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보호한다던 금리 상한제, 이제 보니 '대출 장벽'
약자 보호한다던 금리 상한제, 이제 보니 '대출 장벽'
  • 정석규 기자
  • 승인 2023.12.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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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로 도입된 최고금리 규제, 저신용·서민 대출 기피로 이어져
최고금리 연 20% 묶인 대부업…이익 남지 않아 신규대출 중단
금융당국 "저신용자 자금 공급 확충이 우선...관련 대책 논의 중"
지난 2021년 참여연대,금융정의연대 등 단체 회원들이 주최한 ‘불법·미등록 대부업 근절,이자제한법·대부업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이지경제=정석규 기자] 법정 최고금리 20%에 묶여 대부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되면서 서민들의 대출 통로가 사라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저신용·서민들의 이자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조치로 법정 최고금리를 연 66%에서 연 20%로 인하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실적 악화에 빠진 대부업체들이 서민 대출을 중단하자 서민들이 고금리 불법 사금융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자문 역할을 하는 국회입법조사처는 ‘금리인상기, 대부업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 법정 최고금리 규제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대부업체의 과도한 이자 수취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로 도입된 법정 최고금리 규제가 금리인상기에 역설적으로 대부업 시장에서 취약계층의 금융소외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정 최고금리 인상 검토, 연동형 최고금리 규제 도입 논의, 정책서민금융상품 공급, 불법 사금융 범죄에 대한 정부 대응 강화 등 금융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개선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법정최고금리는 최초에 연 66%였으나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일부 취약차주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 계속 인하됐다. 2018년 2월에 27.9%에서 24%로 낮아졌고 2021년 7월부터 20%가 적용되고 있다.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과 이자제한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저금리가 끝나면서 법정최고금리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2021년 하반기 이후 긴축 통화정책이 본격화했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했다.

일련의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금리인상기 역마진이 발생한 주요 대부업체들이 개점휴업하면서 신규대출 공급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서민금융상품 공급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저신용·서민들은 대부업체에서도 급전을 구하지 못하면 불법 사금융 시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

법정최고금리 규제와 취약계층 금융소외 현상을 설명하는 수요·공급 그래프 이미지=국회입법조사처

대부업체 입장에서는 원가인 조달금리와 비용인 연체율(대손비용)이 아무리 높아져도 법정최고금리라는 가격상한제 규제 때문에 판매가격에 해당하는 대출금리는 연 20% 초과해 받을 수 없다. 부실 가능성이 큰 취약차주에게 대출을 하면 할수록 수익성이 나빠지는 역마진이 우려되는 상황이 됐다.

주요 대부업체들의 대출정보를 보유한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대부업체 상위 15개사의 신규 차입금리는 2022년 중반 5%대에서 2022년 말 이후 7~9% 수준으로 급등했다. 상위 25개사의 연체율은 2022년 중반 약 7%대에서 올 9월 13.4%로 약 2배 증가했다. 대부업체들은 역마진을 피하기 위해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축소하는 등 대출 장벽을 높였고 그러면서 대출 잔액이 급감했다. 69개사의 신규대출액과 신규이용자는 올 9월 834억원과 1만1253명으로 2022년 1월보다 각각 78%·64% 감소했다.

대부업 시장의 이같은 거래 감소는 불법 사금융 확대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늘어난 저신용·서민들의 급전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민간에서는 사실상 대부업체 외에는 없는 제도권 금융시장 구조에서 초과 자금 수요가 불법 사금융 시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문제가 깊게 깔려 있다.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3분기 신용대출상품 금리를 공시한 32개사 중 28개사의 평균 대출금리가 법정최고금리인 연 20.0%였다.

대부업 시장마저 이용할 수 없는 취약차주는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가 접수한 피해상담·신고 건수는 2019년 연간 5468건에서 올해는 상반기에만 6784건을 기록했다.

불법사금융 시장은 제도권 밖에서 이뤄지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 규모를 정확하게 측정하기가 어렵다. 공식통계가 없기 때문에 금융당국이나 학계의 추정치가 모두 다를 정도다.

하지만 불법 사금융 시장 규모가 확대될수록 그 이용자 피해 역시 증가한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불법사금융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강산 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 금융공정거래팀 입법조사관은 “법정최고금리가 자금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될 시장균형금리보다 낮으면 시장균형금리에서 대부업 시장을 이용할 수 있던 일부 취약차주가 시장에서 배제되는 금융소외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일부는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옮겨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법정최고금리를 인상하는 방안과 시장금리나 기준금리에 연동하는 연동형 최고금리 규제도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대부업 시장이 안정화할 때까지 정책서민금융상품 공급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김 입법조사관은 “최근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법정 최고금리는 조정되지 않아 대부업 시장기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그동안 이어져 오던 법정 최고금리 인하 기조는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속하게 논의할 시점이 됐다”고 촉구했다.

금융당국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거나 연동형으로의 전환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상하면 발생할 수 있는 후폭풍이 크기 때문이다. 가령 신규 대출자의 금리가 인상되고 이미 불법사금융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의 금리도 대폭 급등하는 등의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당국은 기존 제도의 보완을 통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우수 대부업체에 대한 인센티브다. 지난 2021년 도입된 우수 대부업자 제도는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 등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지난 6월말 기준 은행 차입액은 1447억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대부업 등 3금융권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우수 대부업자 제도를 보완하고, 저신용층에 대한 자금 공급 제도를 확충해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라며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석규 기자 news@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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