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IT 강국②] 열악한 IT노동 환경, 해법은 없나?
[일그러진 IT 강국②] 열악한 IT노동 환경, 해법은 없나?
  • 이어진
  • 승인 2013.06.0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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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업체 특별 근로감독 필요, 야근수당 현실화도 시급


[이지경제=이어진 기자] 국내에서 갑을 논란이 거센 가운데 ‘을이라도 되고픈’ 사람들이 있다. 바로 IT노동자들이다. 야근을 밥 먹듯 해야만 했지만, 야근 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IT강국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열악한 IT노동 환경을 만들어낸 주된 원인은 무엇인지, 해법은 무엇인지 IT노동자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하청에 또 하청, “우린 을이라도 되고 싶다”

IT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국내 시장에서 IT업체들이 SI 등 B2B 시장에 눈을 돌리면서 하청을 주는 것이 일상화된 까닭이 크다.  

2000년대 초반 닷컴 열풍이 불고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화 되면서 IT에 많은 인력이 모였고 IT 산업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닷컴 버블이 하루아침에 붕괴되면서 IT업체들은 인터넷 관련 서비스 보다는 B2B 시장인 SI쪽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SI는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기업 내에서 수주 및 발주, 재고량, 업무 등을 총괄하는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것이라 보면 쉽다. 문제는 SI에 눈을 돌린 업체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개발할 생각 보다는 영세업체들에 일거리를 떠넘기면서 보다 싼 값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업체가 6개월이 소요되는 1억원짜리 프로그램 개발을 수주했다고 치면, 그럼 A업체는 5,000만원을 들여 B라는 업체에게 프로그램 개발을 맡기는 것. B는 다시 C로 이어지고 단가는 계속 낮아지며 시간도 감축된다. 10년차 고급 인력 2명이 투입돼야 하는 일을 1~2년차 프로그래머 1명이 모두 맡는 것도 일상이다. 초급 인력들이 터무니없는 짧은 시간에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야근은 밥 먹듯 이어지는 데도 정작 이와 관련된 수당을 받긴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홈쇼핑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았던 김모씨는 “홈쇼핑 프로젝트 1년 내내 정규직은 고작 1명에 불과했다. 개발인력은 전부 외주였던 셈”이라며 “기업이 돈을 벌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아닌 그저 돈을 벌려고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T노조 나경훈 위원장은 “다단계 하도급은 열악한 IT노동자 환경에 있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이윤을 빼가고, 실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돈은 거의 없다”며 “하도급을 타고 내려갈수록 원청사와 실제 일을 하는 사람 간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들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3년도 IT노동조합이 온라인을 통해 1,000여명의 IT인력들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들은 응답자의 19.4%나 된다. 프리랜서 신분이다 보니, 이를 이용해먹는 악덕 업체들도 늘어나는 실정이다.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들의 임금은 대부분 일을 마친 다음 달 지급된다. 일부 악덕업체들은 이를 이용해 무리한 프로그램 개발 일거리를 던져주고 다 끝마치지 못하게 한 뒤, 손해배상 등의 협박을 통해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 

IT노조 나경훈 위원장은 “프리랜서의 임금보전 문제도 심각하다. 협박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며 “2년 간 전화상담 사례의 70~80%가 협박성 압박으로 마지막달 임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였다”고 말했다. 

◆프로그래머 양산이 오히려 부메랑으로

IT 개발자들을 양산하는 시스템도 업무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취업 과정 등을 거친 인력들을 싼 값에 이용할 수 있어 업체들은 ‘나갈 테면 나가라’라는 식의 인식들을 가졌고, 이는 결국 다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인력난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IT개발자들을 양산할 수 있는 시스템은 국내에서 갖춰져 있다.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구직과정 등이다. 3개월에서 6개월 과정으로 프로그래밍을 속성으로 가르친 뒤, 취업과 연계하는 것이다. 대상에는 전공, 비전공을 가리지 않는다. 인문계를 나와서 프로그래머로 취업하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이렇게 IT취업 과정을 거친 사람들 중 업무 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6개월 과정으로 자바 교육을 받은 김모씨는 취업 3개월 만에 일을 관뒀다. 학원에서 소개해 준 업체라 믿고 다녔지만, 도저히 업무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자동차 관련 학과를 나왔던 김 씨는 취업이 여의치 않자, 6개월 가량 학원을 다니며 프로그래머가 되는 꿈을 꿨다. 다른 학과를 나온 탓에 더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학원에서도 개발에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취업 이후 부푼 꿈은 고스란히 무너졌다. 철야는 그러려니 했다. 업무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작 6개월 남짓 배운 프로그래밍 실력을 가진 김씨에게 3년차 이상이 할 수 있을만한 일을 맡기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매일 책과 씨름하며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고 일을 했지만, 도무지 따라갈 수 없던 그는 취업 3개월 만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초급 인력들을 대상으로 불가능한 업무를 강요하는 것은 이미 일상화 됐다. 주요 IT관련 커뮤니티 사이트 등을 살펴보면 김 씨와 비슷한 일로 고민하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야근 수당만이라도 받을 수 있어야”

IT노동자들은 정부가 몇몇 악덕 IT개발사들 및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노동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단 현행 법에서 명시된 야근 수당만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쪽 폐의 절반을 잘라냈던 양모씨 사례에서 거론된 N사와 K사, H사 등 3개 업체는 IT업계에서 3대 막장이라 불린다. 살인적인 업무 환경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3대 막장 업체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부가 특별 근로감독관을 파견, 우선적인 규제를 해야만 기계로 인식하는 업계 풍토를 뿌리 뽑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날 증언에 참석한 한 IT노동자는 “결국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이다. 3대 막장이라고 불리는 업체들에 정부가 특별 근로감독관을 파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법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너무 소요된다. 지금 있는 법만이라도 정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IT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감독과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근로시간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 야근수당을 지급하게 된다면 프로젝트 비용이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외부 하청을 맡기려고 했던 업체들도 기술력을 내재화시켜, 정규직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나경훈 IT노조위원장도 “공공기관에 특별 근로감독관을 투입해서 IT노동자들의 근로 관리를 해야 한다. 공공기관부터 먼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SW 하도급 개선 법안 추진

IT업계에 만연한 살인적인 하도급을 규제하기 위해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6일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장 의원 측은 현재 IT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이 다단계로 이어지는 하도급 구조 및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에 있다고 보고,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통해 하도급 계약 체결 시 표준하도급계약서 작성, 사업금액의 50%를 초과해 하도급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장하나 의원실 측은 “현행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은 하도급에 대한 규정이 미흡해 실효성 있는 법적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부문 소프트웨어 사업의 하도급 시, 사전에 승인을 받도록한 조항 하나 뿐”이라며 “현행법에 도급 및 하도급에 관한 사항을 신설해 관련 규율 사항을 명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IT노조 나경훈 위원장은 “하도급만 개선되면 열악한 IT업계 노동환경이 해소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하나하나 없애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진 bluebloodm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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