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양제넥스도 내 의지까지는 뺏지 못할 것”
[인터뷰]“삼양제넥스도 내 의지까지는 뺏지 못할 것”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5.05.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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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법적분쟁 벌이는 IDB 대표 백창훈씨

“삼양제넥스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나쁜 기업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반평생을 살았던 백창훈(52) 씨의 일갈이다. 백씨는 27살에 한국을 떠나 인도네시아에서 활동한 기업가다. 현지에서 운영하던 법인만 6개에 이를 정도로 인도네시아에서 잔뼈가 굵었다. 십년 전 IT회사를 운영하던 백씨는 바이오연료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카사바’를 알게 됐다. 카사바는 아열대·열대 구근류 식물로 전분에서 에탄올을 추출할 수 있다. 이른바 바이오에탄올이다. 이 카사바 때문에 백씨의 인생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 ‘삼양IDB’ 합작법인을 설립·운영했던 백창훈(52)씨

백씨의 인도네시아 법인인 ‘IDB 바이오 알앤디 디벨로프먼트(이하 IDB)’는 ‘ISC(IDB Super Cassava) 재배법’이라는 기술을 개발한 회사다. 이 기술은 웃자람이 심해서 인도네시아 현지인조차 재배를 꺼리는 ‘다룰 히다얏’이라는 카사바 품종에 대한 대량생산 재배기술이다.

IDB사가 개발한 생산기술로 카사바를 재배하면 일반 카사바 재배법을 사용했을 때와 비교해 작물의 성장과 발육이 훨씬 크고 줄기 두께도 몇 배나 차이가 난다. 같은 규모의 땅에서 재배할 때 최소한 두배 이상의 수확량이 확보된다. 향후 바이오연료 시장의 전망과 비전을 고려하면 일종의 혁명과도 같은 재배기술인 것이다.

◆삼양제넥스, 수확자금 중단해놓고 “카사바 시험재배 실패”

백씨는 이 ISC 기술을 상용화하는 과정에 거의 전 재산을 투입했다. 그러고도 자금이 부족했다. 카사바 변종에 대한 기술특허를 진행할 자금조차 여력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다행히 백씨 회사의 기술적 가치를 알아본 기업들이 있었다. 미국 듀폰사와 한국의 SK에너지다. 백씨는 미국 듀폰사보다 고국의 기업인 SK에너지를 협력 파트너로 삼고 조건 조율에 나선 즈음 갑자기 삼양제넥스가 끼어들었다. 삼양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부사장까지 올랐던 지인을 통해 삼양제넥스와의 합작을 요청해 온 것이다. 지인의 추천에 마음이 움직인 백씨는 2009년 9월 본 계약을 체결하고 인도네시아에 ‘삼양IDB’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자본은 삼양제넥스가 대고 백씨는 묘목과 농지확보, 경작 및 수확 등과 관련한 일을 수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90만평 규모의 카사바 농장을 세웠다. 인도네시아 발리 인근 NTT주 서부에 위치한 망가라이(Manggarai) 지역이다. 백씨 회사의 ISC기술 상용화를 위한 시험재배가 시작된 것이다. 백 씨의 악몽이 시작된 것도 이 때부터다.

합작법인 제의 때와는 달리 본 사업에 들어가면서 삼양제넥스의 지원은 매끄럽지 못했다. 필요한 시점에 투입됐어야 하는 자금이 시차가 자꾸 생겼다. 요청한 자금이 두 달가량 밀려서 지급되는 일이 잦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카사바 재배과정이 자주 꼬였다. 재배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2년에 삼양제넥스가 국내 언론을 통해 ‘인도네시아 합작법인 삼양IDB의 슈퍼카사바 원료사업이 3년간 시험재배 끝에 실패했다’고 밝히고 나섰다. 삼양제넥스의 발표에 대해 백씨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매끄럽지 못한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 속에 재배한 카사바를 수확하지 못한 것은 삼양제넥스가 수확작업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지 재배 자체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수확을 못 하게 해놓고 시험재배를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수확작업을 했어야 수확량에 대해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백씨는 공들여 키운 카사바를 갈아엎어야 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삼양제넥스에 대해 비난 수위를 높였다.

