현지시간) 역전된 두 금리의 역전폭은 이후 꾸준히 커져 이달 7일 결국 1.0%포인트(p)를 넘어섰다. 역전폭이 1.0%p를 넘어선 건 1981년 9월 22일(1.01%p) 이후 처음이다.

역전폭은 8일 1.08%p까지 확대됐다. 이번 역전폭 확대는 10년물 금리의 변화보다는 2년물 금리의 급등이 주효했다. 올해 1월 개인소득·개인소비지출 지표가 나온 지난달 24일 이후,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0.04%p 상승한 데 반해 2년물 금리는 0.27%p 가까이 급등했다. 이처럼 장단기 금리 움직임이 차이를 보이는 건 시장이 장기와 단기에 주목하는 요소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최근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는 예상보다 강한 미국 경제 상황을 반영한다. 고용시장은 반세기만의 최저 실업률(3.4%)을 기록 중이며, 지난해 말 위축됐던 소비와 심리지표도 반등하면서 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은 물가안정을 우선하는 연준이 지금보다 강력한 통화 긴축을 펼치도록 하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이달 7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연준이 달성하려는 최종 금리 수준과 금리 인상 속도 모두 이전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연준의 통화 긴축이 더 강하고,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런 강도 높은 긴축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곳이 바로 현재 가파르게 치솟는 2년물 국채 시장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와 2년물 국채 금리의 역전폭이 1.0%p를 넘어선 건 41년만이다. 사진=연방준비제도

하지만 장기적 관점은 조금 다르다. 연준의 강도 높은 통화 긴축이 오랜 시간 지속할 경우, 자칫 미국 경제가 경착륙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면서 연준이 기준금리를 높이더라도 이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며칠 전 미국 서부 스타트업의 자금줄로 역할 해온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함에 따라, 연준의 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이란 의견이 힘을 받으면서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도 9일과 10일 연달아 급락했다. 이로 인해 장단기 금리 역전폭 역시 크게 축소된 상황이다.

더구나 현재 미국 의회는 부채한도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다. 부채한도는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할 수 있는 부채의 법적 상한선으로, 미국 의회가 정한다. 부채가 상한선을 초과하면 이론적으로 채무 불이행(디폴트)을 맞게 되는데, 미국 정부의 부채는 이미 올해 1월 19일 그 한도(31조3810억달러)에 도달했다. 다만 재무부의 긴급조치로 디폴트를 유예한 가운데 공화당과 민주당이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이다.

주목할 부분은 부채한도 협상 과정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계속된 재정확장 기조가 긴축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황이 ‘재정지출 감축을 통해 재정적자를 축소하자’는 공화당과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축소하자’는 민주당이 맞서는 형국이라며 “그 어느 경우든 재정적자 축소 없는 부채한도 상향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부채한도 협상 과정에서 재정정책 기조가 확장에서 긴축으로 급전환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과 그로 인해 경기가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장기금리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장 침체가 없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준은 최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0%대 수준에서 4.50~4.75%까지 급격히 인상했으나, 지난 40년을 통틀어 유례없는 속도로 긴축을 단행했음에도 불구, 아직 수요를 억제하는 데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일례로 금리에 민감한 주택 시장과 자동차 시장에서조차 연초부터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 김성환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수요 억제 실패의 원인으로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 ▲낮은 예금금리 ▲기업의 탄탄한 고용수요를 꼽았다.

우선 미국 가계는 팬데믹 이후 쌓아둔 초과저축을 아직 절반 수준밖에 쓰지 못했다. 심지어 초과저축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부채부담은 줄고 건전성은 개선됐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팬데믹 이전 수준을 밑돌고 있으며, 연체율은 개선됐다. 축적한 돈이 많은 상황에서 부채부담마저 적다 보니 금리가 올라도 수요 위축이 심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가계의 초과저축은 아직 높은 수준이며, 재무 건전성도 양호하다. 표=신한투자증권/레피니티브

낮은 예금금리도 한몫했다. 본래 연준의 금리 인상 의도는 소비자들이 소비 대신 저축을 하도록 유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현재 상단 4.75%까지 높아진 미국 기준금리와 달리 시중은행의 단기 예금금리는 지난달 말 기준 0.35%에 불과하고, 만기 1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1.36%에 그쳤다. 이는 미국 시중은행의 대출 대비 예금의 비율이 146%로, 지난 30년 내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한 재원을 확보한 은행들로서는 예금을 더 받을 유인이 없어 굳이 높은 예금금리를 제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면 소비자들의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5%를 웃돈다. 소비자들로서는 소비 대신 저축을 택할 경우, 고스란히 4%가량의 구매력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물가가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저축보다는 소비를 택하는 게 덜 억울한 상황이다.

여기에 고용시장마저 호황이다. 기업들의 구인 수요는 매우 강하며, 이에 시간당 임금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 가계의 총 근로소득은 올해 1월 전년 대비 7.4% 성장해 결국 명목 개인소비지출 성장률(7.9%)을 따라잡았다. 고용시장 호황에 임금소득 증가까지 겹치니 초과저축이 소진되는 시간이 더욱 지체될 수밖에 없다. 소비 수요가 좀체 꺾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다.

김성환 연구원은 “긴축이 수요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아직 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우선은 가계의 초과저축, 다음으로는 기업들의 구인 수요와 임금 상승이 약화하기 전까지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연준이 어떤 긴축 경로를 택할지 고민이 깊어질 시점”이라며 “3월 FOMC 전후 연준의 매파 기조가 크게 강화되는지 아닌지가 시장의 향방을 가를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여지훈 기자 news@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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