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Think Money] 한·중 수교 27년, 양국 교역 얼마나 늘었나
[이지 Think Money] 한·중 수교 27년, 양국 교역 얼마나 늘었나
  • 문룡식 기자
  • 승인 2019.06.10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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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오 코리아리서치앤컨설팅 본부장

[이지경제] =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주어진 분수에 만족할 줄을 안다. 나무로 태어난 것을 탓하지 아니하고, 왜 여기 놓이고 저기 놓이지 않았는가를 말하지 아니한다.

위 글은 이양하의 수필 ‘나무’의 도입부이다. 나무는 씨앗이 떨어진 자리에서 싹이 나고 자라며 일생을 이동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땅이 움직이지 않는 한 나무는 이웃한 나무와 평생을 살아간다. 국가도 비슷한 점이 많다. 한국과 중국은 나라가 세워진 자리에서 이웃하여 수 천 년의 역사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지로 한국과 중국은 그렇게 수 천 년을 이웃으로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의 협조를 얻어 대륙에서 활동하며 나라를 찾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북쪽을 지원했던 중국은 한국과는 외교적으로 단절이 되었다. 그렇게 두 나라는 이웃해 있지만 서로 오갈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던 두 나라가 1992년 마침내 수교를 한다. 그 당시 대만(臺灣) 출신이 대부분인 화교들은 명동을 중심으로 한·중 수교 반대 집회를 전개하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과는 단교를 해야했기 때문이다. 대만과 한국 내 대만인들의 눈물 어린 호소를 뿌리치고 실리를 택한 한국 외교, 27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성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국제적인 교류가 별로 없었던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국제 사회에 등장하는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자. 냉전이 한창이던 70년대, 중국을 국제 사회로 이끌어 내기 위한 미국의 노력도 있었다. ‘핑퐁외교’가 대표적인 예이다. ‘핑퐁외교’는 탁구라는 스포츠 교류를 통해 미국과 중국은 만남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만남이 잦아지면서 중국의 개방을 이끌어 낸 것을 일컫는다. 이와 더불어 이른바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기치로 내건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개방 정책은 중국을 국제 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 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뜻으로 ‘덩샤오핑’의 실리정책을 매우 잘 함축한 표현한 문구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했던 위상은 어땠을까? 중국은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 이후 서구 열강들의 침략으로 나라가 흔들리기 이전까지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이었다. 중국은 약 200년 전 청나라 후기에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던 경제 대국이었다. 오늘날 미국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약 24%)보다 높은 수치다. 많은 전문가들이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2028년에 중국의 GDP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중국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 정도이다. 또한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 GDP의 65% 수준에 근접했다.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2028년 쯤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을 추월한다면 적어도 지금부터 10년 이후부터는 중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경제 규모를 앞서 나간다는 가정이 가능하다. 미국이 무역전쟁 등 온각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중국 추격을 뿌리치려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초강대국의 패권을 중국과 공유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중국을 국제사회로 이끌어 낸 가장 큰 ‘공신’인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게 된 것은 과히 역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눈을 돌려 미국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당하고 있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경제 관계를 살펴보자. 중국은 과거 우리나라가 그래왔듯이 중간재를 수입하여 완제품을 수출하는 ‘가공무역’의 비중이 크다. 바로 그 중간재의 주요 공급원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미·중의 분쟁은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아래 표를 표면 1992년 한·중 수교당시 우리나라의 대중(對中) 수출은 26.5억 달러, 수입은 37.2억 달러 규모였다. 대중(對中) 무역수지도 10.7억 달러 적자였다. 당시 양국의 무역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교역량도 6위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1992년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은 180.9억 달러 수출은 182.8억 달러였으며, 미국은 한국의 교역량 1위국이었다.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8년, 대중(對中) 수출은 1,621.2억 달러, 수입은 1,064.8억 달러로 무역수지는 556.3억 달러 흑자로 조사되었다. 반면 대미(對美) 수출은 727.1억 달러, 수입은 588.6억 달러, 무역수지는 138.5억 달러 흑자로 나타났다.

이는 수출의 경우 중국은 61배 증가한 수치이나, 미국의 경우 동기간에 수출은 4배 증가에 그쳤다. 무역수지도 대중(對中) 무역흑자가 미국보다 4배 이상 많은 규모로 확대되었다. 2018년 기준으로 대중(對中) 수출액은 대미(對美) 수출액의 2배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중국은 한국의 전체 수출액의 26.4%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1위로 올라섰다는 것이다.

한편 2018년 기준으로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미국과의 무역에서 벌어들이는 흑자 규모는 138.5억 달러로 289.7억 달러인 베트남의 절반 수준, 439.9억달러인 홍콩의 3분의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적어도 무역 부문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수 천 년을 이웃하며 살아온 한국과 중국은 근방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앞으로도 이웃 국가로 살아가는 것은 숙명이다. 적어도 땅이 이동하기 전에는 말이다.

대만의 눈물의 호소를 뿌리치고 중국과의 수교를 택한 한국은 여전히 대만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양국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중 수교는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성공적인 외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중 양국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실리보다 중요한 그 어떤 명분이 있을까?

Who is?

백승오

코리아리서치앤컨설팅 본부장(現)

농협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

KBS인터넷(現KBS미디어) 콘텐츠사업팀 파트장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원 취재기자

한국금융신문사 취재기자

케이피씨씨 정책연구소 객원연구위원(現)


문룡식 기자 bukdh@ezy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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