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별세, 그를 무너지게 만든 것은?
‘민주화 운동의 대부’ 김근태 별세, 그를 무너지게 만든 것은?
  • 김영덕
  • 승인 2011.12.3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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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파키슨병 앓아‥민주화 운동때 무려 10차례 전기고문과 물고문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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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경제=김영덕 기자]‘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알려진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 6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실 김 상임고문은 수년째 파킨슨병을 앓아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달만에 숨을 거뒀다.

 

주요 언론에 따르면 김 상임고문 측은 "뇌정맥혈전증의 근본적 치료가 안 되고 폐렴, 신장염 등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병세가 급속히 악화됐다"고 전했다.

 

특히 김 상임고문은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민주정부 수립 이후에는 재야 출신 정치인 그룹의 좌장으로서 정계의 거목이었다. 한때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기도 했으나 꿈을 이루진 못하고 지병으로 몇 년 동안을 정치활동이 미진했었다.

 

서울대 재학중이던 71년 서울대 내란음모사건으로 수배받은 것을 시작으로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그의 청.장년 시절은 민청련 사건ㆍ전민련 활동 등으로 수배와 투옥을 되풀이하면서 민주화 투쟁의 화신이었다.

 

군사정권 시절인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기술자'로 불린 이근안 경감 등에게 무려 10차례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받는 등 혹독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가 투병한 파킨슨병도 고문 후유증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95년 당시 민주당 부총재로 제도 정치권에 진입한 뒤 이듬해 15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서울 도봉갑에서 내리 3선에 오르며, 야권의 화려한 정치 지도자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당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양심고백을 하고 "아름다운 꼴찌를 기억해달라"며 경선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등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다.

 

특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오랜 동지 이었으며, 정책 등에서 이견이 있을 때 ‘할 말은 하는’ 정치인으로 알려져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거치며 개혁성과 탁월한 논리력을 겸비한 정치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에는 침체기를 맞이했다. 이후 진보세력까지 포함하는 민주세력 대연합을 시대적 과제로 삼아 통합의 산파 역할을 도모하면서 내년 총선에 재기를 모색했으나 결국 병마를 그를 멈추게 만들었다.

 

유족으로는 로버트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한 부인 인재근씨와 1남1녀(병준ㆍ병민씨)가 있다.

 

한편, 김 상임고문의 조문은 30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된다. 서울대병원 측은 "현재 임시분향소가 설치돼있다"며 "오전 10시부터 정식 분향소에서 조문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영덕 rokmc3151@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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