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돋보기] 은행 노사, ‘점심시간’ 놓고 힘겨루기…“점심 먹을 권리” vs “고객 불편 초래”
[이지 돋보기] 은행 노사, ‘점심시간’ 놓고 힘겨루기…“점심 먹을 권리” vs “고객 불편 초래”
  • 문룡식 기자
  • 승인 2020.06.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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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픽사베이
사진=뉴시스, 픽사베이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은행 노사가 점심시간 문제로 격론을 벌이고 있다.

은행원들은 “점심 먹을 권리”를 주장하며 ‘중식시간 동시 사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은행권은 점심시간에 고객이 가장 많이 몰리기 때문에 고객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법적으로 주어진 노동자의 휴식 권리와 금융산업 특성을 고려한 고객 응대가 첨예한 대립각이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박홍배)은 올해 금융사용자협의회와의 산별교섭에서 점심시간에 영업점의 문을 닫고 모든 직원이 동시에 식사하는 이른바 ‘점심시간 셧다운’을 요구했다.

요구 근거는 하루 8시간 일하면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이 주어지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은행원의 휴게시간도 보장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일선 은행 영업점들은 직원들이 교대로 식사를 해 점심시간인 오후 12시부터 1시에도 문을 닫지 않고 업무를 이어나가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같은 운영 방식이 휴게시간 1시간을 온전히 사용하기 힘든 구조라는 주장이다.

고객이 몰려 바쁘거나 휴가, 연수 등으로 직원이 평소보다 적을 경우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빠르게 복귀해야 하는 탓이다.

통상 은행 영업점에 고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점심시간 전후다. 직장인들이 은행 업무를 위해 점심시간에 짬을 내 방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점심시간은 늘 바쁘고, 은행원들은 20분~30분 식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노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은행원의 휴게시간 1시간 사용 비율은 26%에 불과했다.

은행원 점심시간 보장 요구는 2018년에도 나왔던 사안이다. 이에 휴식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컴퓨터가 꺼지는 PC오프(OFF)제와 스크린 세이버가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올해 다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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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은행원들이 노동자의 휴식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늘 반대의 목소리가 더 거셌다.

은행은 평일 오후 4시면 문을 닫고, 주말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 아니면 은행을 찾을 시간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문을 닫는다면 직장인들의 은행 방문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양모(32세, 남)씨는 “최근에 이사 때문에 전세대출과 관련해 은행을 방문할 일이 잦았는데, 평일에는 갈 시간이 점심시간 밖에 없어 식사를 거르고 방문했다”며 “점심시간에 문을 닫는다면 은행 업무 보려고 휴가라도 써야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사측 입장에서도 영업점 ‘셧다운’은 달갑지 않은 일이다. 비대면 거래 비중이 늘어 영업점 내방 고객이 줄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대면 영업을 강화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야 하는 과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대출 상담 등을 위해 은행을 찾는 수요도 많다.

더욱이 최근의 점포 통폐합 등으로 고객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이같은 상황에서 주력 영업시간인 점심시간에 문을 닫으면 영업 자체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점 내 직원이 동시에 식사하러 가려면 대기 중이던 고객을 내보내고, 업무를 보던 고객도 점심시간 끝나고 다시 오라고 해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며 “은행원의 권리 보장은 지켜져야 하지만, 서비스 산업인 은행 지점이 일정 시간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피력했다.

이에 금융노조는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지역별로 근접한 지점끼리 문 닫는 시간이 겹치지 않게 점심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해 운영하자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서울 종로 1~3가에 A은행의 B·C·D 3개 지점이 있다면 B지점은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점심시간을 갖는다. 다른 C지점은 12시부터 1시까지, D지점은 1시부터 2시까지 점심시간을 쓰는 방식이다.

영업점별 점심시간과 영업 현황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과 인터넷 홈페이지,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고객들에게 사전에 안내해 혼란을 방지하자는 의견이다.

익명을 원한 금융노조 관계자는 “교대 식사 방식은 고객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업무 인원이 줄고 업무처리 시간이 되레 증가해 소비자 불편을 초래 한다”며 “식사교대 대신 지정된 시간에 모두 식사를 하면, 이후 고객이 몰리는 시간에 전 직원을 동시에 투입해 원활한 업무처리가 가능하고 고객의 대기시간도 감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업점 문을 닫기보다는 은행에서 인력 충원 등의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예전에는 이같은 불만이 나오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서 지속적으로 불거지는 것은 결국 영업점 인력이 줄어서 그런 것"이라며 “인력을 더 배치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직원 휴게시간을 보장해야지, 문을 닫아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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