“카사바는 원래 실패가 없어요. 썩더라도 카사바 전분은 따로 쓸 수 있습니다. 이런 카사바의 수확자금을 주지 않고서 실패를 운운하는 것은 명백히 삼양제넥스의 잘못입니다.”

IDB와 삼양제넥스의 합작법인은 2011년 말로 문을 닫았다. 약 2년간의 물리적 결합이 파경을 맞은 것이다.

이에 대해 백씨는 “삼양제넥스가 의도적으로 시험재배를 실패로 몰고 갔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양사의 파경에는 2010년 5월에 바뀐 인도네시아 외국인 투자관련 투자제한 업종 목록이 발단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수수와 카사바 등 식용 농산물은 인도네시아 식량산업 보호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을 기존 95%에서 49%로 낮춘다는 내용이 대통령 시행령으로 발표된 것이다.

백씨는 합작법인 삼양IDB는 개정안이 발표되기 1년 전에 설립됐고, 개정안은 소급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는 판단이었지만 삼양제넥스 측은 입장이 달랐다. 법 개정과 같이 주요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백씨 측의 귀책사유라며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백씨는 소급 규정이 없어 사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게다가 코트라 자카르타 무역관이 게시판(www.kotra.or.kr/jakarta)에 ‘카사바는 소급적용 된다’고 잘못 게시한 것도 큰 원인이 됐다. 이런 저런 이유로 더 이상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삼양제넥스는 ‘시험재배 실패’를 선언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이에 따라 합작법인 삼양IDB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삼양제넥스에서 파견된 직원도 회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후 삼양제넥스는 ‘총 260만 달러를 투입했지만 수확을 하지 못 함으로써 금전적 피해를 봤다’며 백씨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단순한 손해배상 소송이 아니었다. 사기, 사문서 위조, 횡령 혐의다.

◆기밀유지 위해 백씨 12만평 종묘장 불태웠는데…횡령·사기죄로 고발당해

백씨의 반발은 당연했다. 260만 달러라는 투입 자금을 본 적도 없고, 자금의 사용내역조차 제대로 보고 받은 적이 없다는 게 백씨의 입장이다. 자신이 받은 돈은 카사바 수확시기 이전까지 받았던 재배비용 45만 달러 정도라는 것.

   
 

게다가 삼양제넥스가 제기한 사기혐의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삼양제넥스 측 주장은 ‘다룰 히다얏이라는 카사바 품종은 인도네시아 농업부가 특허를 받아 공개한 모종인데 마치 백씨가 자신이 개발하고 특허출원한 신품종인 양 속였다’는 것.

그러나 백씨는 ISC 기술이 모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백씨 회사가 개발한 재배기술임을 수차례 전달했고, 삼양제넥스 측이 이를 모를 리 없다는 입장이다. 합작 전 제출한 수많은 서류에서 ‘ISC는 IDB만의 다룰 히다얏 종의 재배법, 재배기술로 변종에 대해서는 특허기술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렸고, 삼양제넥스 측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합작계약 체결 전인 2009년 8월 31일에 다룰 히다얏 종은 공개특허 모종이라는 인도네시아 농업부 장관의 결정문을 두 차례에 걸쳐 보내준 점을 들었다. 해당 모종이 공개특허임을 일부러 알려준 다음 다시금 삼양제넥스 측에 자신이 특허출원을 했다고 속일 바보가 어디 있느냐는 주장이다.

“삼양제넥스라는 대기업이 그렇게 허술합니까? 그 많은 문건에 ISC 기술에 대한 개념 정리가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데 그걸 속았다고요? 제가 아니고 삼양제넥스가 사기를 친 겁니다.”

