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제시장' 아픔을 품은 우리들의 경제사
[리뷰] '국제시장' 아픔을 품은 우리들의 경제사
  • 자유기고가 황영식
  • 승인 2014.12.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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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격동의 60년 그때 그 장소 그리고 희생

국제시장을 잘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영화 속 시대상을 잘 파악해야 한다. 영화의 제목은 국제시장이지만 주 무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저 주인공의 발을 잡게 되는 장치 역할이 더 크다. 주인공 ‘덕수’가 회상하는 씬의 다양한 공간과 시간적 배경을 신경써봄으로써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6·25 전쟁이 발발한다. 그 이면에는 각각의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탄생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심지어 가족까지도) 잃은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모든 게 무너진 50년대 한국에서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나라들의 인도적인 지원과 삼백산업으로 통칭할 수 있는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곧 침체를 겪게 되는데 인도적 지원의 주 공급 루트인 미국의 지원정책의 변화에 따라 지원금이 삭감되면서 몰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별다른 방법도 없이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그 시절 60년대 한국이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성장 동력은 바로 인력수출이었다.

   
 

1961년 한국은 서독에 차관을 받고 인력을 수출하는 형태로 조약을 맺게 된다. 바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하는 게 그것이었는데, 서독인들의 인종차별적인 시선과 열악한 삶을 이 악물고 버티고 버텨 돈을 벌어 그들의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덕분에 한국은 경제적 상황을 타계할 만한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그 후 한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차관 지원 그리고 중화학 공업의 발달과 함께 80년대의 3저 호황을 틈타 세계적인 경제성장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60년대의 그들의 희생이 큰 힘을 발휘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확대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산업화를 이룩하기까지 부모님들 세대가, 당신들이 그만큼의 보상을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도리어 사회의 흐름에서 배제되고 방치되어 있다.

떠돌이들을 위한 반성 없는 자화상

이처럼 영화는 덕수의 회상을 통해 한국의 슬픈 단면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개는 상처받은 우리의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는 예술적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은 반쯤은 맞고 나머지 반쯤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캐릭터들의 특성과 대사가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거칠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메인 화자인 ‘덕수’의 행적을 통해 영화를 파헤쳐보자.

덕수는 이 영화에서 돈이 없어 가족을 떠나 타향살이를 해야만 했던, 상처투성이 가장의 상을 대표한다. 큰 배를 끄는 선장이 되고 싶었던 그는 아버지와 강제로 헤어진 후 남겨진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가장으로써의 책임감 때문에 꿈을 일찍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억척스럽게 번 돈을 가족을 위해 다 나누어 주는 어쩌면 바보적인 측면도 있다.

둘째 동생 승규의 대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파독행을 결정하고 죽을 위기를 맞기도 한다. 그러나 덕수의 시련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고모가 힘들게 이끈 ‘꽃분이네’를 고모부가 팔려 하자 무리해 그 가게를 사게 된다. 거기다 막내 끝순이를 결혼시키기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했던 그는 전쟁과 테러가 만연한 베트남 전쟁에 물류업체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덕수는 다리가 불편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덕수의 시대를 살아가는 행보는 지나치게 희생을 강요하는 부모님 상을 그려내고 있다. 동정할 만하고 또한 이해할 만한 스토리이다. 그러나 넘겨짚고 가야할 부분이 있는데, 지금은 7, 80년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덕수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20, 30대는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다고 전개가 매끄럽다고 할 수도 없다. 파독을 가서 엄청난 돈을 벌어와 자수성가할 수 있었던 ‘덕수’가 굳이 베트남 파병까지 갈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충분히 억지전개로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거기다 감독 특유의 신파적인 연출이 합쳐지면서 중요한 순간 맥을 끊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관객에게 억지감동을 유발하는 것을 보며 개인적으론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일차원적인 캐릭터성과 신파적인 연출 그리고 작위적인 전개로 인해, 시대의 아픔을 그려낼 수는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 시대에 살던 ‘덕수’ 개인의 삶은 전혀 그려내지 못해 그 점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그리고 그 ‘덕수’ 자신의 사고가 부재됨으로써 이야기 중심에 막을 수 없는 큰 구멍을 남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대상과 ‘덕수’ 그리고 반성 그리고 지금의 사회

이 작품을 관통하는 영화의 키워드를 꼽자면 바로 이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 고생을 우리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

많은 생각이 드는 문장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뭉클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고생의 길을 걸어온 지금의 조부모 세대가 성찰하는 모습을 찾는 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욕심이었을 지도 모른다.

   
 

베트남전의 베트콩을 다분히 한국인의 시선에서 악인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하는 것을 보며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트콩들이 왜 마을 주민들을 학살하려 했는지, 또 그런 역사가 우리에겐 없었는지 감독 개인의 성찰은 보이지 않고 성급하게 베트남전을 집어넣은 것은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실례이며, 그곳에 가 몸만 상해 돌아온 베트남 파병 군인들에 대한 모욕이라 할 수 있다.

영화상의 ‘덕수’는 너무나 착해서 거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어찌 보면 메리 수에 가깝다. 이 시대엔 보기 힘든 심성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는 한명의 이방인이자 방관자이며 어쩌면 평화롭던 그들의 삶을 파괴하러 온 적으로까지 생각할 것이다.

<국제시장>은 60년 간 쉼 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고 정작 당신들 자신은 돌보지 못한, 지금은 아픈 몸만 남은 떠돌이들을 위한 자화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난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그들의 삶은 ‘덕수’만큼 평면적일 수밖에 없었나.”

필자는 이 영화를 이렇게 평가한다.
‘성찰 없는 행동의 반복은 언젠가 그들 자신에게 돌아온다.’

   
 

윤제균 감독은 어르신들의 시대상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2, 30대가 공감할 만한 측면을 어느 정도 포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감독은 현재의 2, 30대에게 어떻게 60년대의 2, 30대가 가지고 있던 시대상을 얼마나 이해시킬 책임을 가져야 한다.

지금 이 시대 어느 공간에선 노구가 되신 당신들과 곧 사회의 중심이 될 2, 30대 사이의 오해와 갈등이 산재해있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지 않는다면 영화도 또한 당신들의 목소리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6, 70대 세대의 아픔을 포용하려 하고 있다. 그럼 그들을 위해 한 번쯤 그들의 과오도 성찰하는 모습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자유기고가 황영식]

* 본 리뷰는 이지경제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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