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자동발매기, 시각장애인 우롱하나?
서울역 자동발매기, 시각장애인 우롱하나?
  • 강경식 기자
  • 승인 2014.08.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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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우롱하는 서울역과 코레일…"차별에 모멸감 느껴"

본지는 코레일이 운영 중인 자동발매기를 시각장애인이 혼자서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각장애 1급 김 훈(43, 남)씨와 손지민(32, 여)씨를 동행해 서울역에서 자동발매기로 열차표 구매하는 과정을 직접 취재했다.(편집자 주)

▲ 서울역에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며 자동발매기 스크린상에 그래픽으로 점자를 표기되고 있다

[이지경제=강경식 기자] 시각장애인이 서울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우선 시작부터 험난하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미리 연락을 하면 공익근무요원이 대기하고 있다 매표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하지만 택시·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횡단보도를 여러 차례 통과해서 서울역 정문으로 가야 하는데 환승센터와 이어진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시민들과 충돌할 위험이 매우 높다.

점자 안내판조차 관리 안해
어렵게 정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오면 서울역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제공하는 점자 안내판(촉지도식 안내도)은 파손이 된 상태다.

▲ 김씨는 점자안내판이 훼손도 심하고 호출버튼도 고장나 있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더듬어가며 위치를 파악하지만 깊게 패인 부위에 손이 베일 것 같다”며 “급한 마음에 직원용 호출벨을 눌러봤지만 버튼이 파손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손씨는 “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을 목적으로 하는 편의시설이 관리가 전혀 되고 있지 않다”며, “접근성이 부족한 것은 비장애인이 비장애인 입장에서만 설치를 했고, 관심이 부족하기에 파손된 상태로 방치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점자 블록을 따라 서울역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정문 앞에 위치한 간이 안내데스크는 취재가 진행되는 40분 동안 비어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서비스를 제한하는 점자 보도 배치
또 서울역에서 운영중인 자동발매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점자 보도는 전혀 없었다. 정문 좌측을 통해 진입하면 점자 보도블록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장실, 장애인우선매표구, 개찰구로만 이어져 있을 뿐 자동발매기를 이용할 수는 없다.

김씨는 “장애인은 서울역에서 운영 중인 다른 서비스를 아무것도 사용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차별로 느껴지기 때문에 정말 유감스럽다”라고 말했다. 

무용지물이 된 자동발매기

▲ 코레일 자동발매기는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들의 사용도 불편하다. 터치스크린의 위치가 휠체어에서 일어나야만 사용할 수 있다.

자동발매기 앞에 힘들게 도착했다. 분명 자동발매기에는 몇 군데 점자를 적어놓아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자동발매기로 유도하는 점자 블록도 없을뿐더러 '터치'를 통한 조작만이 가능한데도 음성안내를 하지 않아 사실상 이용은 불가능했다.

또한 가장 필요한 호출버튼에 점자 표기와 조명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도움을 받아 호출버튼을 눌러보니 호출이 된 상태인지 알 수 있는 알림음도 나오지 않았다. 10여 차례 눌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약 5분이 지나서 다시 눌렀을 때 스피커를 통한 직원의 응대를 받았고, 이어 자동발매기 앞으로 직원이 나와서 안내를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터치스크린을 조작해야 하는데 어디에 터치스크린이 위치해 있는지 조차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은행의 ATM기를 살펴보면 화면 하단에 점자로 패드의 위치를 알려준다. 또한 이어폰을 꽂아 음성을 통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고, 저시력자를 배려한 화면확대도 가능하다. 그러나 코레일의 자동발매기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확대 기능과 음성 안내가 없다.

발권에 실패한 김씨는 “이 기계의 용도를 모르겠다”면서 “점자가 있어서 표를 사는 기계라는 것은 알겠지만 어떻게 해야 표를 살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 터치스크린 하단에 점자를 표기해 터치스크린의 위치를 알려주는 시중은행의 ATM 기기

또한 카드전용과 현금·카드 겸용으로 나뉘어 있는 현재의 운영상태에 대하여 시각장애인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무런 안내가 없기 때문에 어렵사리 자동발매기에 가더라도 카드전용 발매기에서 현금으로 구매할 수 없으니 현금·카드 겸용 발매기를 찾아서 또 다시 이동해야 한다.

뒤늦게 호출을 받고 나온 서울역의 한 직원은 “시각장애인은 역 중앙에 위치한 종합안내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지만, 하루 평균 13만 명 이상 이용하는 서울역의 한 가운데 위치한 종합안내데스크까지 가는 길은 사람들로 가장 붐비는 정문 좌측 매표소 바로 앞을 지나가도록 유도돼 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인 김씨는 “사람이 붐비는 시간에는 혼자서 찾아갈 수가 없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우롱하는 스크린상 점자
한편 자동발매기를 통해 열차표를 구입한 뒤 나오는 화면은 또 한번 시각장애인들을 우롱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고 자동발매기 스크린상에 그래픽으로 점자를 표기 했다.

김씨는 이에 대해 “촉감을 통해서 읽는 점자를 스크린에 표현한다는 것은 인격모독에 가깝다”라며 “코레일이 시각장애인을 우습게 보는 처사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사과와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져 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소통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구성됐다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데 예산을 허투루 쓰고 있는 것 같다”라고 질책했다.

이어 “허술한 관리로 점자안내판조차 읽을 수 없는 것은 시각장애인은 서울역을 혼자 사용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져 우롱당하는 느낌”이라고 분노했다.

저시력자인 손씨 또한 “지하철을 나와 서울역까지 오는 동안 서울역임을 확인 할 수 있는 안내 표시를 전혀 확인 할 수 없었다”면서 “자동발매기에 화면확대 기능과 조명 몇 개라도 잘 설치돼 있었다면 저시력자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데 배려가 부족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함께 동행했던 일반인 김모씨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장치인 것처럼 점자 몇 개는 넣어놨지만 이는 요식행위일 뿐이다”라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부분의 관리도 부실하고 자동발매기처럼 배려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는 장애인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개선할 때도 시각장애인 배려 없어
한편 현재 운영중인 자동발매기는 지난 2012년 12월에 설치된 개선형 발매기이다.

지난 2005년부터 코레일은 예산절감과 고객편의 증진을 목적으로 승차권 자동발매기를 설치·운영해왔다. 단계적으로 숫자를 늘려 현재 서울역에만 38개의 자동발매기가 설치돼 있고, 이를 통해 승차권을 구입하는 이용객이 2012년에만 전채 이용객의 22%에 달했다.

철도 이용객 또한 증가해서 서울역은 하루 평균 이용객이 13만명을 넘어섰고 장애인의 서울역 이용 또한 증가했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경우에는 비율로 계산했을 때 하루 평균 약 650명이상의 저시력자를 포함한 시각장애인이 서울역을 이용한다.

개선 당시 국민공모를 통해 사용자가 제작한 UI를 선정해 설치하면서 “사용자가 이용하기 쉽고 편리한 환경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던 코레일에게 시각장애인을 고객으로 생각하기는 했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대중교통 범주안에서 시각장애인이 혼자 기차 이용을 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다면 운영사인 코레일은 대중의 의미를 되새겨 하루속히 장애인의 입장에서도 불편함이 없는 편의시설을 갖춰야 할 것이다.

 


강경식 기자 liebend@ezyec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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