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 '음식물 처리기 화재' 대응 논란
한일월드 '음식물 처리기 화재' 대응 논란
  • 이호영
  • 승인 2014.01.03 13: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매사 “제조사 원인규명이 먼저”…제조사 “그런 화재사고 없다” 오리발

[이지경제=이호영 기자] 최근 서울 대치동 한 아파트에서 한일 필레오 ‘음식물 처리기’의 과열로 불이 나 피해자 가족이 보름 동안 숙박업소를 전전하게 된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1차아파트에 거주 중인 이경희(가명 여·39)씨 모친은 12월 5일 새벽 3시경 잠을 자다가 매캐한 냄새에 잠을 깼다.

 

모친이 흔들어 눈을 뜬 이씨. 베란다에서부터 발생한 검은 연기는 이미 온 집안을 휘감고 있었다. 놀란 이씨는 잠자던 식구들을 다급히 깨웠다. 눈을 뜬 남편이 물을 들고 베란다로 뛰쳐나갔고 경비실에서 119에 화재신고를 했다.

 

십여분 후 아파트에 도착한 소방수 3명에 의해 화재는 가까스로 진압됐고 이어 2명의 경찰도 도착해 현장을 확인했다. 불길이 잡힌 후 드러난 아파트 내부는 마치 포탄을 맞은 듯 참혹했다. 벽과 마루는 온통 그을음 천지였고 냉장고와 가재도구들은 불에 검게 그을려 있었다. 


베란다 창문도 남아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일부 파편은 아파트 아래 주차되어 있었던 승용차에까지 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은 베란다에 놓여있던 ‘음식물 처리기’를 발화지점으로 추측했다. 음식물 처리기의 과열로 인해 불씨가 생겼고 처리기 내 인화성 물질에 닿으면서 폭발로 이어졌다는 것. 현장 감식 나온 전기안전공사 관계자의 의견도 동일했다.

 

음식물 처리기가 발화원인으로 지목되자 ‘처리기’를 유통시켰던 한일월드(회장 이영재) 측 관계자가 바로 달려왔다. 그리고 이씨를 음식물처리기 제조업체인 오클린(대표 김회수) 측과 연결시켜 줬다.

 

잠시 후 보험사와 함께 사고현장을 들른 오클린 측 담당자는 처리기 잔해를 수거해가면서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부분은 우리가 보상해주겠다”며 이씨를 달랬다.

 

이씨는 보상을 약속한 제조사의 말을 믿고 생후 1개월 된 갓난 아기를 안고 집을 나섰다. 집안을 정리하고 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식구들이 머무를 수 없었고 무엇보다 그을음과 분진 속에 아기를 둘 수 없었던 것. 엄동설한에 갓난 아기를 포함한 다섯 식구가 보름 이상 숙박업소를 전전하는 상황이 되자 이씨는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음식물 처리기가 폭발하리라고는 상상이나 했겠어요. 베란다에는 보일러도 있는데 친정어머니가 깨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 만해도 끔찍합니다.”

 

한일월드, ‘제품 원인규명이 먼저…’ 제조사측에 책임 떠넘겨

 

이씨 가족이 외부 숙박업소를 전전하는 동안의 고생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알아서 보상해 주겠다’던 음식물처리기 제조사와 판매사 어느 쪽도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이씨 일가의 고충이 깊어졌다.

 

판매사인 한일월드는 화재현장에 직원을 보내 이씨와 제조사를 연결해준 것으로 자신들의 할 일은 다 했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오클린에서 이씨의 사고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씨가 전화를 하면 무조건 제조사인 오클린에 알아보라는 식의 대응이 전부였다. 아직 제조사 측에서의 원인규명이 안됐으므로 판매사인 자신들에게 전화해봤자 소용없다는 반응이었다.

 
오클린 측의 대응은 더 심했다. 전화연결도 잘 안되고 어쩌다 연결돼도 담당자와의 통화는 무산되기 일쑤였다. 수차례 메시지를 남겨 후속처리에 대해 물으면 “보험사로 모든 권한이 이관돼 더 이상 도움 줄 수 없다. 영수증 받고 보험사에 청구하라”는 문자답변이 전부였다.

 

당초에 보험적용이 안 되는 부분을 포함 모든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말도 바꿨다. 이씨가 불에 그을려 소실된 냉장고와 냉동고, 김치냉장고, TV와 에어컨 등 가전제품과 부엌가구에 대해 언급하면 마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인 양 치부했다.

 

심지어 오클린 측은 한일월드가 설치를 잘못했거나 사용자인 이씨 가족 중에 담배꽁초를 넣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의심하기도 했다. 이씨는 신생아를 둔 가정집을 놓고 담배꽁초 운운하는 오클린 측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

 

“검게 그을린 사고 현장에서 음식물처리기 잔해를 수거해간 이후부터 연락이 안 됐습니다. 잘못 만든 제품 때문에 생긴 일로 한 가정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피해보상은커녕 제대로 된 사과조차 못받았습니다.”

 

이씨는 아기 낳은 지 갓 한 달 지난 산모가 산후조리는커녕 찬바람 속에 제조사와 판매사를 오가야 했던 순간을 ‘악몽과도 같았다’고 표현했다. 불난 집을 수리해서 다시 입주하는 기간 동안 감당해야 할 식비 등의 경제적 고충보다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두 회사의 처사에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는 것.

 

취재과정에서 확인한 오클린과 한일월드의 후속조치는 안일무사 그 자체였다. 유통사인 한일월드는 “이번 일은 제품을 만든 오클린과 보험사에서 처리할 것”이라며 제조사에 떠넘기는 인상이고, 오클린 측은 아예 “그런 일 없다. 판매사로 문의하라”며 화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오클린의 오리발은 지난 19일 강남소방서가 이씨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의 최종 감식 결과 ‘음식물 처리기의 기기상 과열로 인한 화재’로 공식발표하면서 허위로 드러났다.

 

과열을 일으킨 제품 하자로 폭발과 화재 발생 가능성이 밝혀진 이상 시중에 판매된 제품의 리콜이 주목되고 있으나 유통 주체인 한일월드는 “제품 안정성과 관련한 문제는 제조업체의 원인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른 데서는 잘 쓰고 있는데 아직 발생하지 않는 사안까지 미리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시중에 보급된 한일 필레오 음식물 처리기는 4백여대 정도. 대당 88만원의 고가 제품이지만 월 2만7,900원의 렌탈 방식으로 신세계몰을 비롯해 CJmall, 옥션, G마켓 등 대형 온라인몰과 대리점을 통해 유통시킨 상태다.

 

이러한 고가제품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제품의 결함마저 드러났건만 피해보상이나 동일한 피해사례의 방지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한일월드와 오클린 측에 대해 이씨는 "쓰레기가 따로 없다. 제품도 쓰레기고, 이제 보니 만들고 판 기업들도 다 쓰레기"라며 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호영 eesoar@ezyeconomy.com

  • 서울특별시 서초구 동광로 88, 2F(방배동, 부운빌딩)
  • 대표전화 : 02-596-7733
  • 팩스 : 02-522-7166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민이
  • ISSN 2636-0039
  • 제호 : 이지경제
  • 신문사 : 이지뉴스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237
  • 등록일 : 2010-05-13
  • 발행일 : 2010-05-13
  • 대표이사·발행인 : 이용범
  • 편집인 : 이용범, 최민이
  • 편집국장 : 임흥열
  • 이지경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지경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ezyeconomy.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