삼양제넥스가 발을 빼기로 결정한 이후 인도네시아 종묘장 12만평을 불태웠던 것은 백씨에게 두고두고 한이 되고 있다. 명목은 합작법인이 보유한 기술의 기밀유지를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만 백씨가 피땀으로 일궈온 모든 것들이 잿더미로 변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삼양제넥스 측이 종묘장 소각의 대가로 약속한 75만 달러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75만 달러를 빌미로 횡령 혐의가 씌워졌다. 삼양제넥스 김모 부회장이 25만 달러를 회계상 종묘구매 명목으로 처리하고, 농어촌공사 융자가 나오면 50만 달러를 추후 보전해주기로 해놓고 갑자기 안면을 바꿨다는 것이다.

25만 달러 상당의 종자구매의뢰서가 돈은 나갔는데 들여온 종자는 없다는 횡령의 증거로 돌변한 것이다. 백씨는 그 종자구매의뢰서를 작성한 사람이 합작법인의 회계부장 김모 씨가 작성한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어느 것 하나 납득이 가는 것이 없건만 백씨는 재판에서 패했다. 자금 난에 허덕이다보니 실력 있는 변호사를 채용하지 못한 것이 빌미가 됐던지 제대로 된 변론 한번 못해보고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2012년 말부터 3년간 백씨는 인도네시아에서 징역을 살았다. 이국 땅 인도네시아에서 성공의 꿈을 키워왔던 백씨로서는 너무도 억울한 일이 생긴 것이다.

“지금도 억울해서 잠이 안 옵니다. 잘못한 일로 징역을 살면 억울하지나 않지 열심히 기술 개발하고 정성껏 카사바 키운 것밖에 안 했는데 내가 왜 벌을 받아야 합니까. 사기요? 횡령이요? 사문서 위조라구요. 정말 대기업이 이래도 됩니까?”

출소 이후 백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한국에서 다시 삼양제넥스와의 법적 다툼에 돌입했다. 작년 말에는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내 억울함을 호소한 끝에 재수사를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이미 백씨의 심신은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구속 중에 인도네시아 보안대장이 재배법 자료를 내놓으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엄청 두들겨 맞았습니다. 당뇨와 고혈압이 심해져서 눈 수술을 받아야 했고, 디스크도 생겼습니다.”

◆백씨 삼양제넥스에 공개 사과 바랄 뿐…“중기, 자력으로 일어서라”

몸만 망가진 게 아니다. 가정도 산산조각이 났다. 인도네시아 사람인 아내가 당시 2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라졌다. 다른 3명의 아이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있다.

백씨가 삼양제넥스와의 전쟁을 멈추지 않는 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는 명분 때문이다.

“3년간의 옥살이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서 끝까지 싸우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삼양이 신문지면을 통해 공개사과를 할 때까지 물러설 생각이 없습니다.”

백씨의 바람과는 달리 삼양제넥스 측의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상태다. 오히려 한국 법원에 백씨와 백씨가 대표인 ID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삼양제넥스 측 태도에 백씨는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른 중소기업인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아무리 자금이 부족하고 힘든 상황이라도 대기업의 합작 유혹에 빠지지 말고 자력으로 이겨내라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게 내미는 손은 ‘상생(相生)’이라고 포장된 ‘살생(殺生)의 손’이라는 것이다.

“늘 자본이 아쉬운 중소기업에게 대기업의 합작 제의는 큰 유혹입니다. 단기간에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겪어 보기 전에는 모르죠. 조금 늦더라도 자기 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살려고 손을 잡지만 그게 죽는 길이었습니다.”

‘대기업과의 법적 분쟁’이라는 힘겨운 여정을 시작한 백씨지만 의지만큼은 확고했다.

“삼양제넥스라는 거대기업에게 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지만 저는 끝까지 맞서 싸울 겁니다. 누명을 벗고 새출발해야죠. 그리고 다시 꼭 재기할 겁니다. 대기업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죠.”

[이지경제 = 이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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