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권력 모두 놓친 기업가 정치인들
돈·권력 모두 놓친 기업가 정치인들
  • 윤병효 기자
  • 승인 2015.04.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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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기업가 권력쟁취 위해 정치 도전, 경영 외도 사이 기업 쇠락

신이 인간에게 물었다. 돈과 권력 중에 무엇을 택하겠냐고. 세상의 이치가 주는 답변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둘 다 택하겠노라고 하는 인간에게 신은 단호하게 말한다. “욕심쟁이에겐 하나도 줄 수 없다.”

 

천문학적 부를 이룬 성공한 기업가들은 다음 쟁취 목표로 권력 최상위층에 있는 정치가가 되길 원한다. 기업가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처음에는 순조로운듯 보이지만 결국은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기업경영과 정치는 그 DNA부터가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결과이다.

대표적 사례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들 수 있고, 한때 대권까지 도전했다가 최근 창사이래 최대 위기에 몰린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둘은 51년생 동갑내기다.

◆자수성가의 표본에서 실패의 아이콘으로…

지난 4월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한때 2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던 대기업의 회장이자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성공신화의 아이콘으로 불린 그였기에 국민들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 지난 10일 충남 서산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자살까진 아니더라도 그의 내리막길은 예상된 결과였다는 말이 나온다. 기업가 정치인으로서의 한계가 그렇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1951년 충남 서산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3살 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가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돈을 모은 뒤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27살이던 1977년 서산토건에 입사해 회사를 200만원에 인수하면서 경영자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79년 충청권 서열 3위 대아건설을 인수한 뒤 1993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2003년 대아건설이 총자산 7000억원, 매출액 8300억원의 거대 건설사로 성장한 그해, 성 전 회장은 절정의 경영력을 발휘했다.

대우그룹 해체로 매물로 나온 경남기업의 지분 51%를 인수해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대아건설을 흡수합병시켜 지금의 경남기업을 만들었다. 이후 경남기업은 쑥쑥 성장해 2010년 매출액 1조6000억원의 최고 기록을 달성했으며, 시공 순위도 2001년 29위에서 2010년 17위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은 뭔가 아쉬웠다. 돈은 벌을 대로 벌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권력이다.

80~9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 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정치권 등 권력자에 줄을 대지 않고선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이 때 성 전 회장은 권력의 힘과 대가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성 전 회장은 정치권으로 눈을 돌렸다. 2000년 충청도 출신 정‧관계 인사와 언론인으로 구성된 충청포럼을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정치권 인맥을 쌓은 그는 16,17,18대 총선에서 연거푸 미끄러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드디어 그토록 열망하던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가 세운 서산장학재단이 선거법 위반으로 걸려 2014년 6월 대법원 판결에서 벌금 500만원을 받아 당선이 무효됐다.

성 전 회장은 그의 정치생명뿐만 아니라, 그의 분신과도 같은 경남기업도 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가 정치권으로 10여년을 외도한 사이 계속된 적자로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

성 회장은 다시 경영자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이번엔 항상 여당 편에 붙었던 그의 정치이력이 발목을 잡았다. 박근혜 정권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첫 번째 희생타로 경남기업을 지목했다. 검찰은 해외 자원개발 비리로 경남기업을 수사하기 시작했지만 여의치 않자 성 전 회장의 가족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했다. 돈과 권력을 모두 잡으려던 그의 욕심이 올가미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성 전 회장은 ‘신뢰’없는 정치권의 쓴맛만 탓한 채 지난 4월 9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기구한 삶은 자수성가의 표본에서 전형적인 실패한 기업가 정치인의 이정표가 되고 말았다.

◆황태자도 어쩔 수 없네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은 성 전 회장과 달리 황태자로 시작한 기업가 정치인이다.

정 전 회장은 성 전 회장과 같은 1951년에 태어났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으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학사, MIT슬론스쿨 경영학석사과정(MBA)을 졸업하며 후계자로서의 경영교육을 탄탄하게 받아왔다.

▲ 정몽준 전 현대중공업 회장

1987년 이미 현대중공업 회장직을 맡고 있던 그는 2001년 정주영 창업주가 사망하고 2002년 현대그룹이 계열분리 될 때 현대중공업그룹을 물려 받으며 명실공히 그룹 오너가 됐다.

정 전 회장은 단지 재벌 2세일 뿐이라는 세간의 선입견을 많이 받고 있지만 그의 사업수완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그가 그룹을 물려 받을 당시 2002년 현대중공업은 자산 9조4500억원, 매출액 7조6000억원이었으나 2014년에는 자산 53조3800억원, 매출액 52조5800억원으로 6배 이상 커진 세계 굴지의 조선그룹으로 성장했다.

정 전 회장은 성공한 기업가로서의 이력을 차곡차곡 쌓아 가다 1983년 갑자기 정치계에 발을 들였다. 1983년 대한양궁협회장을 맡은 그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현대중공업 사업장이 있는 울산에 출마해 첫 금뱃지를 달게 됐다. 이후 울산은 그의 텃밭이 돼 14,15,16대 총선까지 이어갔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장을 맡으며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세를 몰아 그해 12월에 치러진 16대 대선까지 출마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에 나섰다가 투표 하루 전날 지지 철회를 발표해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이후 정 전 회장은 2014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며 다시 한 번 정치가로서 큰 꿈에 도전했으나 아들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는 등 고전 끝에 민주당 박원순 후보에 밀려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정 전 회장 역시 정치에서 쓴맛을 본 사이 그의 그룹은 심각한 실적 악화에 시달리게 됐다. 현대중공업은 겉보기엔 매출이 계속 성장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영업이익이 2010년 5조6000억원에서 2014년 –3조2500억원으로 형편없이 추락해 속 빈 강정이 되고 말았다.

이를 두고 정 전 회장이 정치권에 외도하면서 세계경제 흐름에 맞는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올해 역시 수주 감소와 저가수주로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정 전 회장은 노조로부터 신임을 잃은 것이 가장 큰 타격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20년 가까이 무분규 파업으로 귀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2014년 임단협이 올해에서야 끝났고, 통상임금 협상도 남아있으며, 무엇보다 대규모 인원감축이 진행되는 등 노조와 사측은 극한대립을 이루고 있다. 노조는 정 전 회장이 정치에 외도하며 실경한 잘못을 왜 노동자들이 뒤집어 써야 하며 정 전 회장을 비난하고 있다.

지금은 정치에서도, 그룹 경영에서도 물러나 두문불출하고 있는 정 전 회장의 모습에서 기업가 정치인의 씁쓸함이 풍기고 있다.

[이지경제=윤병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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