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공포영화 같은 '있는 집 재산 물려주기'
<기자수첩>공포영화 같은 '있는 집 재산 물려주기'
  • 강경식 기자
  • 승인 2016.10.1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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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집단 총수에 경영권과 기업정보가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특성을 지적하며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규제에 나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2004년부터 12년간 300여 건의 대규모 내부거래 및 공시규정 위반 사례를 밝혀내며 건전한 기업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10년전 공정위의 결단을 다시 언급하는 까닭은 국내 기업계에 만연해 있는 내부거래의 성격이 아직도 사업 대물림을 위한 기반 마련이나 현금 확보를 위한 배당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넓고 깊은 가난은 ‘늪’이라는 단어와 함께 표현된다. 가난의 늪에 한번 빠지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1일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방송통신위원회의 '2016년 연령대 및 통신사별 유무선 통신요금 연체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9세 이하 미성년 연체자는 4만8천163명으로 총 62억7천900만원의 통신요금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의원이 내놓은 자료 가운데 가장 높은 연체자가 분포한 20대에서는 총 12만7천775명의 연체자가 전체 연체액의 34.8%인 439억9천300만원을 재 때 못낸 것으로 분석됐다.

늪에 빠진 흑수저 인생은 청소년기에 결정이 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용의 상태는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의 규모를 결정하게 된다. 연체 청소년은 학자금 대출을 넘어야 무사히 대학을 마칠 수 있지만 청년 연체율을 보면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을 친 신용등급은 또 다시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다. 이들에게 휴대전화 요금조차 부담스러운 가난의 도래는 과연 물려준 부모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반대로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실이 국세청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부모 등에게서 거액의 부동산을 물려받아 종합부동산세 대상자가 된 '금수저' 미성년자는 159명이며 일찌감치 재산을 증여받은 미성년자도 5000명을 넘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의 수저 물려주기는 이제 사후의 일이 아닌 것이다. 돌아가신 다음에 자녀가 알아서 받겠다고 한다면 상속세의 부담이 크고 숨겨뒀던 재산의 소유권 다툼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차라리 생전에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가는게 모양새도 좋고 가족애를 망칠 상황도 예방할 수 있다.

올해 금수저 미성년자들이 내야하는 종부세는 아파트, 다가구·단독주택 등 6억원 초과 주택(1세대 1주택자는 9억원), 5억원 초과 종합합산토지, 80억원 초과 별도합산토지 소유자가 대상이다. 다시 말해 최소한 5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한 미성년자가 지난해 159명 늘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80억원을 초과한 별도합산토지분 대상자는 2명이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종횡무진 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다. 이들 '있는 집의 어르신'들은 경영권 승계에도 꼼꼼하시다. 지난 8월 <CEO스코어데일리>는 국내 10대 대기업 가문에 속해 상장기업 주식을 보유한 미성년자가 36명이며 이 가운데 6세 이하의 영유아는 4명이라는 보도를 전했다. 이들 가운데 주식 가치가 100억이 넘는 미성년 주주는 4명이다.

영화 스토리의 핵심인 생전의 재산상속은 부동산과 주식을 넘겼다면 얼추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물가상승보다 빠른속도로 상승하는 부동산을 물려받았다면 평생 먹고사는 문제에서 자유롭다. 여기에 탄탄한 대기업의 주식도 물려받았다면 최소한 대기업 경영권의 일부를 보유했다는 사회적 지위와 향후 진로의 방향까지도 확보한 셈이다. 숫자로 보이는 재산을 넘겨준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외려 상실감은 적다. 이들은 부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위와 이에 따른 특혜들이 가득한 환경까지 포괄적으로 물려주는 것이다.

흥행 보증수표인 신스틸러가 등장할 차례다. 주연을 도와 큰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판을 완성하는 열쇠는 새로운 사업의 도전이다. 기업을 하나 만들면 부를 세습하는 그림은 완성된다. 계열사로 편입하는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기존 기업의 역량을 투입해서 그럴싸한 회사 하나 만들면 될 뿐. 다만 조연답게 주주와 언론이 만드는 잡음을 조용하게 해야한다. 늘 그렇듯 신스틸러는 정치인일 수도 있고, 오래된 집안의 가신일 수도 있다. 

참고로 뻔한 패턴의 영화라는 지적을 피하려면 새 회사가 아닌 인수합병도 좋은 방법이다. 부모가 보유한 기존 기업의 필요를 채워주는 성격의 업체라면 더욱 훌륭하다. 예를 들어 과자만드는 기업은 자녀에게 포장재 회사를 차려줬다. 그룹이 문어발 사업을 하고 있다면 소모성 자재 유통업의 대주주로 밀어준다. 다만 조용하게 진행될 필요가 있다.

투자를 많이 할수록 영화의 흥행에 대한 기대는 커지기 마련이다. 이럴때 필요한건 감동이다. 임팩트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리에 크게 남는다. 일단 사고를 치고 잘 수습했다고 포장하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예컨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 마약에 손을 대거나, 포장도 안 뜯은 땅콩을 내놓았다며 비행기를 거꾸로 돌리는 정도는 돼야한다. 자식에게 잘 물려주겠다는 목표 하나로 남편이 죽은 이후 회사를 살리기 위해 경영에 도전하는 전업주부의 스토리는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사용하던 금수저를 녹여 자식에게 물려줬다. 물려받은 기업과 부동산의 가치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보유한 부는 앞으로 더욱 커다란 부를 낳을 것이다. 늘 그렇듯 성공한 영화는 후속편이 등장한다. 이제 물려받은 부모의 수저는 이들의 자녀가 성인이 되기 전 또 다시 대물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분간 이런 영화같은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있는 집안의 수저 물려주기’를 탐구해 볼 계획이다. 물려주기에 혈안이 된 기업들의 백태가 드러난 기사를 읽다 보면 얼굴이 벌게지고 혈압이 오를 수도 있다.

취재가 일부 진행된 상황에서 그간 우리가 양심기업으로 알고 있던 몇몇 기업의 민낯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실이 그렇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속담은 백태로 드러나고 있다.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부족하다는 답답함과 할 수 있는 것이 알리는 것 뿐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그러니 열심히 알려 보려한다. 참고로 당신의 신뢰가 부서질 수 있으니 심신 미약자와 노약자의 주의를 당부한다.


강경식 기자 liebend@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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