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가 배를 째도 괜찮은 이유
KT&G가 배를 째도 괜찮은 이유
  • 강경식 기자
  • 승인 2016.01.21 15: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가장 뜨거웠던 화두의 하나는 담뱃값 인상이었다. 정부가 202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9%로 끌어내리겠다며 담배 한 갑에 2천 원씩 가격을 인상시켰기 때문이다. 판매 하락으로 담배업체의 피해가 뻔한 상황이었다. 이에 더해 KT&G는 공정위로부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제재까지 받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KT&G는 아직도 무사해 보인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방침에는 종량세 방식의 ‘개별소비세’가 적용됐다. 이는 담배 가격에 상관없이 한 갑당 무조건 594원의 개별소비세를 징수하는 것이다. 더불어 기존에 매겨져있던 부가가치세(▲199원), 지방교육세(▲122원), 담배소비세(▲366원), 건강증진부담금(▲487원) 등의 인상으로 담배 한값당 부과되던 세금과 부담금은 1550원에서 3318원으로 껑충 뛰었다.

그러나 세금만 오른 것은 아니다. 담배 한갑이 팔릴 때 마다 담배업체가 가져가는 수익도 올라갔다. 인상 이전 담배 한 갑에 대한 소매점의 마진은 250원, 인상이후의 마진은 420원으로 높아졌다. 담배업체의 판매 마진도 기존 700원에서 760원으로 상승했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담배의 판매량과 KT&G의 점유율이다. 답뱃값 인상을 시행한 지난해 1~2월 판매량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상승세를 유지하더니 평균 수준의 83%까지 회복했다는 것이다. 납세자연맹이 한국담배협회의 자료를 추산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담배 판매량은 약33억3천만 갑이다. 이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평균인 43억4천만 갑에 비해 4/5를 넘어선다.

KT&G의 점유율도 담배 판매량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보그 등 인상시점을 두 달 가량 늦췄던 외산담배의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1월 1일부로 가격을 인상했던 KT&G의 점유율은 50% 아래로 추락했었다. 그러나 외산담배의 가격인상 시행 이후 조정기를 거쳐 KT&G의 점유율은 다시 60%를 웃도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공정위의 조치…결과는?
문제는 담배 판매량이 급감했던 연초에 벌어졌다. KT&G의 판매방식에 대해 공정위가 제재를 가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자사 제품의 비율을 높여 진열하도록 한 편의점 가맹본부와 KT&G간의 계약을 문제 삼았다.

또한 고속도로 휴게소, 관공서·대학·군부대·리조트 등의 구내매점 운영사업자에게 KT&G의 제품만 취급하는 조건으로 담배대금 할인, 매출액의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이익의 제공, 리조트업자의 콘도 구입, 각종 물품 지원 등이익을 제공해왔던 관행에 대해서도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며 시정할 것을 명했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그간 KT&G가 독점해온 시장이 외산담배업체에 열릴 것 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었다. 담뱃값 인상 이후 판매량이 줄어 고심하던 외산 업체들에게는 희소식이었다. 휴게소, 리조트 등 특정 지역에서 선호하는 담배의 구입이 불가능했던 소비자들 역시 반색을 표했었다.

그러나 공정위의 의결이 난 지 1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고속도로 휴게소, 관공서·대학·군부대·리조트 등의 구내매점에서는 아직 외산담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KT&G에 대해 “대부분의 담배 유통 채널에서 전방위적으로 행한 불공정 거래 행위를 적발· 조치했다”며 “독과점구조가 고착화된 담배시장에서의 경쟁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 한다”던 공정위의 입장이 유명무실해 지는 상황이다.

그래서 아직도 국산담배만 판매하고 있는 리조트, 휴게소, 매점의 사업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이들이 수입담배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는 다양했다.

두 곳의 리조트에서 비슷한 답변을 받았다. 이들의 주장은 “리조트 설립 당시 KT&G가 국산담배이기 때문에 지역세 혜택을 지자체에 주기 위해 (KT&G제품만 판매할 것을 요구하는)지역 공무원들의 요청이 있었다”며 “그 계약이 리조트 설립 시기부터 이어왔고 이제 와서 수입담배를 판매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 아직도 KT&G 제품만 취급하고 있는 H리조트 편의점.

그러나 국내 모든 제조담배는 판매지역의 지자체로 지역세가 들어간다. 국산담배에서 나오는 세금만 지자체에 지원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입담배까지 판매해 선택의 폭을 넓혀 매출을 높이는 것이 세수 증대에 도움이 된다. 또한 리조트가 위치한 지역의 공무원들은 “들은바가 전혀 없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총 8개의 휴게소를 취재하며 더욱 흥미로운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대다수의 휴게소 관계자들은 “KT&G 제품만을 취급하는 것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서도 “팔고 싶은 물건을 판매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며 입을 다물었다.

▲ 민자고속도로 휴게소에 KT&G 측이 독점판매를 계약하면서 제공했던 휴지통

그러나 민자고속도로 한 곳의 휴게소 관리인은 “(KT&G가) 수입담배를 판매하면 지원해 줬던 쓰레기통과 물품들을 도로 가져간다고 했다”며 “KT&G만 팔아야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KT&G는 자사 제품만을 판매하는 조건으로 물품을 지원하거나 특별한 이익을 제공하고 있지 않으며, 이와 유사한 문구로 체결된 계약도 없다”고 답했다.

