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매각·사재출연 등 유동성 확보에서 격차
계열사매각·사재출연 등 유동성 확보에서 격차
  • 한상오 기자
  • 승인 2016.08.3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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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의 추가 지원 불가 판정이 내려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위한 임시이사회가 열린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진해운 본사 사옥 앞으로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이지경제] 한상오 기자 = 국내 1, 2위 해운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얄궂게도 운명이 엇갈렸다. 한진해운은 채권단이 30일 추가자금 지원 불가 결정에 따라 채무상환 유예를 종료시키면서 31일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했다. 반면 현대상선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용선료 조정과 사채권자 채무조정을 끌어내면서 경영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운명이 엇갈렸다.

한진해운은 사실상 청산수순… 현대상선은 경영정상화 잰걸음

한진해운은 31일 오전 8시부터 서울 여의도 본사 10층에서 이사회를 열고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논의했다. 이날 이사회에는 총 7명의 이사회 구성원 중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제외한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 강영식 대한항공 부사장 등 사내이사 2명과 공용표 전 언스트앤영 부회장,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등 사외이사 4명이 참석했다. 조 회장이 의사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이사진은 한진해운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한진해운은 이사회의 의결에 따라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할 계획이다. 법원은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이 들어오면 빠르면 일주일 내로 법정관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해운업계에서는 법원의 실사 이후에는 회생보다는 청산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산업의 특성상 법정관리가 될 경우 화물 운송계약 해지와 용선 선박 회수, 해운동맹 퇴출 등으로 한진해운은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품을 떠나 채권단 관리 하에 새 출발한 현대상선은 30일 경영정상화를 이끌 신임 최고경영자(CEO) 면접을 실시했다. 산업은행은 이날 복수의 헤드헌팅 업체로부터 추려진 신임 CEO 후보군에 대한 최종 면접을 진행했다. 앞서 사장추진위원회는 5~6명의 예비 후보군의 평판 조회를 진행, 총 2~3명의 최종 후보자를 추렸다.

현대상선이 지난 5일 신주 상장을 완료하고 40년 만에 현대그룹을 떠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자회사로 새로 출발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본사에서 직원이 1층 로비를 오가고 있다.

사업모델․여성회장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기업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사업모델이 비슷했을 뿐만 아니라 최은영, 현정은 두 여성 회장이 경영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자주 비교됐다. 특히 한진해운은 2014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넘겨받기 전까지 고(故) 조수호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 전 회장이 경영을 맡았고, 현대상선은 고(故) 정몽헌 회장의 부인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을 지휘했다.

업계에서는 불과 두세 달 전만 하더라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이렇게 상반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진해운이 현대상선보다 비교적 나은 상황으로 인식됐다.

우선 규모면에서 차이가 극명했다. 한진해운은 국내 1위, 세계 8위의 규모를 자랑했고, 국내 2위사인 현대상선은 글로벌 순위가 15위로 규모 차이를 나타냈다. 컨테이너선사는 비용 면에서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덩치가 클수록 경쟁력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재무여건도 한진해운이 우이에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두 회사는 모두 해운업황 부진으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주채권은행과의 약정을 통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하지만 재무여건만 비교할 때 현대상선의 부진이 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진해운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영업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었고, 현대상선은 5년간 누적 영업 손실이 무려 1조7000원에 달했다. 한진해운은 2013년 1445%이었던 부채비율을 작년 말 817%로 낮추면서 개선됐지만 현대상선은 같은 기간 부채비율이 1397%에서 1565.2%로 오히려 올라갔다.

대외적인 여건도 차이가 났다. 지난 5월 한진해운은 새로 출발하는 글로벌 해운동맹 ‘디 얼라이언스’에 출발멤버로 합류하고, 현대상선이 여기서 제외됐다. 또 현대상선이 정부가 제시한 해외 선주와의 용선료 조정 합의 시한을 넘기자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의 법정관리가 임박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다.

현대상선 용선료 조정 타결로 두 회사의 입장 뒤바뀌어

그러나 현대상선의 용선료 조정이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판세가 뒤바뀌었다. 이후 현대상선은 정상화 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된 반면, 한진해운은 용선료가 밀려 선박이 억류되는 등 유동성 고갈에 처하면서 일이 꼬였다.

두 회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계기는 유동성 확보였다. 현대상선은 현대증권을 1조2000억 원에 성공적으로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주요 계열사 자산을 모두 동원한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그룹은 자산 매각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상태에서 유동성이 떨어진 시점에서 뒤늦게 채권단에 손을 벌렸다.

현대상선이 채권단 지원 없이 현대증권 매각과 사재출연 등 자구노력으로 필요 유동성을 확보한 반면 한진해운이 내놓은 자구안은 회사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결여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한진해운 채권단은 한진 측이 제시한 자구안이 미흡하고 경영정상화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판단했다. 채권단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해외 선주의 용선료 조정 의사 확인 등 일부 진전은 있었으나, 정상화 과정에서 필요한 유동성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결방안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채권단은 소유주가 있는 개별 기업의 유동성 문제는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구조조정 원칙에 따라 한진그룹 측에 부족자금 해결방안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으나, 한진 측은 부족자금 일부만 자체 조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29일 채권단에 전달된 한진해운의 최종안은 총 5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이었다. 한진그룹이 제시한 자구안 내용은 대한항공이 내년 7월까지 4000억 원의 신규자금을 나눠 지원하고 조양호 회장이 1000억 원 한도로 내년 7월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보유 지분(33.2%)의 차등감자는 수용하나, 영구채(2,200억 원)는 출자전환 후 감자수용을 불가하고, 기타 추가적인 자금조달 방안(롱비치터미널(TTI) 주주대출 채권 매각 등)은 그룹 차원의 지원방안이 아닌 한진해운 자산 등을 활용한 자구안을 제시했다.

채권단의 추가 지원 불가 판정이 내려진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위한 임시이사회가 열린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진해운 본사에서 직원들이 전시된 선박모형 앞을 지나고 있다.

현 회장, 현대상선 회생에 ‘올인’…조 회장, 알짜사업 인수 등 후일도모

현대상선 회생을 위해 현정은 회장이 보인 행보와는 많이 달랐다. 일각에서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가능성에 대비, 한진을 통해 한진해운의 알짜자산을 미리 사들였다는 의심도 갖고 있다.

한진은 지난해 말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한진해운신항만 지분 50% 전량을 1355억 원에 인수했고 최근 동남아항로 일부 운영권도 621억 원에 넘겨받기로 했다. 최근 한진해운이 보유하고 있던 베트남 터미널법인 지분 21.33%도 230억 원가량에 취득했다. 한진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6월 말 서울고속버스터미날 지분 16.67% 전량을 신세계그룹의 센트럴시티에 1658억5천억 원에 매각하기도 했다. 한진이 매입한 한진해운 자산들은 대부분 알짜로 평가받는다. 한진해운신항만은 2007년 9월 설립됐는데 200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한진은 한진그룹에서 육상운송에 주력하고 있다. 해운업도 하고 있지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 자릿수에 그친다. 한진은 한진해운의 아시아노선 영업권을 인수하면서 “컨테이너 정기선 사업 진출을 통한 해운사업 강화”라고 인수목적을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한진그룹이 한진을 통해 아시아노선에 주력하면서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진그룹은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추가지원 불가 결정을 하자 자료를 통해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해운산업의 재활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상오 기자 hanso110@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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