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기획] 장애인 이동…"남이 아닌 우리의 문제"
[이지기획] 장애인 이동…"남이 아닌 우리의 문제"
  • 최준 기자
  • 승인 2023.11.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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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는 사회,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에도 관심 부족
BF인증, 취지와 달리 맹점 부각...수수료 및 심사과정서 문제
해외사례 참고해 인센티브 부여 등 적극적인 제도 개선 필요

[이지경제=최준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지하철 승강장 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편의 증진과 예산증액,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전장연은 2001년 1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70대 장애인 부부 추락사고를 계기로 2007년 출범했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서로 연대해 제도개선과 관련 법안 입법 추진을 요구하겠다는 취지였다. 그 결과 전장연 출범 이전부터 실시한 투쟁을 통해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을 이끌어내는 등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이들의 투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더구나 지난 2년간 시민들의 출퇴근 시간대를 노린 전장연의 기습 시위가 이어지면서 승객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미지근한 행보 역시 화를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전장연이 모든 장애인의 생각을 대변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 사회에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이들이 불편을 호소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장애인 시설물을 포함해 이들이 직면한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해봤다.  

26일 서울지하철 시청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경찰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6일 서울지하철 시청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경찰 앞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눈치 보는 사회

“아이고, 내려야하는데 미안해요. 못 내릴 거 같아 다음에 내릴게요.”

퇴근길로 붐비는 1호선 지하철 안에서 한 승객이 다급히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A씨다. 그는 다음 정차역에서도 승강장 사이를 확인하며 “이번에도 단이 높아서 못 내릴 거 같아요”라며 통화 상대에게 재차 사과한다. 

그는 목적지에서 세 정거장이 지난 후에야 단이 낮다는 걸 확인하고는 내릴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이다. 반대편 승강장으로 이동해 왔던 길을 힘겹게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승강장 사이 들쭉날쭉한 간격도 문제다. 전동 휠체어를 탄 B씨는 지하철 승강장 사이로 뒷바퀴가 빠지는 경험을 했다. 그는 다시 탑승하기 위해 버튼을 조작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다행히 이 상황을 목격한 승객 2명이 휠체어를 들어주자 그제야 지하철 안으로 올라탈 수 있었다.

위 사례는 기자가 지하철을 이동하며 목격한 실제상황을 재구성했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당시 기자는 A씨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불편해도 감수하는 거죠. 다들 바쁘잖아요. 눈치도 보이고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처럼 많은 장애인들이 눈치를 보고 있다. 실제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계획이 시행되면서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이들의 이동권이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 편의에 대한 관심은 답보상태다.

특히 저상버스의 경우 배차 간격이 길다 보니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저상버스 운영 목적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일부 기사들이 장애인 탑승을 거부하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많은 이들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예약제로 인해 시간이 소요되는 건 매한가지다. 그들이 여전히 불합리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다.

기본적으로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기 위해선 차별 없는 시선과 단차 없는 사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22년 전국 장애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장애인 수는 265만3000명(모든 장애유형 포함)으로 전체 인구의 5.2%를 차지하고 있다. 인구 대비 적지 않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하철 등 공공시설을 포함해 거리 곳곳의 건물을 보면 많은 단차가 이들을 가로 막고 있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단층이 발생한 모습. 사진=최준 기자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단층이 발생한 모습. 사진=최준 기자

시설물이 문제?

국내 공공시설물은 설계과정에서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인증을 의무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BF는 Barrier Free(베리어프리)의 약자로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가 공공시설물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 환경을 조성하는 제도다. 이는 1974년 유엔(UN)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가 회의서 처음 알려지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현재 국내 BF인증 의무화는 공공시설 적용을 넘어 일반 시설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인증 수수료 부담 문제를 비롯해 심사과정이 꽤나 복잡하고 까다로워 정착 속도는 더딘 상태다. 심지어 지자체 등 국가시설마저 BF인증 과정으로 인해 예산을 투입하고도 착공이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4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에 관한 규칙’ 개정을 통해 인증의무시설이 아닌 시설에 대해 인증 수수료를 100분의 50으로 감면할 수 있도록 제4조제2항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단차 없는 사회가 실현되기에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노후건축물도 함께 문제로 꼽힌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용도별 건축물 현황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건축물은 735만4340동으로 집계됐다. 이중 30년 이상 지난 건축물이 약 301만동(41.0%)이다. 국내 본격적인 BF인증 도입 시기(2007년)와 비교해 보면 편의 시설 설계가 적용되지 않은 건물이 아직도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른 선진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일까?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1970~1990년대부터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특히 한국과 가장 가까운 일본은 장애인이 차별 없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로 유명하다. 

일본은 일찍이 BF 정책을 도입해 베리어프리 인증 시설 구축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저상버스와 지하철 승강장에는 발판을 상시 구비해 의무적으로 이동 편의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기다리는 문화도 함께 정착됐다. 그 결과 일본 내 휠체어를 탄 많은 이들이 공동체에 잘 녹아든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국내 BF제도에는 일반 시설물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물론 정부가 지난해 수수료 감면 개정안을 발표했지만 갈 길은 멀다. 

관공서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 한 건축설계 업체 관계자는 “건축 공모안 설계 기준에는 BF인증이 필수로 적용된다. 최근 신축되는 일반 건축물을 봐도 BF인증 과정을 거친 시설이 늘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요즘 사회적 분위기가 약자를 위한 시설 구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BF인증에 대한 적극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의무화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최준 기자 news@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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