KT&G의 이 같은 답변은 공정위의 지적사항이었던 휴게소나 리조트 구내매점에서 독점으로 판매하는 조건으로, 물품, 정액지원 이나 콘도 계좌 구입으로 이익을 제공함에 대해 ‘거래상대방에게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여 자기 제품만 취급하도록 한 부당한 고객유인 행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KT&G가 총 480채를 보유하고 있는 부영그룹 산하 무주 덕유산리조트 매점은 아직도 리조트 고객이라는 이유로 독점판매를 허용하고 있었다. 리조트 관계자는 “KT&G가 덕유산리조트 수백채를 보유하고 있는 고객이다”며 “상부상조 하는 것”이라고 수입 담배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의 관공서와 운전면허시험장 등 다중이용시설 내 매점에서도 KT&G의 제품만을 판매하고 있었다. 공정위의 희망사항인 경쟁의 정상화는 이곳에도 미치지 못했다. “공무원들은 양담배를 안 피운다”거나 “공공기관 매점에서 양담배를 팔면 쫓겨날 수 있다”는 등 이들의 답변에는 더욱 노골적으로 KT&G 제품만 판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담겨있다.

그러나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 내 매점에서 아직까지도 KT&G의 제품만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공정위의 KT&G에 대한 과징금 부과가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법 상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다했다”라며 “그럼에도 판매자는 판매할 제품을 결정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의 조치는 불가능 하다”라고 답했다.

공정위 처벌이 실효성이 없다는 것과 함께 짚어야 할 것은 바로 흡연자의 특징이다.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대부분의 흡연자는 입맛에 맞는 특정 담배를 선호한다. 그러나 특정 담배에 대한 선호도 보다 흡연에 대한 욕구가 더욱 크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흡연자는 원하는 종류의 담배가 없을 경우에는 다른 담배라도 피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KT&G의 제품만을 취급하는 곳은 수입 담배를 선호하는 흡연자에게 어쩔 수 없이 KT&G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셈이 된다. 결국 공정위가 KT&G를 징계한 궁극적인 목적은 공공기관 내 매점에서부터 달성하지 못했다.

편의점도 변함없어…보이지 않는 손 있나?
한편 편의점 내 담배진열장의 구조도 대부분 변경되지 않은 상태다. 공정위의 지적사항은 KT&G와 편의점가맹본부가 KT&G 제품의 편의점 내 진열비율을 60∼7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계약을 체결함으로 경쟁사업자 제품의 편의점 내 진열비율이 25∼40% 이하로 제한됐다는 것이었다.

▲ 공정위가 지난해 공개한 편의점 업체와 KT&G간의 '시설물 설치·운영 계약서'

당시 KT&G와 진열비율을 계약했던 편의점은 패미리마트(현 CU),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GS25, 세븐일레븐, C-space, OK, Joy 등 업계 전반에 걸쳐있다. 문제는 편의점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해당 업체들이 아직도 KT&G 제품의 비중이 높은 진열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신규 개업하는 점포에서도 당시와 비중이 비슷한 진열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지적사항이 개선되고 있지 않는 이유에 대해 KT&G는 “경쟁 사업자 제품의 진열 비율을 제한하는 행위는 있을 수가 없다”며 관련 없음을 강조했다.

▲ 최근 오픈한 G편의점 신규점포. 공정위 제재 이후에도 진열방식의 변화는 없다.

이어 “편의점 내 담배 진열방식 등 시설물 운영은 전적으로 해당 체인본부의 정책적 결정에 따라 제조사와의 계약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 제조사와 체인본부와의 계약에 대해 KT&G가 전혀 관여할 수 없다.”고 재차 설명했다.

그렇다면 공정위의 징계 이후 KT&G는 편의점 진열장의 비율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도 개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편의점 가맹본부가 KT&G 제품의 판촉을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해 편의점 업체들은 다른 답변을 내 놓았다.

익명을 요구한 A편의점 관계자는 “KT&G 불가침 영역이다”며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은 수입업체 두 곳의 제품들은 업체가 내놓는 금액에 따라 땅따먹기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B편의점 관계자는 “PMI나 BAT가 KT&G보다 더 많은 돈을 내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정은 KT&G의 비율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한 갑도 팔리지 않더라도 KT&G의 비인기 제품이 중앙에 진열되는 것이 다른 회사의 인기 제품을 구석에 배치하는 것보다 회사에 득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보이지 않는 손은 있다”라며 “KT&G 제품의 진열장을 유통업체가 자발적으로 축소시키거나 이동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불가능할 것”라고 덧붙였다.

결국 담뱃값 인상으로 인해 판매량은 줄어들었다. 정부가 세금을 올리는 대신 KT&G는 손해보전금을 받고 마진도 높였다.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실효는 거두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편의점 내 KT&G의 진열 비율을 지켜줬고, 휴게소와 리조트, 공공시설 내 매점들은 여전히 KT&G의 독점 판매권을 지켜줬다. 어찌된 영문인지 KT&G는 보호를 받은 모양새다. KT&G는 ‘솜방망이’와 ‘보이지 않는 손’ 덕분에 무사해 보인다.

[이지경제=강경식 기자]


강경식 기자 liebend@ezyeconomy.com


  •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 88, 2F(방배동, 부운빌딩)
  • 대표전화 : 02-596-7733
  • 팩스 : 02-522-7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이
  • ISSN 2636-0039
  • 제호 : 이지경제
  • 신문사 : 이지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237
  • 등록일 : 2010-05-13
  • 발행일 : 2010-05-13
  • 대표이사·발행인 : 이용범
  • 편집인 : 이용범, 최민이
  • 편집국장 : 임흥열
  • 이지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지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ezyeconomy.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