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생활] 부촌, 서초구의 ‘카트’ 실종 사건…수십억 자산가의 양심=100원?
[탐구생활] 부촌, 서초구의 ‘카트’ 실종 사건…수십억 자산가의 양심=100원?
  • 이한림 기자
  • 승인 2018.01.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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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일대 아파트 단지에 방치돼 있는 카트들. 사진=이한림 기자
서초구 일대 아파트 단지에 방치돼 있는 카트들. 사진=이한림 기자

[이지경제] 이한림 기자 = 서울의 대표적 부촌 중 한 곳인 서초구 일대에서 아울렛과 대형마트의 카트(물건을 운반하는 기구)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사라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지역 주민들은 “집값은 수십억원에 달하는데 양심은 100원짜리 동전보다 못 하다”며 혀를 차고 있다.

어찌된 영문일까. 대형마트 등에는 카트 보관 장소가 있다. 사용 후 곳곳에 위치한 보관 장소에 두는 것은 당연한 기본. 경기가 나쁘다더니 카트를 훔치는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왜!

기자가 직접 나섰다. 지난 18일 오후 1시경 서초구 잠원동에 들어섰다. 이날은 서울시가 대중교통 무료 이용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렸다. 헌데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상당히 밝다.

밝음의 의미를 건설부동산 담당 기자 입장에서 해석해봤다. 해당 지역 아파트 최소 매매가는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더욱이 인근 아파트가 최근 사업비만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정비사업 인가를 잇달아 받으면서 재건축 기대감과 함께 호가가 널뛰기하고 있다.

입지 조건도 기막히다. 잠원동 일대는 잠원초등학교과 경원중학교 등 교육시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과 뉴코아 아웃렛 강남점(이하 뉴코아), 킴스클럽 등 생활편의 시설이 위치했다. 또 서울 내 대표적 업무지구인 강남과 여의도로의 출퇴근이 용이해 거주민들의 생활 만족도가 높다.

아파트 안까지 카트를 끌고 가는 주민들. 사진=이한림 기자
아파트 단지로 카트를 끌고 가는 주민들. 사진=이한림 기자

이기주의

카트 실종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뉴코아(1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쇼핑을 마친 것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카트에 짐을 가득 싣고 매장 밖으로 나왔다. 실외 주차장을 지나더니 과감하게 매장 바로 옆에 위치한 신반포4차아파트(한신4차)로 향한다.

행동이 기이하다. 뒤를 쫓았다. 이들은 아파트로 들어서더니 203동과 204동 사이에 위치한 주차 공간에 카트를 주차(?)시켰다. 이후 바로 옆에 주차돼 있는 흰색 아반떼 트렁크에 짐을 싣더니 곧바로 운전석으로 행했다.

궁금함을 참을 수 없다. 이들에게 “주민이시냐?”고 물었더니 “왜요?”라며 날선 목소리가 되돌아 왔다. “카트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별 사람을 다 보겠네”라고 신경질적으로 쏘아 붙이고는 바로 줄행랑이다.

주차 공간에 덩그러니 남은 카트. 어쩔 수 없이 기자가 반납했다. 키를 꽂자 100원이 나왔다. 심부름 값이다.

다시 인근 아파트 단지를 둘러봤다. 반포한신타워와 잠원중앙하이츠, 한신22차, 한신7차, 한신9차, 한신8차, 한신20차, 한신10차, 녹원한신 등 주변 모든 아파트 단지에서 최소 2개 이상의 카트가 발견됐다.

발견된 위치는 제각각. 쓰레기장, 주차 공간, 놀이터뿐만 아니라 동별 출입구 앞에서도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심지어 매장과 700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하철 3호선 잠원역 3번 출구에도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일부 카트 내에는 전단지, 휴지조각, 테이크아웃 커피컵 등 쓰레기들이 제집인 마냥 담겨 있었다.

다시 뉴코아와 킴스클럽으로 향했다. 카트 수거 공간은 뉴코아 2관과 킴스클럽 사이 주차 동 안팎에 마련돼 있었다.

카트 운반 업무를 맡고 있는 이모씨(남·30대)에 따르면 매장 내 카트는 총 2000여개 정도. 주변 아파트에 방치된 카트의 경우, 수거하는 인력이 따로 있으며 현재 주변 아파트로 출장을 나갔다고.

수거 차량을 찾아볼 요량으로 인근 잠원동아아파트로 향했다. 매장과 아파트는 6차선 대로인 잠원로를 끼고 있다. 횡단보도 앞에서 국거리와 주방용품 등이 실린 카트를 끌고 집으로 가려는 한모씨(여·62세)를 만났다.

한씨는 “집이 코앞이라…”며 “들고 가면 무겁잖아요”라고 답했다.

수거 트럭에 실린 카트. 사진=이한림 기자
수거 트럭에 실린 카트. 사진=이한림 기자

한씨를 따라 들어간 잠원동아아파트 내에서 방치된 카트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 이씨가 말했던 수거 트럭을 찾았다. 당시 트럭 데크에 실린 카트는 3개. 수거 담당자는 단지 이곳저곳을 돌고 있는 듯했다.

경비원 김모씨(남·70대)는 이에 대해 “과거에는 단지 내에 카트를 모아두는 곳을 따로 지정해놨지만 잘 이행되지 않아 없앴다”면서 “차량의 진로를 방해할만한 곳에 있는 경우가 아니면 트럭이 수거해가기 때문에 별다른 확인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아한 답변이다. 이미 카트를 단지 내로 끌고 가는 문화가 이 일대에 형성된 듯하다. 집까지 끌고 온 카트를 단지 내 길가에 세워두고 그 뒤로 카트들이 정렬돼 있는 게 암묵적인 룰로 보였다. 고객 입장에서 카트를 반납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양심적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하다.

고객은 왕?

뉴코아와 킴스클럽 측의 답변도 씁쓸하다. 익명을 요구한 뉴코아 관계자는 “카트 수거 공간에 적어놓은 문구에도 나와 있듯이 카트를 아파트 단지로 끌고 가면 안되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수거를 해도 연간 200~300여개의 카트가 분실된다. 이에 도난죄를 묻겠다는 공지도 해봤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불매운동으로 입장을 철회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매장 측에 따르면 카트 1개의 가격은 약 10만원. 1년에 300여개의 카트가 분실되면 연간 3000만원이 사라지는 셈이다.

‘고객이 왕’이라는 옛말이 실감난다. 수직적 관계다. 비양심은 이해할 수 있는 편의가 아니다.

마무리는 한신아파트 주민 송모씨(여·42)의 말로 대신한다.

송씨는 “놀이터에 간다는 아이가 아파트에 널브러져 있는 카트를 타고 놀다가 다친 적이 있다”며 “본인이 편하다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장 밖 카트 보관소. 사진=이한림 기자
매장 밖에 마련된 카트 보관소. 사진=이한림 기자

 


이한림 기자 lhl@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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