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문정부 노동 해법에 ‘한숨’…30만 설계사 어디로
보험업계, 문정부 노동 해법에 ‘한숨’…30만 설계사 어디로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7.06.1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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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였던 지난 2012년 당시 정희성(오른쪽)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만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 산재보험 전면 적용 촉구 서한'을 전달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선에서부터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동3권 보장을 주장해 왔다. 사진=뉴시스

[이지경제] 문룡식 기자 = 보험업계가 문재인 정부의 노동 해법에 깊은 한숨을 내 쉬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최근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직)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보험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보험의 꽃’으로 불리는 보험설계사가 금융계의 대표적인 특수고용직이기 때문. 전체 보험설계사 50만명 중 절반 이상인 30만명 가량이 특수고용직인 상황에서 이들의 노동3권 보장과 산재‧고용보험 가입 추진은 보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달 29일 보험설계사를 비롯해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신용카드 모집자 등 일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종사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또 국회의장에게도 조속한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특수고용직은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사업주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얻은 수입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이들은 형식상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때문에 사업주의 일방적인 계약변경·해지, 임금체불, 계약에 없는 노무강요 등에 대응하기 어렵다.

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아 업무 중 다치거나 아파도 보험 혜택을 적용받지 못한다.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해도 사업주가 계약을 해지하거나 행정관청이 설립신고를 반려하는 경우가 많아 노조를 통한 처우 개선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인권위 측은 “2015년 실태조사 결과, 특수고용직과 일반 노동자의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특수고용직의 노동3권을 보장해 스스로 경제·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특수고용직의 노동권 보장은 인권위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 제출한 ‘차기 정부 인권과제 10대 과제’ 중 하나로 지난 2007년에도 권고사항을 발표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사안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공약으로 알려지면서,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수고용직 종사자 수는 기관별로 엇갈린다.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특수고용직 근로자 규모는 49만명으로 집계됐다. 근로복지공단도 같은 해 9개 직종(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 모집인, 대리기사) 규모를 48만명으로 추정했다.

반면 인권위는 특수고용직 근로자가 다양한 업무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2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0만명

금융권 가운데 가장 난감해진 곳은 보험업계다. 50만명에 달하는 보험설계사 중 절반 이상을 특수고용직으로 고용해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유에서다.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가 발표한 금융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전체 보험설계사는 48만6021명(생보 23만7944명‧손보 24만8077명)이다. 이 중 29만1232명(59.9%)은 본사가 아닌 대리점에 등록돼 영업하는 특수고용직이다. 보험회사에 전속돼 근로하는 보험설계사는 19만4789명(40.1%)으로 절반에 못 미친다.

이들은 매일 아침 대리점 사무실로 출근해 팀 단위로 회의를 하고 회사의 지시와 본인의 재량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등 일반 출퇴근 근로자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오히려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근무시간이나 복리후생에 대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계 A생명보험사 대리점에 소속된 보험설계사 양모(29‧남)씨는 “매일 오전 7시30분까지 사무실에 출근해야한다. 퇴근은 그날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정시 퇴근(오후 6시)인 경우는 거의 없다”며 “영업을 하려 외부에 나가서도 그날 계획, 이동경로, 현재 상황 등을 주기적으로 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만약 일정이 일찍 끝나면 퇴근이 아니라 사무실로 복귀한다.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실적이 안 좋으면 급여가 깎이는 것은 영업직 특성상 이해하지만, 교통비‧식대 등 영업비용조차 지원되지 않아 실적이 없는 달은 오히려 적자가 난다”며 “10명이 입사하면 1년 안에 7~8명이 그만두는 수준이다. 퇴직금도 없어서 1년 넘게 근무하고 그만두는 동료들은 빈손으로 나간다”고 토로했다.

이어 “보험대리점들이 다양한 루트로 사회초년생에게 접근해 ‘자산관리사’라는 멋진 호칭을 제시하며 유혹하지만 그냥 보험설계사다. 순진한 사회초년생들이 이에 속아 업계에 뛰어들었다가 소모품 취급만 받고 떠난다”며 “사실상 근로자와 다름없는 보험설계사들의 권리와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사들은 이들 보험설계사의 사회보험 가입 의무화 및 노동 3권 보장 시 비용증가와 인사관리 부담으로 현재 수준의 설계사를 유지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보험대리점은 비용부담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며, 보험회사 역시 저능률 보험설계사 및 관리 임직원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 부정적 파급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특수고용직 종사자는 직종이 광범위하고 업무환경이나 수입차이가 커서 일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논란만 확산되는 등 상당한 사회적 갈등비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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