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m의 진정성
1mm의 진정성
  • 강경식 기자
  • 승인 2016.05.0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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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판매행위와 관련한 재판이 열렸다. 고객정보를 팔아넘겨 231억의 수입을 올린 홈플러스 전 수뇌부에 대한 형사소송이다. 홈플러스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약속했던 것과 달리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여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제공에 대한 집단소송. 사진=진보넷

홈플러스는 지난 2012년 고객의 개인정보 2천4백6만여 건을 각각 건당 1980원 내지 2800원을 받고 보험회사에 판매했다. 또한 홈플러스는 판매된 개인정보 내역을 고객에게 통지하지 않고 오히려 보험사 제공내역을 삭제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검찰은 도성환 홈플러스 전 사장과 홈플러스 법인에 대해 각각 징역2년과 벌금7천5백만원, 추징금 231억 7천만원을 구형했다. 이 당시만하더라도 법이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 홈플러스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난 1월 1심 선고공판에서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는 “홈플러스가 법에서 요구하는 개인정보 제3자 유상고지 의무를 다했으며, 고객들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보험회사 영업에 사용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며 홈플러스 법인과 도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홈플러스는 개인정보를 획득했던 경품행사 참가용지에 ‘이름’, ‘연락처’, ‘생년월일’, ‘자녀 수’, ‘부모 동거 여부’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요구했지만 법원은 이에 대해 1mm 크기의 글씨로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던 점을 근거로 개인정보 판매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돌린 것이다.

1심 직후 여론은 들끓었다. 육안으로 보기 어려운 크기의 글씨에 대해서도 소비자의 동의로 간주했던 법원의 판결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참여연대 등 13개 시민·소비자단체들은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에 “판사는 1mm 크기의 글씨를 정말 읽을 수 있느냐”며 1mm 크기 글씨로 작성한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또 불법 제공된 개인정보 유출 내역의 통지와 관련해서 유출을 통지했던 카드사들에 배상판결이 내려졌던 것과 달리 홈플러스 측은 통지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무죄선고가 내려지자 ‘대기업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검찰도 서둘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에서는 홈플러스 개인정보 불법매매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항소심이 열렸다.

검찰은 경품행사 응모자의 개인정보와 관련해 경품응모권에 기재된 ‘보험마케팅을 위한 정보제공’은 홈플러스가 개인정보를 취득하는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경품행사의 목적이 ‘개인정보판매’임에도 이를 기재하지 않았으므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존 홈플러스 회원정보와 관련해서는 ‘사전 필터링’은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해당하는데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었으므로 이 역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당시 홈플러스측 변호인의 발언이다. 홈플러스와 라이나생명보험, 신한생명보험 측 변호인은 “검찰이 언론과 시민단체에 의해 호도되었으며 검사의 항소이유가 모호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은 2015년 3월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기자 간담회에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던 도 전 사장의 발언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혁신안을 마련해가며 쇄신하겠다던 태도는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지자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 종결 시 인과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소비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였던 장면과는 아예 정 반대의 태도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신고가 접수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 가운데 홈플러스 제품을 사용해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는 55명이며,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피해자는 모두 15명이다. 홈플러스는 ‘검찰 수사의 종결’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법원의 판결’ 이후가 아니니 조속한 보상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사과와 보상계획을 밝혔지만 소비자단체 대부분은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소송을 진행중인 소비자단체 대부분은 “홈플러스가 실제로는 보상 계획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으로 인한 여론의 타겟이 집중되자 마지못해 ‘사탕발림용 카드’를 제시했다”고 꼬집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애초에 사과와 보상 계획이 있었다면 이전에 발벗고 나섰을 것”이라며 “눈치를 보다 구체적인 계획도 꺼내지 못하면서 검찰 조사 후에 보상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위기모면을 위한 호구지책에 불과해 보인다”라고 비난했다.

지난달 17일 롯데마트가 구체적인 보상금액의 규모를 특정하고 사과하고 나서자 즉시 여론은 옥시와 홈플러스를 타겟으로 삼았다. 세 곳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던 것에 비해 한층 강해진 강도와 높아진 빈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눈치를 살피던 홈플러스는 사태의 추이가 심상치 않자 18일이 되서야 ‘사과와 보상계획마련’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26일 홈플러스 측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보상을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전담기구를 설치하기로 했다”며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홈플러스 측 외에 의학전문가 등 사회 각층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하고 정부기관과 협의해 원만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홈플러스 측은 개인정보 유출과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었다. “재판으로 넘어간 개인정보유출과 관련해서는 배‧보상안의 계획조차 마련하지 않다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과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기전부터 보상계획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홈플러스 관계자는 “두 문제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며 “개인정보유출건은 법정에서 소명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고 살균제 사망사건도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피해자들과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연 홈플러스가 가습기 살균제 사망 피해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보상을 진행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지경제=강경식 기자] 


강경식 기자 liebend@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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